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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설 Oct 25. 2023

말해봐 크리스티안, 우리의 신념은 무엇인가?

뮤지컬 <물랑루즈!> 는 끝났지만 저 혼자 리프라이즈 할게요


S#1. 크리스티안의 사랑


당신은 야수의 심장을 갖고 있나요?

말도 안 되는 미친 도박 한 판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나요?

Freedom, Beauty, Truth and Love. (자유, 아름다움, 진실 그리고 사랑).

보헤미안의 이상을 믿으시나요?

여기, 이 모든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한 청년이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옥수수 밭으로 가득한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온 작곡가입니다. 영혼의 진정한 고향, 심장이 자유로울 곳을 찾아 프랑스 파리까지 온 그는 육지에 발을 딛자마자, 루브르 박물관이나 에펠탑 같은 유명 관광지가 아닌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합니다. 내가 살아갈 이유, 나의 전부를 바칠 무언가를 찾아서 말이죠.

이때, 크리스티안은 이런 다짐을 합니다.

"혁명의 아이가 될 것이다, 예술가가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질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한 크리스티안은 그곳에서 아주 독특한 두 사람, 툴루즈와 산티아고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두 사람은, 중간중간 노래가 나오는 형식의 독특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죠. 극 중에서 크리스티안이 말하기를, 이 공연은 훗날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고 하는데, 오늘날에서야 그것이 '뮤지컬'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공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뮤지컬 <물랑루즈!>의 배경은 1899년 프랑스 파리이고, 실제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19세기말 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떠올려보면, 당시 툴루즈와 산티아고는 허무맹랑하고 독특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나름대로 새로운 공연 예술 형식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이들과 함께 공연을 제작하며 '혁명의 아이, 예술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이룬 셈입니다. 그리고 그 후, 사틴을 만나며 '사랑에 빠질 것이다'라는 다짐까지 완벽하게 이루게 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티안이 사랑에 빠진 사틴은 어떤 사람일까요?


S#2. 사틴의 아름다움


사틴은 프랑스 파리, 클럽 '물랑루즈'의 스타입니다. 아름답고, 요염하고, 화려하죠.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환상적인 단어들을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대단한 사틴. 그녀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당당하다는 점입니다. 그녀가 물랑루즈의 가장 빛나는 다이아몬드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틴이 본인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크리스티안을 만나며 그녀의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순수하게 자신의 전부를 사랑해주는 크리스티안과 돈으로 자신의 전부를 사려하는 몬로스 공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13살 때부터 강제로 몸을 팔아야만 했던 사틴.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그녀는 처음으로 마주한 순수한 사랑과, 폐업 위기에 놓인 물랑루즈를 지켜야만 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합니다. 결국 반짝이는 그녀도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그 순수한 마음을 내칠 수 없었지만, 본인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해야만 하는' 선택이 있었습니다.


S#3. 보헤미안의 자유


뜨겁게 사랑하며 배신하는, Bad Romance.

결국 사틴은 크리스티안과 공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합니다. 크리스티안과는 비밀스럽게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공작과는 대외적으로 공개 연애(?)를 시작하며 물랑루즈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싫어하는 듯했던 산티아고와 니니 또한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고 말죠.


물랑루즈의 빨간 풍차만큼, 사틴의 빨간 립스틱만큼 붉고 강렬한 사랑을 하는 그들은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 솔직한 감정을 만끽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미친 짓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스릴 넘치는 로맨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랑. 하지만 오직 나의 감정에만 충실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보헤미안들을 객석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나 또한 그 미친 로맨스에 뛰어들고 싶어집니다.


S#4. 물랑루즈의 진실


물랑루즈는 신사든, 숙녀든, 멋쟁이든, 망나니든, 어떤 죄와 어떤 욕망을 가졌든, 보헤미안의 이상 아래 가장 솔직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을 내 집과 가족이라 여기던 물랑루즈 가족들은 그 누구에게도 솔직할 수 없었고,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크리스티안에게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공작에게는 크리스티안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숨겨야만 했던 사틴.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 서고자 하는 사틴을 위해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아닌 입술을 더 빨갛게 칠할 것을 외치는 지들러.

그리고 아픈 사틴을 도우며 함께 그녀의 마지막 무대에 서는 레이디엠과 물랑루즈 가족들.


사틴은 크리스티안의 사랑, 공작의 재산,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 잃었지만 결국엔 크리스티안의 음악을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는 인생의 마지막 목표를 이뤄내며 진정한 진실과 자유를 얻습니다. 반면, 크리스티안은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다짐한 모든 것들을 이뤄냈지만, 그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틴을 잃게 됩니다.


진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온 곳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크리스티안.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사틴이 떠나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부터 다시 사랑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는 크리스티안의 독백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 노래가 바로 이 뮤지컬 <물랑루즈!> 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극장 내부를 꽉 채우는 붉은 조명과 무대에 마음을 빼앗겨 그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는 이것이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을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떠나는 자유,

뒤돌아 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던 순간의 아름다움,

그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고, 그 모든 순간을 사랑했던 경험은 우리가 살아갈 이유가 되어줄 거라는 것을,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에 빗대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야수의 심장을 갖고 있나요?

말도 안 되는 미친 도박 한 판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나요?

Freedom, Beauty, Truth and Love. (자유, 아름다움, 진실 그리고 사랑).

당신은 보헤미안의 이상을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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