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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중국 Jul 13. 2020

[코로나 사피엔스 2] 우한에서 귀국 후 주변 이야기

반전의 반전 시나리오 


이 글은 제가 지난 12월 우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과 그로 인해 고민했던 흔적들을 글로 표현한 연재물입니다. COVID-19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시작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생겨날 변화들과 나아갈 방향들, 그리고 개인이 꼭 알아야 할 지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한계로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Chapter 2. 우한에서 귀국한 내 주변 이야기


우한 출장 후 복귀 

내 마지막 중국 출장은 우한이었고, 나는 다행히 별 탈없이 한국으로 복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청두라는 중국 서남지역 최대 도시에서 온 방문단을 맞아 한국 우수 스타트업과 투자기관을 매칭 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그 행사도 무사히 치른 것은 물론 계획대로 가족들과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2020년 새해에는 우한이라는 도시에 대해 스터디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었다. 모교의 '세계 동문회'를 참가한 덕에 후베이성의 성도인 우한이라는 도시의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과 기본적인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시너지 밸류만 발견한다면 비즈니스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Wechat 단톡 방과 Moment에서 느껴지던 긴박한 분위기

그런데 음력 설날이 유난히 빠른 올해 초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나 같이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Wechat이라는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를 주목하면서 산다. 중국에서는 Kakao talk과 같이 절대적인 채팅앱이기 때문이다. 또한, Wechat은 과거에 존재했던 Kakao Story와 같이 사진을 올리거나 포스팅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Moment(朋友圈) 기능이 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내용은 두 가지를 보면 대략 판단이 된다. 첫째,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WeChat의 단톡 방. 둘째, 친구들의 포스팅만 확인되는 Moment 내용. 그런데 1월 20일 경부터 단톡 방과 Moment에서 듣지도 보고 못한 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빈번하게 출현했다. 그 시기를 회고해 보면, 찝찝한 구석이 한 둘이 아니었다.


2020년 1월 10, JP Morgan 중국에서 COVID-19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발표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해서 각종 예방법이 단톡 방과 Moment를 돌아다녔다. 아직 정확히 치료법이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약한 노인과 어린아이에게 치명적인데, 그 바이러스의 진앙지가 '우한'이라고 했다. 이 바이러스는 체내에 침투해 해당 병원체가 평소 약했던 부분을 집중 공격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갑자기 걸어가다가 쓰러지는 사례가 국내에도 여러 번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감염자가 평소 심장 관련 질환을 앓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바이러스가 심장을 공격해 갑자기 큰 심장 충격으로 심장 마비가 일어나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비로소 실감하게 된 COVID-19의 끔찍한 영향력
출처 : https://images.app.goo.gl/k8i8DYLq9UgGXmJe6

개인적으로 좀 큰 충격이 엄습했다. 바이러스의 엄청난 확산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사망했고, 확진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갑자기 정지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까지 15년 이상을 중국시장에 의지해 경제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과거 사스나 메르스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충격이 세상과 나라는 개인에게 까지 찾아왔다. 일단 내가 2019년부터 준비해온 거의 모든 중국 관련 업무가 중단되었다. 중국에 있는 지인들과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족한 방호용품을 한국에서 구매해 중국으로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일일이 안위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여러 친구들은 내 안위를 오히려 걱정했다. 한중 간의 가까운 물리적 거리와, 많은 경제적 협력 때문에 한국도 곧 위험해질 거라는 이야기였다. 친구들은 내가 5살 난 아이의 아빠인 걸 잘 알기 때문에, 특히 연로하신 부모님과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를 잘 보살피라고 역으로 걱정을 해 주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우한을 도와야 한다.

우한 구호물품 보내기 작전
우한 교민들을 태우러 간 전세기에 실어 보낸 민관합동 긴급 의료 물품

나는 중국 유학 교우 총연합회이란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이 모임은 아직 성숙되진 않았지만, 중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모든 대학의 동문회가 연합한 모임이다. 모여서 먹고 떠들자는 콘셉트는 절대 아니고, 지중파(知中派)들의 싱크탱크가 되어 현명한 한중관계를 리드하자는 뜻에서 2019년에 공식적인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느 학교나 너나 할 것 없이 우한 사태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우한대학 출신의 연합회 회원분들이 리드하시고 연합회에 속한 모든 학교의 동창회장들은 마침 총연합회가 결정되고 뭔가를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 모두는 그때가 사드 문제로 급속히 냉각되고 한한령으로 얼어붙은 한중 경협의 상황이지만, 오랜 이웃으로서 절대 좌시할 수 없다고 상황을 인지했다. 결국 모두의 노력과 땀으로 방호용품을 사입해 정부가 우한 교민들을 태우러 간 전세기에 무사히 싫어 보냈다. 유통업자들의 매점매석으로 방호용품 구매가 극도로 힘들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때 연합회 내에서 별 다른 큰 역할은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워낙 경험 많고 열정 넘치는 분들이 많으셔서 나는 지지만 했었다. 하지만, 나도 좌시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합회 이외의 학교 차원의 모금 활동을 통해 지난 연말 우한에서 전 세계 동문들을 극진히 환영하고 대접해 주었던 후베이성 우한 지부 교우회를 위해 움직였다. 한국 내의 모교 동문뿐 아니라, 항공편이 없어 아직 한국으로 복귀하지 못한 중국 내 한국동문들도 십시일반으로 모금을 해주셨다. 2020년 들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이 순간이었다. 당시 모교 총동문회의 사무총장, 후베이성 우한시 지부 동창회 회장 그리고 내가 합심하여 한국 동문들의 모금을 통한 방호용품을 전달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총동문회의 사무총장 선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 세계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든 방호용품들은 우한 현지의 급히 마련된 COVID-19 확진자 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진에게 소중하게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슬 퍼런 COVID-19 바이러스의 진면목이 느껴졌다.
한국도 더 이상 남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COVID-19의 역습

당시 상황을 역습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역습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1월 말과 2월 말까지 한 달 여 동안의 시간을 모금활동과 마스크 구매를 위해서 썼다. 그런데 방호용품을 우한 지역에 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COVID-19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신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던 사실은, 그때부터 중국 친구들이 역으로 연락 와서 한국에 마스크 품귀현상이 일어났을 테니 중국에 충분해진 마스크들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새에 바이러스의 확산 양상이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이외의 나라로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채널에서 '중국 위기론'과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논했으나, 중국은 빠른 속도로 Risk Management를 해 나갔고 3월 정도엔 중국의 멈췄던 경제가 조금은 회복되는 경향이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었다.


글로벌 공급망은 파괴되고 산업 구조가 파괴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인해 학교, 직장, 집회 장소 등에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지니 오프라인 경제가 죽어갔다. 난데없는 완전히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서 중국 시장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한국 및 기타 국가들도 중국의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OVID-19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Risk Management 능력과 고퀄의 제조업을 과시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빠르기만 했던' 중국산 코로나 검사 키트, 마스크, 방호용품 등은 퀄리티 이슈로 해외 무대에서 외면당하기 시작하고, 한국 제품들이 전 세계 각국 정부, 기업, 유통상들에게 인기리에 팔려 나갔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주변에 신흥 부자들이 늘어난 것도 그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마스크 부자'들이 출현한 것이다. 매점매석에 대한 논란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먼저 기회를 포착하고 전 세계로 한국 방호용품을 유통해 괄목할 만한 수익을 올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면, 거의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코로나에 가장 잘 대처하고 가장 빨리 회복했다고 믿었던 중국이 다시 뚫렸다. 



중국의 2차 확산
베이징의 신파디 도매시장 : COVID-19 2차 확산의 진앙지

그리고 6월 12일 베이징의 신파디 시장에서 COVID-19의 2차 확산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재차 우려스럽게 했다. 베이징에서만 한꺼번에 11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사실 최근 한국의 이태원 사태를 보면 베이징의 당시 상황이 짐작이 간다. 식당, 운동경기, 사람들로 꽉 찬 전철, 심지어 술집까지.... 베이징도 COVID-19의 진앙지인 우한에서 물리적으로 먼 거리 때문에, 5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바이러스를 염두에 두지 않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베이징은 수도의 자존심이 있는 지역에 '봉쇄'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17일까지 1255편의 항공편을 취소하고 강력한 제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아, 제2의 우한이 되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를 짧은 기간 동안 느끼고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바이러스의 출현 주기는 더더욱 짧아질 수 있다.
이제 바이러스와 인류가 공존할 것이며,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미리 예측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 
걱정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다음 글에서는 COVID-19가 만든 미시적 변화들을 다뤄볼 생각입니다. 언택트의 등장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원격의료와 원격교육의 보편화 / 건강과 웰빙에 대한 고찰을 해볼 생각입니다. COVID-19는 이미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변화하고 있는 삶에 대한 내용이나 제 글의 잘못한 시각이나 내용에 대한 댓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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