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증과 업무
조증은 업무에 상당히 도움이 되곤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거나 할 때 어디서 솟아오르는 지 당최 알 수도 없는 어마무시한 에너지로 일을 끌어갔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참 열심히 한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었다. 교감도 좋아하고 동료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학교에서 나는 삼박자가 모두 맞는 인재였다.
문제는 그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재앙이었는데, 조증이라는 게 없는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우다다 쏟아붓는 거라 결국 내 기력이란 기력을 학교에 모두 쏟아내어 정작 집에서의 나는 죽은 사람처럼 누워만 있었고 '내 생활'이란 게 없었다. 또한 업무적으로도 '조증상태일 때의 퍼포먼스'가 기본값이 되어버려서 우울증일 상태에도 조증일 상태 수준의 퍼포먼스를 내야해서 상당히 괴로웠었다. 기본값을 찾아야만 했는데, 그 과정도 상당히 오래걸렸다.
조증이 업무에 꽂힐 때가 있고, 자기개발에 꽂힐 때가 있는 데 근본적으로 나의 조증은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그 시절, 그 어느 것을 성취해도 행복하지 않았었고 남이 '우와, 멋지다'라고 하는 그 한마디가 행복했었던 것 같다. 참 미련했다.
업무 분장표 외의 업무도 만들어내서 하는 '참선생'이었는데, 주로 트러블 있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편이거나 학교청소를 하거나 서류정리를 하는 등 눈에 보이는 일거리란 일거리는 근무시간을 넘겨서라도 해치웠어야 했다. 나는 폭주기관차였다,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결국 청소를 하다가 넘어져 무릎이 망가졌다.
이 관절부상은 오랫동안 내 지병이 되고야 마는데, '아직 어리니까 괜찮겠지'하고 넘겼던 부상이 오래가고 오래가고 만성이 되어버려 이제는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귀신같이 알람이 오는데, 나는 그걸 느끼면서 씁쓸함을 같이 느끼곤한다.
그렇게 부상을 당했음에도 나는 멈출 줄을 몰랐다. 무릎부상이 만성이 된 건 아마 아팠음에도 계속해서 뛰어다닌 게 화근이었겠지 싶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아이들에게든, 누구에게든.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지를 못한채.
이제는 다소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질 않는다. 노력은 하는데, 금방 실패하고야 만다. '어쩔건데'하다가도 뒤를 돌아서면 '어쩌지'하고야 마는 것이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중요해서, 차려입고 예쁘게 꾸미고 앉아있기도 하다. '못 생겨보이면 어쩌지, 뚱뚱해서 미련해보이면 어쩌지, 많이 먹어서 욕심많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배에서 소리나서 창피하다, 말 더듬었는데 전문성 떨어져 보일까, 이렇게 했을 때 애들이 싫어할까, 이렇게 했을 때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발전할까, 애들이 왜이럴까...' 생각의 고리를 끊기란 참 쉽지가 않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잘 들어야한다. 타인의 요구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그 목소리는 다른 말에 묻히기도 하고 또 희미해서 듣기가 힘든데, 그것을 듣는다면 내가 이 한 세상 나 하나 잘 위로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발령 나고나서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다가 산책을 좀 해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가 떠올라, 주말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밖에 커피를 사러 나간 적이 있었다. 산책이라면 교내에서 상담하면서 운동장을 매일 같이 돌아서 지겹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시도해보자는 생각에 밍기적 밍기적,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었다.
그냥 밖에 나가서 걷는 순간 나는 알았다. 아무 목적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내게 필요했다는 것을. 노을이 어찌나도 예쁘고 공기가 이렇게나 산뜻할 수가 없었다. 15분 남짓한 그 순간이 그 하루를 그렇게나 행복하고 뿌듯하게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곤 깨달았던 것이다 그동안 취미랍시고 배웠던 그 모든 것들이 즐겁지 않았고, 모두 전시용이었음을. 나는 행복하지 않았음을.
무엇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어릴 적 필름 카메라를 무작정 찍다가 모두 다 써버려 혼난 기억을 떠올리곤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무작정 우다다 구입했다. 이것마저 조증 증세라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나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는 지경이다) 그치만 나는 이 활동을 할 때는 진정으로 행복했다. 가만히 서서 몸의 진동을 줄이고, 뷰파인더 안에 아름다운 나의 아이들을 담아낼 때. 그것을 모두가 같이 바라볼 때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