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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Jul 31. 2023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서평


부모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해 미라처럼 말라 사망한 가을이 얘기로 온 국민이 공분했던 것도 잠시, 연이은 교권침해 뉴스들로 또다시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한 젊은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하면, 양천구에서, 부산에서, 또 특수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믿기 힘든 기사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제정되었던 학생인권조례가 도리어 교실을 붕괴시키고 교권을 추락시킨다며 조례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비단 이러한 들은 갑자기 긴 것이라기보다는 사회 곳곳에 산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곪고 곪아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는 일 것. 존중받지 못하고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나는 아이들,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과잉보호로 인해 점점 더 엇나가고 있는 아이들까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니,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과보호와 방임 둘 다 아이를 독립적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소유물로 바라보는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다.


이 책은 아동인권과 가족정책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꼭지로 잡고 이야기를 풀어나다.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감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가득하다. 특히 얼핏 보면 서로 대조적인 문제로 보이는 아동학대 문제와 교권침해 등의 문제들이 모두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는 부모의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문제의식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러면서 막상 나는 출산을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았건만 어떻게 아이를 교육할 것인지,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오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훈육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아이를 감정 내키는 대로 휘두르게 되는 것은 아닐지, 체벌 없이 대화로도 아이를 잘 훈육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육아와 자녀교육만큼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영역이 또 있을까. 아직 아이를 출산하기 전이라 부모로서의 마음을 진실로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공고히 세워둔 원칙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 손으로 무너뜨리며 좌절하는 친구들을 보며 육아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한 '인간'을 키워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또 어려운 일인가.


부모의 훈육적 체벌은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신체의 온전성 및 인간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상 부모 중심, 성인 중심 해석일 뿐이다.


금 자녀를 본격 양육하기 시작하는 3-40대들은 학교와 가정 내에서 체벌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이며 라온 세대다. 그렇다 보니 체벌에 대한 미화된 기억과 환상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절한 훈육을 통해 개선되어야 할 아이들의 영상에 '나에게 데려오면 5분 만에 바로 개선시켜 주겠다'는 둥 폭력을 통해 겁을 줘 아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끔찍한 우스갯소리가 수많은 '좋아요'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냥 '때리고 겁을 주는 것'이 어른의 입장에서는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일터이나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아이를 위한 방법이 정말 맞을는 의문이다.


체벌을 용인하는 하위문화가 성인의 극단적 폭력도 부추긴다는 뜻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체벌 근절이 ‘사회에서 모든 형태의 폭력을 줄이고 방지하기 위한 핵심전략’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일부 사람들은 교육환경에서의 체벌금지가 교권을 추락시켰다고도 말한다. 정말 그럴까?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되는 개념이 결코 아니고, 함께 가야 하는 개념이다. 교사가 체벌의 권한을 가진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체벌의 긍정적인 효과는 단지 '믿음'뿐일지도. 교권의 회복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학생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체벌을 용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진짜 문 체벌이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정작 주의와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체벌이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거 소년원에서 경제교육 봉사를 했을 때, 소위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훈육'을 가장한 '학대'를 밥먹듯이 당한 경험이 있었다. 체벌이 정말 아이를 '갱생'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아이들은 왜 그곳에 있는 걸까? 체벌의 수위가 약해서? 혹은 체벌에 감정이 섞여서? 체벌을 밥먹듯이 당해서? 그렇다면 적절한 체벌의 수위와 방식은 누가 정하는가. 훈육과 학대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을까.


자녀에 대한 체벌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더 낮고 취약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그 아이들은 학대를 견디지 못해 죽나, 학습된 폭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입히게  것이다.


출산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 최대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수준이 낮은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여성들이 일하는 대신 집에서 출산, 양육, 돌봄에 집중하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 체벌과 관련된 주제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저출산 문제에 대한 챕터였다.  흔히들 결혼한 여성의 일할 권리를 줄이고 피임을 금지하면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관대한 육아휴직,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근로시간 감축, 주택 수당 등 다방면에 걸친 정책으로 부모를 지원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20-64세 여성의 80% 이상이 일을 하지만 출산율은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높. 결국 사회가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오롯이 전가할수록 출산율은 낮아지고, 돌봄의 탈脫 가족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아이를 낳아 실질적 ‘가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남편이 유아교구 관련 사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저출산 문제에 관심이 늘 많았는데, 이 챕터를 읽을 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사회에서 '소수'는 멸시받고 무시당하기가 쉽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들의 '수'는 점점 귀해지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그에 맞춰 귀해지진 않았다. 늘어나는 노키즈존과 사회적 분위기를 보고 있자면, 오히려 '아동혐오'가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사회에서 아동이 있는 가정은 점점 더 소수가 되어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나 역시 조용한 분위기에서의 미식과 파인다이닝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노키즈존의 필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동시에 출산을 2주가량 앞둔 예비 엄마로서 앞으로의 미식생활이 더없이 막막하기도 하다.


임신 내내 '임산부'라는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배려의 대상이 되어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는데, 출산 후에는 '맘충'이라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게 될 것 같다. 자녀를 과보호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부 몰지각한 부모들 문제인 것은 분명하나 현재 우리 사회에는 '아'에 한 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지 않는 한, 여성에게만 양육에 대한 짐을 오롯이 지우는 한, 핵심을 피해 가는 정책들은 출산율의 반등을 이뤄내지 못할 것이다.


2023년 7월 22일, 세 번째 낭독회♥


[발제문] by KOY, CSY

1. 체벌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오은영 박사가 문제였다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체벌이란 제도에 찬성 혹은 반대하는지. 다른 생각이 있는지
(훈육용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대안은)


1-2. 체벌금지라는 조항이 법에 명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때리지 않고 아이들을 교정하는 방법은?


2. 체벌금지가 교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최근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으로 '지나친 학생인권 강조'라는 공분이 큰데 나의 생각은?


3. 저자는 가족 동반자살이란 표현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녀 살해 후 자살'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표현들은?(영국: 가족몰살, 중국: 윤리참극)


4. 저자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설명하며 외국인노동자 등에 대한 배타성이 유독 심하다고 지적했다. 제도의 뒷받침 없이 이러한 배타성을 지울 수는 없을까?


5. 저자는 코로나 당시 지원금을 4인 가구 기준으로 책정해 여러 문제 상황들이 발생했다고 설명. 정작 나는 1인가구 이면서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정상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각자가 느끼는 '정상가족'의 기준이란? 


6. 저자는 법이 선진적으로 제정되어야만 인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주장. 인식이 바뀌면서 법이 제정되는 것은 아닐까. 그 선후관계가 어떤 것이 옳다고 보는지.


7. 저자는 이러한 가족주의로 비롯된 것 외에도 사회의 저출생 문제 등을 '공감이 아닌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 그러나 한국에서는 종종 자질로 '공감'이 필요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아. "안 겪어본 사람이 무엇을 알겠냐"는 인식. 저자의 주장에 찬성 혹은 반대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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