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위니토드>는 끝났지만 저 혼자 리프라이즈 할게요
S#1. 뭐였을까? 그의 정체, 그 스위니 토드, 이발사 탈을 쓴 악마
스위니 토드. 뮤지컬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이 단어를 소리 내어 발음해 보세요.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스위니, 스위니, 스위니... 개인적으로는 숫돌에 대고 날카롭게 칼을 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토드라는 단어는 죽음을 뜻하는 독일어 (Der Todd)와 발음이 같아 괜히 묵직하게 목소리를 내려 깔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한 인물의 이름을 작품의 제목으로 짓는다는 것은, 그만큼 창작진이 해당 인물의 성격과 서사를 매우 촘촘하게 구성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하는데요. 크리스, 다니엘, 톰 같이 흔히 들어볼 수 있는 이름도 아닐뿐더러, 칼날 같은 날카로움과 묵직한 위압감이 공존하는 스위니 토드라는 이름은 그 기대감이 배가 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영국의 도시 괴담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한 이발사의 복수극을 담고 있습니다. 부도덕하고 터핀 판사에 의해 누명을 쓰고 섬으로 유배를 당한 평범한 이발사 벤자민 파커는 15년 후 탈옥하여 런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 스위니 토드라는 가명으로 플릿가의 한 건물 2층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게 됩니다. 복수심에 불탄 토드는 이발소에 방문해 면도하는 손님들의 목을 면도칼로 그어 살해하죠.
이렇게만 보면 평범한(?)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에는 이 뮤지컬의 상징과도 같은 독특한 장치가 하나 있습니다. 살해 후 손님이 앉아있던 의자의 옆쪽 레버를 당기면 시체가 지하실로 떨어지거든요. 떨어진 시체는 이발소 건물 1층에서 파이 가게를 운영하는 러빗 부인이 잘 손질(?)하여 미트파이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끔찍하고 기괴한 범죄에 가담한 그녀는 토드의 믿음직한 공범이지요.
S#2. 나 또한 세상의 신비를 봤어, 인간이란 이름의 가장 끔찍한 존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영국 런던, 그중에서도 토드의 이발소와 러빗의 파이 가게가 있는 플릿가의 시민들은 스위니 토드를 이렇게 일컫습니다. 이발사의 탈을 쓴 악마.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인생을 망쳐버린 판사에 대한 복수라는 배경이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죄 없는 사람들까지 몽땅 죽여버리는 토드와, 토드의 살인을 방조하고 가담하기까지 한 러빗 부인은 결코 순수하고 선한 주인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은 무조건 선역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극은 주인공의 시선과 심리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내가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는 인물이 악한 인물이라면 어딘가 찝찝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더욱 찝찝한 건, 토드와 러빗의 살인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극을 보는 내내 그들의 살인을 응원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입니다. 터핀 판사가 처음 토드의 이발소에 찾아왔을 때, 저도 모르게 얼른 그의 목을 그어버렸으면, 얼른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장면에 몰입하게 되곤 했습니다. 러빗 부인이 토드와 함께 인육 파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온갖 직업군을 풍자하는 모습에 웃음 짓기도 하고요.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에는 실감 나는 연기와 피 분장에 소름이 끼치다가도 극이 전개되며 한 두 명 차례로 죽어나가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게 되는 나를 발견했을 때 그 찝찝함은 배가 되었습니다.
복수와 살인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무대 연출이나 넘버의 분위기도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편인데, 막이 오르기 직전,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효과음이 울립니다. 자연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불쾌한 소리로 시작되는 이 극은 대부분의 넘버가 기괴한 불협화음 혹은 소름 끼치는 초고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뮤지컬은 연기와 음악이 결합된 예술이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음악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감상하는 편인데, 스위니토드는 극을 다 보고 나와서 귓가에 맴도는 넘버, 흥얼거릴 수 있는 넘버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또한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라는 심정으로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나름 다양한 뮤지컬을 감상해 왔지만 이렇게 기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은 처음이라 굉장히 혼란스럽기도 했지요.
S#3. 세상을 채우는 이 소리 씹고 씹히는 경쾌한 소리
스토리부터 넘버까지, 어느 하나 찝찝하지 않은 구석이 없는 이 작품은, 솔직히 말하면 '힐링극'이 취향인 저에게는 썩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최고였지만, 묘하게 불쾌하고 쎄한 그 기분을 견디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23년 1월 한국에서 첫 관람을 마친 후, 저는 정확히 4개월 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두 번째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용과 넘버는 동일하지만, 무대 연출과 세트는 한국에 비해 단순하고, 대사의 수위는 훨씬 더 센 버전이었죠. 분명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불쾌하다고 느꼈던 어떤 지점들과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던 어떤 부분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싶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스위니토드라는 극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저는 '기이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기묘하고 이상한, 그래서 자꾸만 끌리는 작품. 궁금하시다면 여러분도 토드 씨의 이발소에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