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ら카 : 0236

by 남은

0236. 억울


갑자기 울고 싶었다.


어느 중고 패션잡화 매장이었다.

선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선글라스를 써 보고 바로 옆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다.


그때 갑자기 후회감이 심하게 밀려왔다.

왜 지금까지 난 급하게 달리기만 했지?

이렇게 힘든 여행을 하면서

난 왜 급하게 달리려고만 했지?


선글라스도 써보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도 남기고,

뭔가 즐거워 보이는 이런 상황을

왜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던 거지?


후회되고, 억울했다.

어쩌면 평생 한 번밖에 없을 기회,

그런 여행이었는데, 왜 나는 급하게 달리기만 했지?


아니야. 급하게 달리기만 한 건 아니야.

분명. 나름. 의미 있는.


아니. 급하게 달리고 있었다.

무조건 후쿠오카에 도착하기 만을.

급하게 달리기만 한 게 맞다.


아. 왜. 난.

그때 그 자리에서 멈추지 못했던 걸까.

그때 그 자리에서 쉬지 못했던 걸까.

사진 속 선글라스를 쓰고

장난스럽게 미소 지은 내 모습.

이런 모습이 이번 여행에서 바랐던 거였는데.

아. 난 진짜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매거진의 이전글Vaら카 :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