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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중국 Jul 12. 2020

[코로나 사피엔스 1] 우한 이야기

COVID-19 발생 전후의 우한의 모습을 통해 본 바이러스의 치명성

이 글은 제가 지난 12월 우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과 그로 인해 고민했던 흔적들을 글로 표현한 연재물입니다. COVID-19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시작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생겨날 변화들과 나아갈 방향들, 그리고 개인이 꼭 알아야 할 지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한계로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Chapter 1. 우한 이야기


나는 2020년 12월 왜 우한에 다녀왔나?
출처 : https://www.prologis.com/industrial-logistics-warehouse-space/asia/china/wuhan-chinas-domestic-


나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에 거주하거나 중국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았다. 학부, 석사 그리고 박사(수료) 공부를 모두 중국에서 했는데, 작년 우연한 기회에 학부와 석사학위를 받은 학교의 한국 총동문회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사무총장일을 하다 보니 모교의 동창회 사무실과 공식적이 커뮤니케이션을 맡게 되었고, 마침 모교 동창회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들이 대부분 학창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분들인지라 가깝게 지내던 터였다. 그런데 작년 9월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모교 동창회가 2년마다 한 번씩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문들을 모아 '세계 총동문회'를 하는데, 올해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세계 총동문회 행사를 유치해 주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모교의 '세계 총동문회'에는 중국 전국의 성시 지부와 세계 각국 지부에서 2명의 대표만이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한국 동문회를 대표해서 세계 총동문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2019년 11월 28일까지 북경 일정을 마치고 29일 오전 북경 서역에서 고속철로 우한으로 항하게 되었다. 내가 묵었던 모교 인근 호텔에서 북경 서역으로 이동하는 데 1시간 정도가 필요하고, 북경 서역에서 우한시까지 5시간 정도가 걸리니 반나절을 이 소요되는 짧지 않은 여정이다.


북경 호텔에서 북경 서역으로 가는 데 이용한 차량 호출서비스 캡처 화면


북경 서역에서 우한 역까지는 고속철로 4-5시간 정도가 걸린다(출발역과 도착역이 같아도 리드타임이 다른 경우가 더러 있다). 중국 고속철의 속도는 세계 TOP 5 안에 들어가는데, 한국의 SRT나 KTX와 비교해도 좀 더 빠른 속도를 보여주지만, 그런 고속철을 타고 4-5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이니, 중국이 새삼 더 크게 느껴진다.


고속철에서 점심을 해결하느라 구입한 열차 내 도시락

나는 열차를 타면 독서하기에 좋은 음악을 귀에 꽂고, 모바일 또는 태블릿으로 e-book을 보는 습관이 있다. 한 권을 거의 다 물어보니 어느덧 우한 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한에 가까워져 오니,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우한에서 만든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한은 어떤 도시인가?


대부분의 독자들은 우한이라는 도시가 생소할 것이다. 나는 이번 '세계 총동문회' 참여를 위한 방문까지 합쳐 총 3번 우한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 우한은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중국 내 Tier-2 Group 도시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우한은 중국인들의 생명줄인 양쯔강(장강)과 그 지류인 한수이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여 전형적인 '두물머리'지형을 보여준다. 우한은 원래 세 개의 큰 지역의 통합된 지역인데, 예로부터 이 세 지역은 '우한 삼진'이라고 하여 중국 중부의 군사, 교통의 요지였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를 좀 더 친근감 있게 느껴보자는 컨셉을 잡았으니 나의 뇌피셜로 우한이 대도시이자 소비 도시인지를 기술해 보겠다.



3번의 방문, 갈 때마다 나를 놀라게 했던 우한의 스케일
우한 Happy Valley 입구 전경

첫 방문은 2013년이었다. 당시 나는 박사 공부를 하며 한국 콘텐츠 회사의 중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었다. 우한 동호(东湖) 지역에는 중국 최대 테마파크 회사인 OCT의 환러구(欢乐谷 ;Happy Valley) 건설이 한창이었고, 내가 속해 있었던 회사가 환러구에 어트랙션을 제안하는 일로 방문을 했었다. OCT는 션젼에 HQ를 두고 있는 중앙 국영기업(央企 ; 中央国有企业)로 국무원 산하 국자위가 직속으로 관리하는 회사이다. 중국의 수많은 여행 부동산과 각종 어트랙션(놀이기구)을 포함하는 테마파크 영역에서는 따라올 적수가 업는 기업이다. 현재까지도 상하이, 푸저우, 청두, 텐진, 베이징, 어메이샨, 션젼, 시안 등에만 한러구가 건설된 것을 보면, 우한은 인구도 많고 국내외 관강객도 많은 도시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환러구의 후베이성 총괄 사장이 점심을 사주었는데, 환러구 인근에 위치한 주거 부동산 상가에는 당시 Starbucks와는 또 다른 컨셉으로 중국 내 대도시에 영업점을 확대하던 MAAN COFFEE도 큰 스케일로 입점할 예정이라고 하며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때 우한은 인근 지역의 관광 목적지이자 소비도시라는 점을 느꼈다.


한 때 우한을 대표했던 커머셜 몰, Wanda Mall

두 번째 방문은 2014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박사논문을 고민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박사 논문 주제로 'Commercial Mall 내부의 공간 커뮤니케이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 전국에 있는 유명 몰(Mall) 들을 찾아다녔고, 당시 가장 유명했던 Mall브랜드인 Wanda Mall Wuhan의 오픈 소식을 듣고 우한을 찾았었다. 현재는 이커머스 기업의 회장들이 부자 순위에 올라 있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의 신흥 부자들은 대부분 부동산 기업의 오너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커머셜 몰을 기반으로 부동산을 개발하는 Wanda는 회장 왕지엔린을 당시 중국 내 1위 부자로 만들어준 부동산 기업이다. 당시 우한 내 '한지에'에 오픈한 Wanda Mall 주변에는 Walking Street이 있었는데, '마담투소', '한국의 트릭아트 전시관'처럼 트래픽이 엄청난 관광지에만 입점하는 국내외 최고의 Anchor Tenant(부동산이나 관광지를 대표하면서 방문객 트래픽을 주도하는 시설을 지칭)가 입점했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첫 번째 방문과는 또 다른 sceme의 스테일이었다.

모교 '세계 동문회' 행사서 나눠 준 에코백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나의 모교는 중국을 대표하는 학부이자 가장 역사가 깊은 곳 중 하나이고, 현재 전 세계 약 100여 개국에 동문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 한 지자체의 동창회 지부가 세계 총동문회를 유치하려면 사회적인 인지도와 영향력 그리고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2년마다 북경대 세계 총동문회가 열릴 때면, 2년 후의 세계 동문회 유치를 놓고 각 지역지부 회장들끼리 소리 없는 경쟁이 벌어진다.) 2019년 세계 총동문회 우한에서 열리게 된 것은 우한이 그만큼 사회적, 경제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부분을 보여준다.


세계적 재앙이 출몰하기 직전의 우한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르지만, 나는 중국과 같이 급속히 성장하는 신흥국에서 한 도시의 경제 수준을 파악할 때 '몰세권'을 방문해본다. 우한에서의 모교 동문회 주요 행사가 끝나고, 짬을 좀 내기로 했다. 일행이었던 선배와 우한 시내 최고의 몰세권을 탐방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우한이 얼마나 발전해 있는지를 보기 위함이었다. 우한은 과거에 와 본 적이 있지만 여타 도시들과는 달리 외국이 거주 비율이 높지 않고 잘 알지는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데이터의 힘을 믿고 디엔핑(大众点评)을 검색했다. 많은 커머셜 몰이 검색되었지만, 그중에서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K11이 우한에 상륙했다고?


다른 평점 높고 규모가 커 보이는 몰 (물론 내가 몇 년 전에 보러 왔던 Wanda Mall보다도 훨씬)들도 많았지만, 왜 우한에 있는지 이해가 잘 안 갔던 부분은 K11이 우한에 입점했다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형이 왜 거기서 나와'였다. K11은 홍콩에 가본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곳인데, Taste 좋은 것으로 소문난 브랜드이다. 홍콩 본점은 침사추이 인근에 위치해 있고, 홍콩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세계 최초의 미술관형 쇼핑몰이다. 사람, 예술, 자연의 화합을 목적으로 한다는 K11은 비영리 단체인 K11 아트 협회와 협업하여 다양한 미술 프로젝트와 현지 아티스트 지원 활동을 겸한다. 사실 중국 Mainland에선 K11이 상하이의 상징 신천지에만 있어서 더욱 영향력이 있었다(막상 가보면 별 건 없지만, 마니아 층이 형성되어 있고 상하이를 찾는 관광객에게 명소로 알려짐). 상하이가 국제도시이다 보니, 홍콩의 아트 몰이 상륙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으로 상하이 진출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한에 K11이 들어왔다고?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K11 in Wuhan

예상대로, K11은 크진 않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K11 내부에는 정말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찔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 바이러스 보유자가 있었다면 바이러스의 확산이 정말 빠르지 않았을까?



좀 하는 친구의 편집샵 : Anyshop


과거에 베이징에서 알게 되어 사람 됨됨이도 좋고 사업 수완은 더 좋은 현지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는 상하이 K11, 청두의 Taikoori, Wangfujing 등 중국에서 가장 힙한 커머셜 몰에만 중국 내 '신인 디자이너'의 옷을 사입해 편집샵 형태로 판매하는 Anyshop을 운영한다. 예전에 우한에서도 사업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힙한 곳을 문의하려고 wechat 메시지를 보냈는데, 친구는 우한 Yifangtiandi라는 Top-tier 몰에 샵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말을 듣고 매장에 찾아가 보니, 우한이라는 소비시장에 대한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다. 중국 비즈니스를 하려면 우한을 꼭 공부해야겠다고 느꼈다.


1.5 Tier 정도는 갈만한 도시네! 우한!


우한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곳이 아닌 것처럼 발전한 상황이었다. 커머셜 부동산의 개발 경향이나, 부동산의 Tenanting 상황을 보면 그 지역의 시장성은 명확하게 보인다. 스타벅스나 맥도널드가 입점한다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 건물이 인근 최고의 트래픽을 가진 빌딩이 될 걸 예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한은 역사적으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경험을 살려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를 배워왔고, 중국 중부의 가장 큰 도시로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한의 번영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충격은 낙차가 클 때 더 크게 느껴진다.
76일 간 지속된 우한의 봉쇄령

그런데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우한은 '천당과 지옥'을 순식간에 맛보게 되었다. 불과 한 달 새에 벌어진 일이다. 2019년 12월까지만 해도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20년에 새로운 도약을 꿈꿨을 우한이라는 대도시가 봉쇄되었다. 다른 도시에서 우한으로 진입할 수도, 우한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없어졌다. 이 과정에서 유혈 충돌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마치 몇 년 전 최초로 바이러스 전파를 다룬 한국영화 '감기'에서 나온 분당이라는 도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우한의 COVID-19 치명률(확진자가 사망자가 되는 비율)은 타 지역에 비해 몇 배가 높았다. 중국의 후베이성 이외 지역은 치명률이 0.9%였다. 하지만 우한은 초반에 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상도 부족했고, 그 뒤로도 한동안 중증 환자들이 전문 의료진의 관리를 받지 못해서 치명률이 높다고 한다.


이렇게 우한은 76일 동안 봉쇄되었다. 정확히 1월 23일 오전 10시 항공기와 기차 등의 운영을 전격 중단하며 도시 봉쇄에 들어갔다. 서울 면적의 14배에 이르는 대도시가 거대한 감옥이 된 것이다. 이 기간 중에 900만 명 정도가 우한시에 거주했다고 한다. 사실 서울, 런던, 뉴욕 같은 인구 1천만이 안 되는 도시보다 큰 도시 하나가 통째로 봉쇄된 것을 상상하면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중국 각지의 의료진 4만 2천 명이 우한으로 급히 투입되어 COVID-19의 병마 속에서도 중국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다. 리원량 등 COVID-19의 출현을 알렸다가 유언비어 유포자로 경찰에서 처벌받은 의사들도 있지만, 정확히 관련 내용들이 확인되지가 않아 아쉽다. 중국은 사스 당시 베이징에 세워졌단 샤오탕산 병원을 모델로 열흘 만에 레이션산 병원과 훠션산 병원 등 임시병원을 만들어냈다. 이 두 병원에는 총 2천600여 개의 병상이 설치되었고, 훠션산 병원에만 1천400명이 넘는 인민해방군이 투입되었다. 이밖에도 내 모교의 세계 총동문회가 있었던 컨벤션 센터, 체육관 등지에는 긴급히 야전병원이 생겼다. 병상 수는 1만 3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의료진들이 대부분은 해산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그렇게 전체 환자의 60% 이상이 발생한 우한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우한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 인류가 공존해야 할 새로운 존재인 '바이러스'에 대한 생각이 정립된다.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인류가 이룩한 번영을 Reset 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마치 잉카 문명을 제압할 때 침입자들이 '천연두'를 고의로 확산시켰던 것과 같다. 면역력이 없는 인체에 강력한 바이러스를 노출시킬 경우, 노출된 사람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공포스럽다. 만약 내 가족과 친구, 혹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동일한 상황에 노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우리는 COVID-19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Chapter 안내]

우한을 비롯한 중국 전역이 COVID-19 바이러스로 병들어가고 있을 때, 내 주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다음 Chapter에서는 COVID-19 발생 이후, 중국과 최전선에서 소통하고 사업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기술합니다. 바이러스가 가져오는 혼돈은 생각보다 무섭게 인류를 병들게 합니다. 제 주변에 있었던 소소한 스토리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감염된 당사자 이외에도 사회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묘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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