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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Dec 09. 2023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레질> 서평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도 마찬가지다. 나는 당신이 이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활용하기를 원한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나는 내 딸이 나만큼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나만큼만 단단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새 정말 자주 한다. 이재용 회장의 딸이나 블랙핑크 제니가 와서 나에게 인생을 바꾸겠느냐 물어도 단칼에 거절할 자신이 있다. 우스운 얘기지만, 다시 태어나도 나는 또 나로 태어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혹은 내 인생이 그렇게 완벽했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인생은 순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경제적으로 꽤나 힘든 시기를 보낸 적도 있었고, 회계사 수험생 시절에는 풍문에 휘말려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을 수준의 악플과 성희롱을 경험하기도 했다. 물론 나보다 훨씬 더 부침 많은 삶을 견뎌온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 삶에는 늘 크고 작은 우여곡절과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끊임없이 몰아치곤 했다.

그 당시 내가 경험한 악플과 성희롱은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나는 솔로'의 웬만한 출연진이 받는 악플 수준보다 훨씬 심각했고, 1차 시험 합격 후 2차 시험을 공부하는 내내,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나기까지 6개월 이상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토록 내 삶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나도 잘 몰랐다. 그저 나쁜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 미천한 기억력 덕이려나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 답을 찾았다. 나는 '안티프래질'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가변성, 무작위성, 무질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번창하고 성장하며, 모험과 리스크,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인 프래질에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단어는 없다. 이제부터 이런 단어를 ‘안티프래질 Antifragile’이라고 부르자.


<안티프레질>은 인세르토('불확실성') 성애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무려 20여 년에 걸쳐 집필한 인세르토 시리즈 중 세 번째 이야기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에 압도되어 읽기를 주저했었는데, 저자가 불확실성을 대하는 관점이 매우 흥미로워 생각보다 빠르게 읽혔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고개를 수없이 끄덕였다. '안티프래질'이라는 용어가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르세라핌의 노래 제목으로만 알았지), 내가 추구하며 살아온 삶이 바로 '안티프레질'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안티프래질은 회복력 혹은 강건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회복력이 있는 물체는 충격에 저항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 반면, 안티프래질한 대상은 충격을 가하면 더 좋아진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내가 얻게 되는 것이 있으리라 믿고 이겨냈다. 좌절할만한 일이 생기면 꼭 이내 보상이 뒤따랐고, 그만큼 성장했다. 어둠 속에서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 어린 시절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덕에 더 많은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은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늘 황금열쇠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수험생 시절에 받았던 악플은 내가 반드시 동차합격을 해내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완벽한 합격만이 머저리 악플러들을 완전히 KO 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슬럼프가 올 겨를도 없었고, 조금이라도 느슨해질 때면 오히려 악플을 읽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갑작스러운 이벤트와 낯선 상황은 늘 내게 '오히려' 좋았다. 불확실성과 모험도 사랑해마지 않았다. 비행기를 놓쳐 우연히 만나게 된 동행과는 각별한 친구가 되었고, 날씨 때문에 망가진 일정에 급하게 끼워 넣은 도시는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생 여행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언제나, 끝끝내 나는 행복해졌다.


 침대에서 한 달을 보내면 근육이 약해지듯이, 스트레스를 제거하면 복잡계는 약화되거나 소멸한다.

깁스를 해봤거나, 깁스를 한 이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몇 주만 깁스를 한 후 풀면 팔이나 다리의 근육이 빠져 홀쭉해진다는 것을.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는 과정 역시 결국 몸에 일정 부분 충격을 줘서 강화시키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로' 학대하면 우리의 몸과 정신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나의 불안한 삶을 더욱 사랑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다면 속으로 이렇게 되뇔 것이다. 나는 더 강해지고 있고, 더욱 안티프래질해지고 있다고. 나를 꺼뜨리러 온 바람의 손길에 더 아름답게 일렁일 수 있는, 언제나 기쁘게 바람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안티프래질'한 모닥불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3년 11월 25일, 네 번째 낭독회♥


[발제문] by SHS

1. 프래질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부분은 강건함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강건함은 중의어이며 반의어가 아니라는 견해를 제시하며, 무작위성, 가변성, 무질서, 스트레스 또는 충격으로부터 성장하는 개념으로 안티프래질을 언급합니다. 내 삶에서 일정 수준의 무작위성을 의도적으로 추구했던 사례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통해 회복탄력성이 제고되었던 사례가 있나요? 


2. 저자는 불확실성에 대한 해법으로, 중간 지점을 지향하기보다는 일부 영역에서는 안정적이나 다른 영역에서는 작은 리스크를 많이 수용하는, 양극단의 이원적인 조합을 동시에 추구하는 바벨 전략을 소개합니다. 90%는 현금 보유 10%는 가장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예시와 마찬가지로, 바벨 전략은 드물게 발생하는 블랙 스완 이벤트의 리스크로부터의 하강 국면을 차단하여 극단적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안티프래질해지기 위해 개인적인 삶에서 양극단의 방향성을 동시에 모색했던 적이 있나요? 


3. 호르메시스란 소량의 독성 물질이나 스트레스가 적당한 양이나, 적절한 강도로 주어지면 유기체를 자극하여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강건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서 더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감내하게 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최근 내 인생에 있어서 호르메시스는 무엇이었나요? 


4. 저자는 기술에 기반한 제품은 신제품이 나오며 차이점을 비교하며, 새것을 가지면 기분이 상승하며 만족감을 얻다가 금방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더욱 새로운 것을 찾게 되는 트레드밀 효과를 언급합니다. 반면, 장인이 만든 제품은 트레드밀 효과를 일으키지 않으며 안티프래질하나, 편안함을 느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나에게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안티프래질한 오브제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5. 예측과 계획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사회 통념과는 다르게, 저자는 예측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은, 잘못된 예측에 프래질해지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더 많은 리스크를 내포할 수밖에 언급합니다. 책에서 언급된 조종사의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인한 대형 인명 피해와 같이 오히려 더 많은 예측과 계획으로 일을 더 그르쳤던 개인적인 사례나 사회적 현상이 있었나요?  


6. 평균 또는 일반적인 상황보다 가변성 내지는 무작위성으로 인해 도리어 더 큰 편익을 추구하게 된, 즉 바람직한 비대칭성을 십분 활용했던 안티프래질했던 상황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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