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는 오줌을 서서 싸는가
직립보행 호모사피엔스의 직립쉬야에 관한 고찰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태어나서 나고 자란 가족이 아닌 이상,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생긴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군생활을 하며 강제적으로 생판 모르는 남들과 한데 뒤섞여 사는 기간을 거치지만, 여자들은 기숙사 생활이나 하숙 생활 혹은 하우스메이트를 두지 않는 이상... 흔히 타인과 동거하는 기회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인 것 같다.
4월 결혼을 앞두고 1월부터 예비신랑과 미리 동거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두 집 살림을 하던 우리가 생활비도 아낄 겸, 혼전임신을 한 내가 보다 나은 주거환경에서 보살핌도 받을 겸, 뭐 겸사겸사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우린 닥치기 전까지 몰랐다. 오랜 시간을 홀로 살아온 성인남녀가 한 집에 사는 게 이토록 쉽지 않을 줄이야....
우선, 내 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나만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학교 이후로 부모님 품을 떠나 살던 내게, 크건 작건 허름하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내 동굴'은 소중했다. 남자친구를 사귀건 데이트를 하건, 나는 내 공간을 남에게 내어주는 일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타인이 나만의 주거영역에 들어온다는 건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불편했고 또 어색했다.
제 아무리 단칸방이나 반지하라 할지라도 나만의 공간에서 편히 쉬는 순간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하지만 때때로 외로움에 사무쳐 발버둥 치는 공간이기도 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올 때면 텅 빈 공간의 어둠이 자아내는 느낌이 싫어 가끔 몸서리쳐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싫어 누군가와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혼자라서 외롭고 쓸쓸할 때도 있었지만 홀로 지내는 공간의 소중함은 컸고, 싱글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들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누군가와 함께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타인이 한데 뒤섞여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살 때는 설거지 거리를 잠시 쌓아두고 빨래를 미루고 정돈되지 않은 집에서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게 되면 그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매 순간순간들을 마주한다.
왜 남자는 서서 오줌을 싸야 하는가? 왜 변기 커버는 올라가 있는가? 왜 남자는 모자가 저리도 많이 필요한가? 에 대한 의문이 들 때쯤, 오빠는 왜 여자는 지나가는 자리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지는가? 왜 여자는 화장품을 화장대에 늘어놓는가? 왜 여자는 브래지어가 이리도 많이 필요한가? 에 대한 의문을 갖었다. 신혼생활은 달콤하고 또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지만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달달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또 익히고 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우리만의 규율과 법칙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을 체득하고 있다. 오랜 기간 혼자 살아온 성인 남녀는 각자 집안일 하는 방식도 다르고 패턴도 다르다. 하다못해 수건을 개는 방법이나 양말을 정리하는 방식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흰밥 or 잡곡현미밥을 주식으로 먹는지, 물은 끓인 보리차를 마시는지 생수를 사 마시는지와 같은 부분까지. 김치는 김장김치를 먹는지 갓김치나 파김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식습관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2인이 만나 나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가졌던 안 좋은 습관은 버리고,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듯한 재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나는 정리를 귀찮아하고 미룰 때까지 미루는 털털한 성격이지만 오빠는 설거지가 1이라도 쌓여있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꼭 줍거나 청소기를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깔끔쟁이 성미라 오빠를 위해 나름 정돈된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삼십 년 넘게 이리 살아온 내가 하루아침에 개과천선 하겠냐마는.....
해외에 살면서 빨래,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을 해주는 가정부 아주머니 찬스를 썼었고 요리는 워낙 귀찮고 취미도 없어서 배달음식이나 간편 조리식품만 덥혀먹었는데 오빠 덕분에 늘 맛있는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남편을 만난 건 내 복이고, 사실 그런 오빠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결심한 것도 컸다. 다리가 다쳐 깁스를 하고 다니던 내게 집밥을 차려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남자친구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먼저 프러포즈했다. 8개월 동안 나를 먼저 좋아해 주었던 오빠는 흔쾌히 오케이 했고, 그렇게 우리는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있다.
모든 연애는 이별 혹은 결혼이라는 두 가지의 종착지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전자가 새드엔딩이고 후자가 해피엔딩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하고 싶지 않다. 동화책에서 흔히 나오는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혹은 'Happily everafter'과 같은 결말은 사실 결혼이라는 사회가 만들어낸 규범과 시스템을 너무나 단순화시켜 한 문장으로 정의 내려 버리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 함께 산지 겨우 3개월이고, 신혼부부 중에서도 아주 꼬꼬마 부부이기에 앞으로 함께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기롭고 현명하게, 어른스럽게 순간순간을 함께 거쳐간다면 보다 단단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오빠와 함께하며 느낀 결혼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감'과 '소속감'이다. 그 어떤 직장생활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결혼이라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든든한 나만의 편이 생긴다는 것, 내가 아프고 병들거나 뚱뚱해지고 못생겨져도 변함없이 날 사랑해 주고 지지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가족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엄청나고 또 대단한 것 같다. 회사는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 할지라도 평생 나와 함께 할 수 없으며,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효용가치가 내가 받는 연봉보다 떨어진다면 가차 없이 대체제를 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연봉 7천짜리 차장급을 한 명 쓰는 것보다 연봉 3천짜리 두 명을 쓰는 게 더 낫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고, 또 현명한 관리자나 경영자는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적재적소에 쓰는 것 역시 능력이기에.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쌓아나가며 승진을 해도, 가슴 한편엔 늘 불안감이 존재했던 것 같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경영불안에 시달릴 때면 고용불안에 밤잠 못 이루는 날들이 생겼고, 회사에서의 퍼포먼스가 잘 나지 않을 때면 이러다 회사에서 인정 못 받고 나가리되면 어쩌지? 하는 남모를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좋은 직장에 다니며 높은 연봉을 받고 사회적 지위를 쌓아나가면서도 늘 'what if...?' 'what's the next step?'과 같은 고민에 휩싸였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옮기고 또 승진하고 연봉을 높여갈수록 역설적이게도 내적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지금은 잠시 일을 쉬면서 재취업을 위한 수험공부를 하고 또 태교에 힘을 쓰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사회에 나가 일원으로서 경제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면 집안일을 나보다 더 잘하고 또 좋아하는 오빠가 전업주부를 하는 게 우리 가정엔 더 맞는 것일 수 있다는 대화를 자주 한다. (내가 월 천만 원 벌어오면 그렇게 하자고 함.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오빠가 날 먹여 살리지만 언젠가는 내가 오빠를 먹여 살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
결혼과 출산율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우리 부부. 함께 살아보니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8월 즈음에는 둘이 아닌 셋이 될 테지. 언젠간 넷이 되는... 날을 꿈꿔보지만 모든 건 사람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달려있다 생각한다.
무튼,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여러분도 행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