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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Sep 02. 2024

'노력 부족'과 '능력 부족' 사이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서평


가난은 사회적 차별, 모욕, 억압이고 기회와 정보로부터의 단절이다. 가난은 희망의 부재, 목표 설정의 어려움이며 때로는 인간성의 파탄에까지 이른다.


결혼 전까지 나는 영등포의 도림동 - 신길동 등지에서 30년을 나고 자랐다. 다가구 주택이 빼곡히 늘어선 동네였다. 나와 동생이 다닌 영등포여고에서 내가 졸업한 해에 성균관대에 입학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나 한 명뿐이었고, 몇 년 만에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이 나와 전교가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낸 친구들 중 4년제 대학을 간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그럭저럭 친한 친구들까지 모두 포함하면 열댓 명 중에 2명 정도가 4년제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내가 자란 동네는 미국이 아니었으므로 마약에 빠진 사람은 없었으나, 봉지에 본드를 넣어 흡입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들 중 절반은 공고나 상고로 진학했다. 당연히 그들 중 대부분은 대학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자란 동네처럼 밤이면 여지없이 어디선가 고함소리와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내가 오하이오에서 자라며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를 다녔고 우리 부모님이 대학을 안 나왔다는, 내게는 그저 지루한 이야기에 대해 교수님들과 동기들은 진심으로 신기해했다. 나와 같은 배경을 지닌 사람을 예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병대 복무도 오하이오에서는 꽤 흔한 일이었으나, 예일에서는 최근에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 군인과 말을 섞어본 친구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물론 내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끼니를 걱정한 적은 없었고, 부모님은 극진한 사랑으로 우리 가정을 돌보셨다. 나이가 더 들고나서야 우리 형편에 매년 여름 우리가 좋아하던 캐리비안 베이를 십 수 번씩 다니고, 늘 고기를 배불리 먹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어쨌건 대학에 입학한 열아홉 시절만 해도 내 주변 친구들은 다들 비슷하게 살았고, 세상 모두가 다 이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미니홈피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와는 달리 지역사회 친구들과만 이어지는 방식이었으니까.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영어 수업에서 '무언가 성취했던 기억'에 대해 발표하는 날, 나는 사고 싶은 가디건을 손에 넣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디건을 샀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참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학원이 아닌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에 교수님과 친구들은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그때까지 나는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부유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가졌었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행동을 더 검열하게 되면서 언제부턴가는 내가 '이 학교에 다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여 비교적'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숨기게 되었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서는 가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사람에게 '아 걔는 가난했어서 그래.'라는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회적 자본은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사회적 자본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성공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인생이라는 경주에 뛰어들게 된다. 나와 같은 부류의 아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말했듯이 우리 고등학교에도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또 말했듯이 너무도 많은 유혹이 도처에 깔려있었고, 나면서부터 놀기 좋아하는 기질을 가진 나에게는 그 유혹이 너무도 강했다. 나는 놀기 좋아하는 - 그 나이대에는 좀 멋져 보였던 -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중학교 때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젠체하는 아이들이 '나 공부 안 하고 좀 놀았었어'하며 허풍 떠는 수준이 아니었다. 시험기간에는 독서실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내내 오락실 등을 전전하며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았고, 다음 시험과목이 무엇인지도 모른 시험을 보러 등교해서는 모든 답지를 한 번호로 찍은 채 시험지를 제출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사랑이 넘치셨지만, 나의 학업까지 돌보시기에는 너무 바쁘셨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 올림피아드까지 나가고 전교회장까지 했던 딸이 탈선의 길로 빠져 모든 성적표를 위조해서 가져다줬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을 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배웠어야 할 (사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어쩌면 초등학교 때 배웠을) 인수분해를 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 혼자서 공부해 냈다. 그니 고등학생이 되어 막상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국영수 제외 과목이야 단기간에 점수를 올릴 수 있었지만, 수학이나 영어는 젬병이었다. 비학군지인 우리 학교 수학 과목에서 '가'를 받았으니 말 다했지. 우리 학교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포자였고, 수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한 반에 5-6명 밖에 되지 않았다.


“주변에 귀감으로 삼을 만한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은행장이어서 저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거든요. 저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렇게 세상에 노출이 돼야 꿈을 품을 수 있어요.”


나는 중학교 시절 그 흔한 사교육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한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에 우연히 다니게 되었던 '목동종로엠'이라는 대형 학원이 나에게는 에피파니, 혹은 인생을 바꾸게 된 어떤 결정적 계기가 되어주었다. 당시 나는 수준 별로 나뉜 20개가 넘는 반 중에서 밑에서 4번째 반 정도다.

상위 절반은 '주말반'이었고, 하위 절반은 '평일반'이었다. 그 당시에는 왜 상위권 학생들은 주말에 학원을 다니지...? 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겠다. 그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고등학교에 다녔기에 평일에는 강제 야자에 참여하거나 과외를 받고 주말에만 학원에 올 수 있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야자가 없었고, 3-4시면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우리 학교같이 학부모들의 반발이 없는 학교들이 시범학교로 지정되었던 것 같다.


학원 담임 선생님은 굉장히 젊으신 총각선생님인 데다 당시 내 눈엔 꽤 훈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성시경 닮은 선생님이었을 뿐인데...) 수학선생님이었던 그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선생님 수업을 듣겠다고 학교를 결석하고 갈 정도였고(미쳤었음), 그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학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게됐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주신 해설지가 없는 수학 문제를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풀어갔던 날, 학원 수업이 끝난 후 나를 따로 부르셨다. 내 수준에서 절대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을 모두 풀어온 것을 보고 선생님은 진심으로 놀라셨고,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여러 사정으로 채 반년을 다니지 못하고 학원을 그만두었지만, 이후에도 선생님과 연락을 지속했다. 그 계기로 나는 공부하고 싶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게 되었다.


여태껏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나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누구보다 아는 학생이었고, 운이 좋게도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전교 100위권 밖을 나돌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 시험에서 전교 4등을 했다. 당연히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부정행위 의심부터 온갖 루머가 돌았다. 성적을 의심하는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했다. 바득바득 공부해서 기말고사에서는 전교 1등을 이루어냈다. 1학기 종합 전교 1등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선생님들의 시선이 놀랍도록 변했다. 나의 진로에 관심을 가지셨고, 내가 가입했던 서클의 탈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인생은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교내 내신 시험뿐 아니라 모의고사에서도 영어를 제외한 전 과목에서 1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능력은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게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하는 까닭이다. 해병대는 외과 의사가 종양을 도려내듯 내게서 그런 마음을 도려냈다.


대학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이어졌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집에 여유가 없었지만, 욕심은 넘쳤던 나는 과외를 비롯해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아리 선배의 제안으로  입시사이트에서 온라인 채팅으로 수험생들을 상담해 주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꿀 알바라 절대 그만두고 싶지 않은 아르바이트였다. 문제는 내 중간고사/기말고사 기간에도 이 아르바이트는 쉴 수가 없다는 것이었고, 내 담당 시간이 새벽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내일 2-3과목의 시험이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학생들의 치기 어린 고민 상담으로 밤을 지새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수많은 동아리활동과 대외활동을 하면서 거의 매 학기 올 A+의 성적을 받았다.


회계사 수험생 시절에는 학원비로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 모든 강의를 2배속으로 들은 후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많은 돈을 아꼈다. 예컨대 100시간의 강의에 총 250시간이 주어지면, 나는 그중 50시간만 사용하는 조건으로(먼저 책으로 공부를 한 후 2배속으로 강의를 들으며 복습용으로만 쓰 나에겐 그것도 매우 충분한 시간이었다.) 함께 강의를 들을 사람을 구해, 수강료의 30% 수준만 내고 수강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도 나는 수석과 단 몇 점 차이 나지 않는 점수로 1년 4개월 만에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첫 학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학기 등록금을 장학금과 학자금대출로 혼자 감당하였고, 23살에 회계법인에 취업한 이후 결혼하는 날까지 단 한 달도 빠짐없이 부모님께 매 달 120만 원씩 용돈을 드렸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저축하고 투자해서 돈을 모아 결혼비용과 예단금 등을 마련할 때도 부모님께 1원 한 장 손을 벌리지 않았다. 신라호텔 결혼식 비용도 거의 절반을 내가 부담했다. ('거의'라고 표현한 이유는 50:50은 아니고 하객 수 대비로 금액을 나눠 부담했기 때문) 그렇다고 궁상맞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다. 매년 3-4번씩 유럽 등지로 해외여행을 했고, 다른 사람에게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20대 시절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으며 나의 '대단한 능력'에 스스로 심취해 있었다. 가난해서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사람에게 그것은 핑계라며 손가락질했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가난하지만 게으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힐난했다. 저자인 J.D. 밴스는 나보다 훨씬 혹독한 환경에서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갔으니 아마 훨씬 더 자신의 능력에 심취해 있을 것이다.


빈곤 계층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그럭저럭 살기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생계를 꾸려나갔고 열심히 일하면서 형편이 나아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소수라고 해도 여전히 많은 숫자인 빈곤자들은 기꺼이 실업 수당에 의존해 살아갔다.


엄마보다 고작 9개월 어린 이모는 할모와 할보가 최악의 부모였던 시기를 엄마와 함께 지켜봤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는 최악의 정반대 편에 놓인 상황으로 빠져나왔다. 이모가 해냈다면 엄마도 할 수 있어야 했다.


가난에서 탈출한 이들은 가난에 머물러있는 패잔병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노력했고, 벗어났기 때문이다. 노력의 최대치는 제각각이다. 총량이 같을지라도, 누구는 엔진이 고장 났을 수도, 흡기통이 꽉 막혀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개중엔 정말로 자기의 최선을 얕잡아 생각한 채로 가라앉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불안정한 상황을 방패삼아대충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가난한 이를 감고 있는 올가미를 또는 그의 발에 묶인 닻을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 왓챠 'David'님의 코멘트에서 발췌-
(너무 공감 가는 코멘트라 발췌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사상검증구역'에 나온 '하마'의 글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증오하던 출연자 '다크나이트'와 J.D 밴스가 똑 닮았다고 느꼈다. '다크나이트''밴스'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특수부대 군인 출신이라는 것이다. 군대는 평등한 곳이다. 신체검사로 신체적 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은 이미 배척되었으니, 그곳에선 당연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가 통한다. 하지만 현실의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 내려면 비상한 머리나 비현실적인 노력, 거기에 더해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보통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들이다.


주변에 한부모가 많은 환경에서 자라거나 이웃들이 거의 빈곤층인 가난한 동네에서 살다 보면 실제로 가능성의 영역이 좁아진다. 할모나 할보처럼 바른 길로 잡아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또한 교육을 받고 열심히 노력했을 때 어떤 결실을 맺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의미다. 아울러 나나 린지 누나, 게일 이모, 제인 렉스, 위 이모가 행복을 좇을 수 있었던 모든 요소가 빠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조금씩 깨닫게 됐다. 나는 지구 최대의 강대국에서 태어나 문명의 이기를 누렸다. 다정한 두 힐빌리 노인의 지지를 받으며 자랐고, 별난 면이 있는 가족들이긴 했어도 그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다.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성공한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겪은 것과 유사한 형식의 개입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묘사하는 잭슨 혹은 애팔래치아, 혹은 미들타운과 빼닮은 동네에서 자랐고, 제조업을 운영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 탓에 사실 이 책의 구절구절 어느 하나 수긍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모 할보만큼이나 헌신적이고 따뜻한 부모의 지지 아래 자란 K-장녀로서 이 책에 더없이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난의 굴레 빠진 아이들에게는 그런 어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밴스는 '노력 부족'과 '능력 부족'을 구별하고 있지만, 나는 현실에서 그 둘은 혼용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노력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마음껏 노력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노력을 배우지 못하고, 노력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열패감과 우울감으로 인해 도저히 노력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를 할 때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은 더한 환경에서도 극복해 냈으므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게으른/ 의지 없는/ 단지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거만한 들이다. 그가 겪은 것보다 더 깊은 가난도 존재하고, 인종차별로 능력을 펼칠 수 없었던 이들도 존재하고,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절망이 존재한다. 그 무엇도 노력만 하면 이겨낼 수 생각은 오만이다.


밴스가 비난하는 '복지여왕'이 어떤 사정을 가졌는지는 직접 들여다보고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다. 기저귀도 잘 갈아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만큼, 그런 부모 밑에서 - 혹은 더한 환경에서 - 자랐을 그 부모에게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는 없을까. 물론, 세상에는 정말 비난받아야 할 부모가 넘쳐나고, 현대의 복지정책에 많은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제도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구제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수없이 존재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정말 밴스가 힐빌리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되었다. 왜 나는 이 책에서 자꾸만 경멸이 읽혔을까.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가난에 대한 편견과 불신을 강화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미국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J.D. 밴스가 주장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가 앞으로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마냥 취하여 정책을 내놓지는 않기를 바란다. 자신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 할모와 할보를 가졌을 뿐 아니라 해병대의 교육을 버텨낼 수 있는 건강한 신체와 큰 키를 가졌다. 1년 11개월 만의 주립대 수석 졸업은 누구나 알다시피 결코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았기에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당장 돈을 벌어 아픈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이들은 아무리 좋은 기회가 오고 모든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하여도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노력을 했겠지만, 신체조건과 명석한 두뇌 면에서 만큼은 그는 금수저였다. 가족을 부양해야 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았고, 나쁜 가족을 끊어낼 수 있는 강단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니 운이 나빠 그와 같이 할모를 가지지 못했던 이들을, 그만큼 좋은 두뇌와 건강한 신체를 가지지 못하여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리라.





아이러니하게도, 홍콩에서 호화로운 요트를 타고 한 끼에 70만 원짜리(술값까지 하면 100만 원이  넘는) 식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비즈니스 석에 누워 이 책을 읽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호사들이 나의 노력만으로 이룬 것이 아님에도, 지금의 내가 너무도 사치스럽고 게을러서 이런 과거를 들으면 일부 친구들은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다고 해서 꼭 절약정신으로 똘똘 뭉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J.D. 밴스가 책 전반에 걸쳐 고백하듯, 나 역시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유년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때로는 이만큼 이루어낸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자녀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이기도 하다. 모두가 나처럼 운이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24년 9월 2일, 서른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LYK2


1. 이 책은 백인 노동계층의 소외를 복합적인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보수적이고 거친 힐빌리 고유의 문화, 수렁과도 같은 가난, 가정의 붕괴와 폭력,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채 불안과 비관을 먼저 배운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계획, 실천의 의지도 없이 가난을 대물림합니다. 

우리 주변은 어떠한가요? 우리 사회에서 가난과 소외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힐빌리들처럼 가난과 결핍 속에서 무기력과 절망을 학습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나친 풍요 속에서 노력과 열정을 잃고 패배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적 형편은 나아졌지만 주변과의 끊임 없는 비교, 당연히 주어지는 물질적 풍요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 스스로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로 작은 실패에도 더 크게 좌절하는 나약함 등 소위 MZ세대의 특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할모와 할보의 사랑과 지지는 저자를 비참한 환경에서 날아오를 수 있게 했지만,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이 독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풍요, 무관심과 무제한적 허용, 어떤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3.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아비투스(Habitus)’는 경제적, 사회적 계층과 환경,  종교, 문화, 직업, 학력, 이전 세대로부터 축적된 경험 등이 축적된 개인의 생활 양식과 취향, 습성  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힐빌리’로서의 아비투스와 ‘예일대 로스쿨’의 주 류를 이루던 사람들이 공유하던 아비투스의 차이를 깨닫고,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벽을 느낍 니다. 많은 노력을 거쳐 계층 이동을 이루었으나, 태어나서 수십 년간 무의식 속에 축적된 경험과 유 산들은 여전히 평생을 따라다닌다는 점, 그리고 매 순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점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비투스의 차이나 경제적, 문화적 계급 차이 등을 느낀 적이 있나요? 이를 받아들이거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4.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합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진지 오래고, 개룡남/녀 는 멸칭이 되었으며, 금수저 아니면 벼락부자(코인투자자, 유튜버 등)만이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시 대입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J.D.밴스의 이야기는 먼 미국 땅 애팔래치아 힐빌리의 아메리칸 드림 신화일 뿐일까요?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이 주는 메시지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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