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사야카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서평
상대를 불문하고 돕는 까닭은 자신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희한하게도 지갑을 참 자주 주웠다. 지금이야 다들 핸드폰이나 신용카드만 들고 다니지만, 우리 땐 현금 두둑한 장지갑을 들고 다니는 게 일상이 아니었던가. 인간인지라 현금이 가득 든 지갑을 보면 잠시잠깐 딴마음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엄마는 늘 경찰서나 관리사무소 따위에 지갑을 그대로 맡겨두었다. 그러면서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쌓은 복은 너희에게 다 돌아올 거야"
그래서일까? 국가대표급으로 칠칠맞은 나는 수없이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녔음에도 '진정으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은 거의 없다. 중국에서 허름한 식당에 놓고 왔던 가방도, 아프리카의 쇼핑몰 한 상점에 떨어트렸던 핸드폰도, 명동 밀리오레 화장실에 두고 왔던 지갑도 결국 모두 내 품으로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어릴 적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는 할아버지를 보면,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할머니를 보면,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보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누군가는 오지라퍼라고 비웃겠지만, 반드시 내가 먼저 다가간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도와야 누군가가 우리 엄마나 아빠를 도와줄 테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동료에게 의지하기’는 독립독행의 정신이 강한 이들에게 ‘자력으로 살아가기’와의 균형 위에서 모색되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정말로 어려울 때에는 서로 돕는 관계가 성립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내용들이 아주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청킹맨션에서의 삶이 나의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사람들의 삶과 아주 많이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내던, 학교에 다녀와 집에 엄마가 없으면 아무렇지 않게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밥을 얻어먹던, 엄마가 나와 동생을 단골 떡볶이집에 편하게 맡기던 시절(동생이랑 그곳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꼬치에 떡을 꿰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건 없이 도와주고, 부담 없이 겸사겸사 도움을 받았고, 필요한 건 빌리고, 얼굴도 모르는 선배에게 교복을 물려받았다. 그러면서도 자립심이 강했고, 쉽게 불평하지 않았고, 늘 새로운 기회를 찾아 치열하게 일했다. 물론 지금보다 기회도 가능성도 훨씬 많았다.
기술의 발전이 문제인 걸까, 고도화된 자본주의와 경쟁 시스템이 문제인 걸까. 나의 향수병 혹은 미화된 과거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환상인 것일까. 체계화된 시스템에 잠식당해 인간미를 잃어버린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조금 불편하고 낡고 투박했을지라도, 그때가 참 좋았다. 스마트폰이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이, 잔디가 아닌 운동장 흙바닥에서 매년 운동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이, MT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커다란 거실에서 뒤엉켜 잠들 수 있었던 것이 모두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덜 된 인간'일지라도, 카라마와 그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읽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2026년 현재의 홍콩 거주 탄자니아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10년이 더 지나면, 혹은 기술이 더 발전하고 경제적 부가 더 축적되면 그들도 달라질까. 엉성한 TRUST가 조직화되고 더 체계화된다면, 그들도 결국 변해버릴까.
시장경제 시대에는 근면이 중요했지만, 다가오는 시대에는 협동형 커먼즈 내에서의 ‘심오한 활동 Deep Play’이 그것과 동등하게 중요시되며, 사회적 관계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시장 자본을 축적하는 것만큼이나 높이 평가받는다.
일본에 가는 날이 온다면 일본인인 사야카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겠지만, 어쩌면 태국에 가게 될지도 모르지. 중요한 것은 동료의 숫자가 아냐. [유형이 다른] 이런저런 동료가 있는지야.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갑자기 남편 회사가 망하고, 내가 우리집 가장이 된다면 -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고, 내가 경제적 책임을 무겁게 지어야 할 때가 온다면 - 나는 어떻게 그 상황을 헤쳐나갈 것인가. 회계법인에 다시 입사해야 할까? 아님 새로운 강의 판로를 개척해야 할까? 그런데 AI 시대에, 늙어버린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배워두는 게 좋으려나?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다가, 무얼 하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금세 도달한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자격증이 아니라 다양한 인맥과 다채로운 경험이니까. 인공지능이 회계사로서의 능력은 쉽게 대체할 수 있겠지만, 내가 쌓아온 인맥과 경험은 대체할 수 없을 터이다. 그리고 그것은 억지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즐기면서 즐거웁게 쌓아온 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나는 또 청킹맨션에 사는 탄자니아인들의 이야기가 좋았고, 그들의 생각과 믿음이 옳은 것이기를 바랐다. 이들의 인생 보험은 '저축'이 아니라 '함께 나눔을 하는 동료들'이라는 이야기를 부적처럼 가슴에 새긴다. 왜냐면 실제로 나는 저축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
매일의 생활 자체에 실현해야만 할 즐거움이 묻혀 있다면 일생을 그저 여행으로 끝낸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을까.
'덜 된 인간' 카라마는 정말 그의 믿음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사랑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그를 더 행복하게, 그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은 분명하다. 타자혐오뿐 아니라 자기혐오와 극심한 자기 검열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카라마를 소개해주고 싶다. 우리 조금 편하게, '현재'를 살아내자고. 어차피 사람과 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 목적지에 집착하지 말자. 목적지 없이 떠도는 여행이면 좀 어떠하랴.
번외)
우리가 흔히 사용해 온 세계지도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실제 아프리카의 면적(3037만㎢)은 그린란드의 14배에 달하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인 러시아의 1.8배이고, 미국·중국·인도·유럽(러시아 제외)을 다 합친 것보다도 크다. 하지만 세계지도에서 만큼이나 우리의 인식 속에서 아프리카는 자주 축소되고, 왜곡되고, 저평가된다.
신혼여행을 아프리카로 다녀왔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 같은 여행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2주간 남편과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프리카가 왜 이래?", "아프리카가 어떻게 이래?"였다. 아프리카 하면 고작 떠올린다는 것이 흑인과 더운 날씨, 동물들?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우리가 만난 아프리카는 참 추웠고, 편차가 큰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를 가이드해 줬던 열혈 나미비아 청년과 인스타 친구를 맺었고, 아프리카에 대해 공부해 보자고 남편과 다짐했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하다. 많이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탄자니아에 대학이 있다는 사실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남아공의 화려함을 두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를 떠올리고, 탄자니아를 상상하면 초원과 동물, 까맣게 그을리고 삐쩍 마른 사람들만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편협하고 이렇게나 무지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카라마와 그의 친구들에게 자주 많이 부끄러웠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된 결론 외에도 이런 점에서, 내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 책이었다.
[발제문] by SSM
1. 이 책은 홍콩 청킹맨션에 모여사는 탄자니아, 아프리카 브로커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줌으로써,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환경과 인간관계를 서술해 나가고, “아무도 믿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는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개인의 이름을 걸고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쉽게 믿고 구매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온라인의 기록 추적과 공개성은 개개인의 행동을 법대신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을까요?
2. 송길영 박사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개인으로 분화된 사회 속에서 서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사려 깊은 무관심“이 새로운 사회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언급하는데요. 우리 생활 속에서 ”사려 깊은 무관심“이나, “신뢰가 부족하더라도 연결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어떤 상황 속에서 “사려 깊은 무관심”이 도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나요?
3. 이미 우리는 오래전부터 불특정 다수와 중고판매를 경험하였고, 유랑 등 여행플랫폼을 통해 모르는 이들과 여행도 다녔고, 최근에는 당근마켓으로 중고거래 외에도 경찰과 도둑 같은 게임을 한다던지 모르는 이들 간의 상호 연결을 해주는 가 하면, 오픈채팅방이나 블라인드라는 플랫폼을 통해 익명의 힘을 빌려 혹은 비슷한 고민이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생각을 공유하기도 해 왔습니다. 즉, 이러한 사회현상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의 확대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것인데요. 다시 말해 우리는 과거에 비해 같은 아파트 옆집 사는 사람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진 반면,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 더 마음을 열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클라라와 태양>의 조시처럼, 친구를 물리적으로 만나는 일보다 AI나 온라인과 더 가까워져 가는 과정일까요? 왜 이런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4. 청킹맨션의 보스 카라마를 포함한 책에서의 인물들은 친근한 옆집아저씨와 같은 이미지로 느껴지는 반면, 범죄와의 전쟁 등의 영화에서 접할 수 있는 국내 거주 중인 불법체류자나 조선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도 꼭 범죄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불법체류자를 잠재적 범죄/안보 위협 집단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제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며 불법체류자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특히 한국은 인구감소가 다른 나라 대비 더 빨라지리라 예측되는 만큼 다양한 국가의 이민자들과 함께 어울러 살게 될 가망성이 높으며 자연스레 불법체류자 이슈가 지속 제기될 수밖에 없는 만큼 어떻게 우리는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5. 청킹맨션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주변에 삶과는 사뭇 다릅니다. 여러분도 해외 거주, 체류경험이나 다른 지역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가 살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나요? 어떤 경험이었는지, 그리고 왜 새롭다고 느꼈는지, 그리고 그런 경험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