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3. 거지
역전 벤치에 거지가 짐을 가득 실은
자전거를 옆에 두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바로 옆 벤치에 내가 앉아 쉬고 있었고,
나도 짐을 실은 자전거를 옆에 두고 있었다.
그가 거지라고 생각됐던 건
더럽게 얼룩진 이불을 자전거에 싣고 있다는 것과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
내가 그와 다른 점은 단순히 그보다 짐이 적고,
옷이 너덜너덜하지는 않다는 것.
오히려 자전거는 그의 것이 더 좋아 보였다.
어쩌면 나도 또 다른 사람에겐
거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거지이지 않았나 싶다.
그때 난 정신도 행색도 낭만 가득한 여행자가 아닌
매가리 하나 없는 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