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ら카 : 0217

by 남은

0217. 시코쿠


따로 적어 둔 것도 아니고,

따로 머릿속에 정리해 둔 것도 아니지만

이번 여행이 성립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있었다.

그냥 이번 여행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희망사항처럼 생각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멋있는 풍경이 보이면 사진을 찍었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축제를 만나면 즐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은 덜 찍게 되고,

사람들에겐 흥미를 잃었고,

축제를 만나도 즐겁지 않았다.

여행의 성립 조건이 하나씩 줄고 있었다.


시코쿠로 넘어가는 다리 앞에 섰다.

본래 시코쿠도 가보려 했다.

분명 그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일본 곳곳을 누비는 것도

여행 성립 조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다리 앞에 서니

전혀 가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그렇게 여행의 성립 조건이 하나 줄었다.


아마도 그때쯤 여행의 성립 조건은

딱 하나 남아있었던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후쿠오카에 도착하는 것.

그것 말고 원하는 건 없었다.

얼른 후쿠오카에 도착하고 싶을 뿐,

그 외 다른 건 그냥 다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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