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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맘 Apr 23. 2021

삼 남매가 서로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딸딸 아들삼 남매,첫째, 둘째, 셋째가 털어놓는 각자의 이야기.

태이 - 첫째가 동생들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태린아, 네가 처음 내게 ‘우리 삼 남매가 모여서 글을 한 번 써보자’라고 했을 때 솔직히 적잖이 놀랐어. 책을 쓰고 싶은 건 늘 내 인생 버킷 리스트에 있으면서도 항상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길 만한 엄두를 내지 못했던 나였어. 그렇지만 넌 늘 그렇듯이 나보다 어린 동생이면서도 성숙한 언니처럼 어른스럽게 우리 셋을 자연스럽게 리드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동생이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 


우리가 이 땅에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건 선택이 아니었지. 내가 너희들보다 네 살 많은 언니로, 그리고 일곱 살 많은 큰 누나로 태어난 것 또한 마찬가지였어. 나 같은 경우, 태어나보니 스물여섯 차숙희 씨와 스물여덟 김동호 씨의 첫째 딸이라는 역할이 주어졌었고, 그렇게 혼자서 사랑을 듬뿍 차지하던 와중에 나보다 더 귀여운 여동생이 태어나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단독 주인공이 될 수 없었지. 심지어 대를 이어갈 장손을 원하던 전형적인 한국의 집안에서 막둥이인 남동생이 태어나고선 난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자연스레 동생들을 케어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더라.


우리 셋이 모이면 가끔 그런 얘기 하잖아. 다시 태어나면 어떤 순서로 태어나고 싶냐고. 나는 늘 어른스럽고 의젓한 모습으로 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 그래서 항상 말하지. 내 앞에 순서가 어찌 됐건 막내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리고 태린이 너는 말하지 다음엔 외동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아들은 다시 태어나도 막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던 것 같네. 거봐, 따지고 보면 우리 셋 중 그 누구도 첫째로 태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잖아? 결국 은연중에 다들 알고 있는 거지, 첫째로 사는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 


첫째는 말이야, 모든 게 처음이야. 엄마 아빠 역시도 부모라는 역할을 처음 경험해보는 사람들이라 실수가 많고, 우리는 모두 늘 처음이라 뭘 보고 배워야 할지 롤모델이 없다랄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건, 초경을 시작하건, 중학교에 들어가 교복을 입건, 사춘기를 겪건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집에선 처음 겪는 일이라는 거지. 내가 처음 엄마 아빠한테 음주를 걸렸던 날을 아직도 기억해. 난 법적으로 성인인 스무 살이었고 (물론 그 전에도… 여기까지만 할게)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선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친구들과 술을 한잔 걸쳤는데 엄마 아빠는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나를 혼냈어. 내가 한국을 떠났을 때가 중학교 졸업하기도 전이었으니까 그들 눈에는 내가 아직 어린 사춘기 소녀처럼 보여서였겠지만, 내가 당당하게 술을 마시고 놀게 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의 투쟁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너네는 알까.


반면 너희는 내가 잘 닦아온(?) 덕분에 수능이 끝나면 부모님이 먼저 술을 권하시기도 하고 심지어 아빠는 ‘우리 아들이랑 술 먹는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라고 하시더라. 당당하게 술 마실 권리, 그거 내가 노력해서 얻어냈던 거니까 You guys should give me some credit!


그뿐 아니야. 첫째는 늘 동생들이랑 싸워도 ‘네가 언니니까 이해해야지, 누나니까 이해해야지’를 듣고 살아. 어른스럽고 의젓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늘 맞서 싸우지. 아니 생각해봐,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늘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사는 인생을. 생각해보면 우리 삼 남매가 함께 할 때면, 미국을 같이 여행했을 때에도 (내가 고등학생, 너희는 초등학생이던 당시) 유럽을 같이 여행했을 때에도 (난 대학생, 태린이 고등학생, 아들은 중학생) 태국/라오스를 같이 여행했을 때에도 (우리 다 직장인) 늘 난 전반적인 여행의 방향을 설정하고 너희를 리드하는 역할을 했었고 그 롤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 같아. 따지고 보면 미국 여행을 리드하던 나는 유럽을 여행하던 당시의 아들 나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거잖아. 하지만 나이가 몇이 되었건 난 늘 너희를 이끌었고 너희는 항상 따라와 주는 역할을 했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도 꽤나 있는 것 같아. 늘 리더의 역할을 맡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때문에 자연스레 리더십을 읽히게 되었고, 그 때문인지 학창 시절엔 늘 반장, 회장 등 감투 쓰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 지금도 비록 작은 조직이지만 많지 않은 나이에 한 회사의 직원들을 통솔하는 리더로 일할 수 있는 밑바탕엔 어렸을 때부터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너희를 돌보고 이끌었던 경험들이 깔려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 (___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조직 CEO의 78%가 첫째라고 해) 물론 내가 주도하고 나아가는 방향이 늘 옳은 정답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군말 없이 따라와 주고 설사 그 이후에 잘못된 길임을 알았다 하더라도 내 탓을 하지 않는 너희들 덕분에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리더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최근 들어 보니 태린이 네가 요샌 어떤 분야에선 리더 역할을 제법 훌륭하게 해내기도 하더라? 이번 책을 준비하게 된 것만 하더라도 너의 아이디어와 우리를 모으는 실행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말이야. 


각자 위치에 따라 겪는 애로사항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열심히 살 아내 주어 고마워. 어딜 가든 너희 같은 동생들이 있어서 난 되게 자랑스럽거든. 어렸을 때는 외동으로 자라서 혼자서 사랑 듬뿍 받고 형제, 자매들과 많은 걸 나누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세계 어느 나라를 가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건, 사람들이 내게 뭐라 손가락질을 하건 늘 내 편이 되어줄 동생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든든하고 행복한 일 같더라. 우리 셋이 모이면 개그코드도 맞고 티키타카가 잘돼서 늘 웃음이 끊이지 않잖아.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1년 넘게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이렇게 글로나마 너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난 감사하고 또 행복해. 너희도 나와 같은 감정 이리라 믿어.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다들 파이팅해보자!


태린 - 샌드위치 (사이에 낀 둘째가 언니, 남동생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다시 태어나면 나는 무조건 외동으로 태어날 거야. 형제자매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라고 싶거든. 우리 세대만 해도, 형제자매가 두 명뿐인 가족이 대다수라 나처럼 위, 아래로 껴버린, 소위 ‘샌드위치'가 흔치 않았어서, 언니가 항상 말하는 ‘첫째의 서러움'이나 ‘책임감'은 누구한테서나 흔히 들을 수 있었고, 승완이가 느낄 ‘막내로서의 느낌' 또한 대충 어떨지 짐작이 가능했지.


자세히 생각해보면 정말 스무 살 되기 전까지, 아니 싱가포르에 오기 직전까지도 나는 20년이 넘도록, 나 스스로의 정체성이나 위치에 대해 엄청난 혼란을 매일 겪었던 것 같아. 첫째가 아니기 때문에, 부모님이 언니에게 한 것만큼의 기대를 안 하더라고. 기대를 안 하면 부담감도 적고, 책임감 또한 적어 좋을 것 같지만, 나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 또한 ‘사랑'의 다른 형태라 생각했기에, 항상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막내가 아니기 때문에, 부모님이 승완이에게 한 것만큼의 관심과 칭찬을 안주더라고. 나도 분명 갖고 싶은 장난감들이 많았는데, 완구 코너에만 가면 승완이가 좋아하는 거라며 레고부터 사는 모습에 ‘왜 나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뿐이었고,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서럽던지.


우리 가족 안에서 나를 항상 수식하는 말들이 있잖아. ‘성격 파탄자' ‘돌아이’ ‘이상한 취향' 등등. 항상 부모님은 언니랑 승완이만 눈에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더 하지 말라는 것들을 이 악물고 한 것 같아. 기어코 어긋나서라도 관심을 그렇게 받고 싶었던 거지. 나한텐 그게 ‘사랑한다'는 증거로 보였으니까.


‘나는 과연 우리 집에서 어떤 위치인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등, 혼란의 연속이 매일마다 반복됐지만, 싱가포르에 정착하게 되면서 나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진지하게 나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스물다섯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돼서야 ‘진짜 나'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게 되었어. 지금도 나 자신에 대해 더 공부하면서 알아가고 있지만 말이야.


물론 언니와 승완이 둘 다 본인의 삶에 나름의 가치를 매기며 의미 있게 살아가고 있겠지만, 가끔씩 언니가 연애 문제나 결혼,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구하거나, 승완이가 진로문제,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아직 ‘부모님이 원하는 삶', ‘사회가 원하는 나의 모습’등에 휩쓸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


Vivere Liberamente. 내 삶의 모토이자, 둘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인데, 있는 그대로 직역을 하자면 ‘자유롭게 살아라' 지만, 나의 주관적인 해석을 보태자면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라'는 문장이야.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라, 뭔가 익숙하면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아? 연예인 노홍철이 항상 하는 말이야! 항상 내 정체성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하루 종일 우울감에 찌들어 살던 땐, ‘연예인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정말 철없는 말이다’ 고만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진짜 나'의 모습을 알게 되고 나선, 내 삶의 모토로 삼을 만큼 인생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이번, 3남매의 이름으로 책을 집필하고 출간하자는 계획을 제일 먼저 제안하고 추진한 이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결과에 상관없이 얼마나 의미 있고, 후회 없는 것인지 언니랑 승완이가 조금은 느꼈으면 해서 그랬어. 물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아주 자유롭게 하면서 살아가는데, 둘은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 아무것도 하지도 못하고,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눈치 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니야. 나도 가끔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니까.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자’는 사실 우리 3남매 모두가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 할, 어쩌면 우리 삶의 공통적인 모토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출생 순서가 개인의 성격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해도, 그것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이유를 정당화할 순 없다고 생각해. 단 한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것, 최대한 다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승완 - 두 누나들에게 쓰는 편지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았는데 최근에 책을 읽기 시작했어.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작품을 읽고 독후감 경진대회에서 상도 받고, 그 유명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읽고, 최근에는 정겨울 작가의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 이러한 독서활동이 남들이 보기에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


어렸을 때부터 큰누나는 자기 전에도 책을 읽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 책을 읽고,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배낭여행을 할 때에도 책은 꼭 챙겼잖아. 큰누나를 보고 항상 ‘나도 책을 읽고 싶다. 남들 SNS 할 시간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정말 멋있고 쿨한 것이구나’ 같은 생각을 했어. 작은누나도 어느샌가 가족 채팅방에 어떤 책이 좋다며 추천을 하고 독서모임에 나간다고 근황을 전하는 등 독서활동을 하더라고. 하지만 나는 항상 집에 들어오면 누워서 유튜브나 영화를 보기 바빠서 그러한 생각을 여태 생각으로만 남겨두고 살았지. 그런데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내 시간을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가져오며,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 생각을 해봤어. 고민할 것도 없이 선택한 게 독서였지.


내가 독서를 시작한 이유처럼 나의 취미나 성격,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은 정말 누나들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 본인의 의견을 절대 굽히지 않는 큰누나와 작은누나 사이에 있으면서 항상 중재하는 역할을 하거나 대화에 참여 자체가 불가능해 내 의견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았어. 그래서 친구들과 있을 때에도 편을 들지 않고 중재하는 역할을 항상 하는 것 같아. 소음을 매우 싫어하는 두 누나들 사이에서 나는 항상 조용하고 과묵하게 살아왔고, 사춘기를 다소 예민하게 보냈던 두 누나들을 지켜보며 스스로 둔감해지려고 노력해왔어. 성격이 그렇게 느긋느긋 해지고 둔감해 고등학교 때는 한 때 별명이 양반이었을 정도였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5년 인생에서 본인의 길을 확고히 정하고, 혼자서도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며 그 길을 걸어가는 큰누나는 종종 내 인생의 목표가 되곤 했어. ‘큰누나처럼만 살자’고 생각하곤 했거든. 누군가는 대통령, 누군가는 가수 또 누군가는 아빠를 롤모델로 말할 때 내 롤모델은 큰누나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소확행, 워라밸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시대잖아. 나도 행복에 대해 종종 생각을 하는데 그럴 때면 큰누나보다 작은누나가 어느 때보다 부러워. 작은누나도 타지 생활에, 직장생활에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이수형과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고 오늘은 어떤 것을 했는지 일상을 공유하곤 하는데 그게 내 눈에는 정말 행복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요즘 내 인생의 목표는 ‘작은누나처럼 살자’가 되었어.


요즘에는 혼자 인천 자취방에서 밥을 먹으며 무한도전을 자주 봐. 우리 집은 1박 2일보다는 무한도전 파였잖아? 무한도전에서 수많은 레전드 회차가 있지만 내가 그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 예능 총회 편이야. 김경규와 게스트들이 주고받는 멘트들의 티키타카가 예술이거든. 무한도전 예능 총회 편을 다시 보는데, 이경규가 김영철에게 “조용히 해 인마! 어른들이 얘기하잖아!” 라며 호통치자 김영철이 “나도 이제 어른이에요… 나도 어느새 어른이 되었답니다…”라고 받아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 진짜 배꼽 잡고 웃고 넘어갔는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를 잘 투영하는 장면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었답니다…


누나들이 나를 놀릴 때면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삐지면 입술 툭 튀어나와서 토라져 있던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는 것 같아. 벌써 만으로 서른이 된 큰누나도 아빠 눈에는 젓가락 송 부르는 꼬마고, 결혼해서 남편까지 있는 작은누나도 엄마 눈에는 앞니 부러진 아이로 보이듯 나도 그렇게 보이겠지만 나도 어느새 예비군 3년 차, 스물다섯이 되었더라고.


물론 내 행실이 큰누나만큼 똑 부러지고, 언행이 작은누나만큼 바르지 못해 생기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아. 하지만 나도 내가 가야 할 길은 잘 가고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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