조울증 교단일지7

발병 그리고 아이들과의 생활

by 시골쥐

나는 양극성장애 판정을 받고나서 한참을 낯설어했다. 무엇을 하든 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내 행동 하나하나를 스스로 분석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가기 시작했다.


원래는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조심스러워져서 다소 생각을 좀 오래간하고 반응을 해주다보니 아이들이 낯설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변화가 부정적인 변화라고는 할 수는 없었는데, 아이들을 관찰하는 게 주된 임무인 교사에게 있어서는 이 자기성찰이 아이러니하게 하나의 성장 포인트가 된 것이다.


내 행동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분석하는 행위가,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행위로 이어지면서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을 쏟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관심을 상담 때나 일상생활에서 아이들과 공유하면 아이들과의 라포형성에 매우 도움이 되던 것이었다. 내 병이 내 성장에 도움이 되다니. 나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었다.




이런게 전화위복인걸까?

나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이토록 빠른 흐름에 나를 맡겨본 적이 없어서 이런 사고전환에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마치 갓 꺼낸 군고구마를 양 손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잡아내듯이 나는 그렇게 내 병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도 나와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낯설어지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삶이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어 자아가 깨어나고 성립되어가서 자신이 낯선 시점일 것이다. 다 자라고 나서 새로운 나자신을 마주하게된 나도 내가 당황스럽고 낯선데, 이제 막 성장하는 우리의 아이들은 어떠할까. 나는 아이들의 혼란이 다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좁혀주지는 못했는데,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어른'이었다.

가끔 나는 아이들과 학교에서 마주하고 이들을 지도할 때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야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경우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손 대기가 무서운 것이다.


이 아이가 지금 이대로 사회에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것은 자명한데,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도 납득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납득시키자니 너무 멀리 올라가야하고. 그러면 내가 이 아이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 지를 가늠하다가는 끝내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엔 이게 맞나...? 내가 꼰대인가? 내가 정신병이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일까?'




언제 한 때는 한 아이의 말투가 사람을 하대하는 듯한 말투를 가져 그것이 그 아이의 모든 관계를 파탄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게 안타까워서 아이를 잡고 씨름을 하다하다 결국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 이후 저런 사례의 아이들에게는 손대기가 어려워졌다. 아이에게 사회규범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씨름을 하다가 내가 결국 사과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무섭게 느꼈다면 미안하구나, 선생님은 그럴 의도가 없었어'.


나는 그 때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저 집에 들어와 불꺼진 방에 누워 양말 하나 고작 벗어두고 엎드려서 숨쉬는 게 고작이었다.


모든게 그저 내 탓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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