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써야 할까. 아니 그보다 대학교에서만 무속(巫俗)을 배운 정도로 글을 써도 될까 하는 고민을 계속했다. 무속전문박물관에서 약 1년 동안 일하면서 내린 결론은 일단 쓰자였다. 내 생각보다도 사람들은 무속에 관심이 많았고, 일반 관람객을 포함해 예술을 하는 사람들,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박물관에 많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자료를 물어봤고, 나는 내가 아는 수준 정도의 지식을 알려주었다. 나는 무속을 공부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원로학자인 교수님은 내가 아직 무속을 잘 모르고 어려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무속 연구를 하는 선생님들 역시 굿을 공부할 때는 꼬박 몇 년이 걸렸다고 했다. 논문이나 학술서는 무속을 단순한 호기심에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어렵다. 나 역시 어려웠고 지금도 어려우니 글을 쓰면서 나와 같이 무속을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학술적 글쓰기에 지쳤다. 이건 이렇게 쓰면 안 될 것 같고, 이건 빼야 할 것 같고. 학교에서 과제를 에세이처럼 쓰면 누군가는 교수님께 혼났다. 또 어떤 학생은 에세이를 써갔더니 칭찬받았다. 정말 종잡을 수가 없네, 하고 생각하는 내게 지금도 교수님의 호통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논문이며 보고서 쓰기에 질려버렸다. 무엇보다도 고작 이정도밖에 안 되는 나에게 지쳤다. 그래도 나는 내가 되기 위해 이 책을 써본다.
이 책은 기간제 학예연구원으로 박물관에서 일한 기록이자 일상을 담고 있다. 특히나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호기심의 대상인 무속에 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책의 방향성을 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늘 무당도 사람이라는 점을 잊고 살아간다. 그들의 특수한 능력이나 생활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무당들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맥락과는 상관없이 살을 날리고, 돼지 피를 뿜어대고 칼을 연신 어르고, 작두를 타는 이미지 말이다. 무당은 소수자인 사람이다. 무당이 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판타지가 아닌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에 기댄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무속을 일반화하기에는 성급할 수 있으니 이런 일도 이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무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내 이야기가 자꾸만 튀어나왔다. 엄청나게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서 써보고 일반인의 관점에서 재밌어할 만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전문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후에 쓸 글을 기대하시라!
어느 수업 과제에 민속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고 쓴 적이 있다. 무속신앙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없애는 데 기여하고 싶다.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추앙할 생각은 없다. 이 책의 내용은 내 경험과 논문, 학술서와 같은 문헌들 그리고 민속학과 인류학에서 쓰는 현지조사 방법을 통해서 글을 꾸렸다.
“내 인생을 쓰면 책 한 권은 넘게 나올 거야.” 실제로 민속 조사를 나가면 제보자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많이 듣는 말이다. 민속 조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조사하다 보면 그 말이 백번 천번 옳다고 생각하다가도, 이 말이 주는 피로함에 빠진다. 제보자는 각각 다른 사람들인데도 자신의 인생이 책 한 권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 또한 책 한 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부디 내용에 오류가 없기를, 부디 ‘만신(萬神)’들에게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