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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서평

by 책 읽는 라푼젤


우리는 생존 기계다. 즉 우리는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다.


AI 관련 서적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늘 질문 하나가 남곤 했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과 유사한 감정체계를 가진 AI가 탄생한다면, 인간은 그들과 어떻게 구별 지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수없이 고민했던 그 질문에 드디어 해답이 생겼다. 바로 '유전자'다.


유전자는 생존기계로서 단백질 덩어리인 인간을 만들어냈고,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식으로 인간을 프로그래밍하였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시점과 인간 실제 삶의 시차로 인해, 미래를 보지 못하는 유전자의 근시안적 한계로 인해, 유전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몸속에 새겨진 수많은 유전자의 성질에 기반하여 성장하되 다양한 환경적 영향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 학습하며 나아간다. 마치 AI의 핵심기능인 '딥러닝'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러나 AI에는 다음 세대로 전달할 유전자가 없다. 복제와 '기술적' 진화는 가능할지언정 그들에게는 계승할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유전자들은 자기복제자이고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우리의 임무를 다하면 우리는 폐기된다. 그러나 유전자는 지질학적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영원하다.


이 책을 읽고 인간 존재에 대한 허무함이 밀려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정도 처음에는 이와 유사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는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가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유전자들의 암투와 협력 속에 꼭두각시처럼 흔들릴 뿐 우리의 삶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지금 이 모든 감정, 사랑과 질투와 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허무마저도 한낱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도.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관점의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라는 운반자안에 들어앉아 있는 2만 개의 유전자들이 협력하여 프로그래밍해 낸 '나'의 모습이 과연 이게 맞을까? 나는 그들이 의도한 대로 성장하였을까. 나는 유전자의 2분의 1을 공유하는 엄마나 아빠와도, 근연도가 2분의 1인 친동생이나 우리 지우와도 너무 많이 다르다. 당연히 소름 끼치게 닮은 구석들도 여럿 존재하긴 하지만, 삶의 방향도 목적도 좋아하는 것도 모든 것이 다르다. 외모를 제외한다면, 나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드는 친구들이 오히려 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인간이 유전자가 프로그래밍한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유전자의 착각이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다 유전자의 프로그래밍에 따른 결괏값인 걸까.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일생 동안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을지라도, 유전적 수단으로는 그중 단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무無에서 시작한다.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유전자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생 동안 내가 축적해 온 지식과 생활양식은 당연히 '생물학적으로' 지우에게 하나도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축적한 그 모든 경험들로 인하여 지우의 유전자는 다르게 발현될 것이다. (그런 발현의 방향마저도 유전자의 큰 그림일지 모르겠으나) 유전자가 그려놓은 설계도를 짓밟을 수 있는 것도, 유전자가 상상치 못했을 멋진 작품을 완성해 낼 수 있는 것도 모두 인간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살'과 '피임'의 선택을 통해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주인'님의 목적에 반기를 들어왔다. 그리고 윤리적 문제는 잠시 차치해 두고, 이미 인간은 '유전체 편집 기술'마저 실현시켰다.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기적 행동을 하도록 지시할지 모르나, 우리가 전 생애 동안 반드시 그 유전자에 복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전적으로 이타적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경우보다 이타주의를 학습하는 것이 더 어려울 뿐이다.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학습되고 전승되어 온 문화에 지배된다.


자기 복제자는 행동하지 않는다. 또한 세상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며 먹이를 잡거나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도 못한다. 자기 복제자는 이와 같은 모든 것을 하는 운반자를 만든다.


자기 복제자인 유전자는 행동하지 않는다. 세상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유전자가 생존하고 번식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왜 그들은 생존하고 번식해야 하는가. 제아무리 전 세계에 유전자를 흩뿌린 번식왕 유전자라고 한들 그 성취가 무슨 값어치가 있을까. 인간이라는 생존기계의 몸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억겁의 세월을 살아내는 불멸의 존재라고 한들 그게 무슨 재미란 말인가. 유전자가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할지언정 그들은 너무도 보잘것없고, 무의미해 보인다. 소멸해 버릴 때에도 그들은 '소멸' 자체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반면 나는 이 세상이 너무 재밌다. 사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사랑이 환상이거나 유전자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유전자가 개체의 삶에는 전혀 관심 없이 본인의 '생존'과 '번식'에만 집중하듯, 나 역시 내 유전자들이 생존하건 번식하건 관심 없이 나에게 주어진 매일의 삶과 즐거움에만 집중할 것이다. 유전자들의 생존 목적에 방해가 되는 나의 성향으로 인해 내 유전자들이 자연선택의 그늘 속에 폐기되어 버린다 해도, 뭐 내가 알 바인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짧은 삶을 살 뿐이다. 유전자 놈들이 나를 어떻게 설계했건 간에 나는 그 설계를 즐겨줄 테다. 내가 반드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라도.


어쨌든 내 인생을 재밌게 설계해 줘서, 매 월 끝내 서평을 써내고 마는 불굴의 집념을 내 안에 심어줘서 고맙다, 유전자들아. 너희의 목적도 성공하길 바랄게. 굿 럭.


[발제문] by JSY

1. 이 책은 생물학의 주인공을 '개체'에서 '유전자'로 바꾸며, 과학이 인간을 설명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재편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체의 행동양식을 '이기적 유전자론'에 입각하여 분석하였는데요. 그렇다면 다음의 사회현상들은 ‘이기적 유전자론’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1-1) 도킨스에 따르면, 유전자는 오직 생존과 번식만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렇다면, 비단 한국뿐 아니라 선진국 전반에서 관찰되고 있는 출산율의 급감과, '딩크'나 '독신주의'의 확산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번식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유행 중인 것일까요, 아니면 불멸의 자기복제자에 대한 '운반자'의 반란으로 봐야 할까요?

1-2) 이기적 유전자론의 관점에서, 번식과 (복제된 유전자의) 양육까지 마친 노인의 신체는 유전자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로 보입니다. 자원 고갈의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노인의 빠른 죽음이 복제된 유전자들의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해 보이는데요. 인간의 수명을 다시 짧게 만드는 유전자가 자연선택될까요? 아니면 또 다른 선택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요?

1-3) 앞선 질문에 이어, 노인을 공경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번식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노인은 여전히 지식과 문화를 전승하는 ‘밈(meme)’의 운반자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보호되는 것일까요?



2. 피터 메더워에 따르면, 성공한 유전자는 자기 생존 기계의 죽음을 적어도 번식한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특정 연령 이전의 번식을 인위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다면 인간의 수명 역시 연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 진출, 결혼, 출산의 평균 연령이 과거에 비해 지속적으로 늦어지고 있으며,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과거의 같은 나이 대비 더 젊고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초경 평균 연령은 오히려 앞당겨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와 같이 생물학적 '성숙'의 시점과 사회적 '번식'의 시점이 점점 어긋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 도킨스에 따르면 암컷과 수컷은 ‘번식’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번식 비용의 비대칭으로 인하여 생물학적으로 수컷이 암컷을 착취하는 구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습니다.

3-1) 과거의 가부장적 사회 질서는 문화적 산물이라기보다, 번식 비용의 비대칭이라는 유전적 특성이 제도화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3-2) 다양한 피임 방식,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의 보편화는 '번식'의 통제권을 인간 개체에게 쥐어준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기술적 개입은 남성 - 여성 간의 권력 균형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3-3) 현대 사회에서 양육 비용이 가족을 넘어 사회 전체로 분산되면서, 번식 비용의 비대칭이 많이 개선되었을까요? 아니면 갈등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그 근본 구조(착취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4.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유전자는 자연선택되어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까요? 아니면 도태되어 사라질 확률이 높을까요?



5. 이 책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단 5회 등장)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론'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유전자의 번식과 생존을 돕기 위해 선택된 진화의 산물이거나 인간 개체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조금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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