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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Apr 19. 2020

Educated

교육을 통해 자아을 찾아가는 과정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사회적 성공과 부를 추구하고 이런 성취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타라 웨스트 오버'는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성취를 이루었다.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이뤄낸 '자아의 발견'에 대한 것이다.


정부를 불신하는 아버지로 인한 홈스쿨링

저자는 오하이오의 버드필드라는 산골짜기에서 자랐다. 정부와 관련된 모든 것(출생신고, 학교, 병원 등)은 음모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 탓에 학교를 다녀보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폐차장에서 일을 하거나 보모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특히 폐차장에서 일을 하다가 위험한 상황들을 많이 겪었다. 날카로운 고철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베이기도 하고, 그녀의 오빠는 한쪽 다리 전체에 전신 화상을 당했다. 이런 치명적이고 위험한 사고들이 발생하더라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산파와 약초 만드는 일을 하는 그녀의 어머니가 직접 치료했다. 약초와 오일을 배합한 연고로 치료했으며 생사를 주님의 뜻에 맡겼다.


더불어, 그녀의 부모님은 모르몬교라는 신앙을 철저하게 믿고 숭배했다. 소매가 짧은 옷을 입는 것은 창녀가 하는 행동이라고 주입했다. 주일에는 성경 외에 다른 책을 보면 안 된다거나, 제로콜라는 가짜이기 때문에 마시면 안 된다는 등 다양한 규율을 지키며 살았다.


세상의 종말을 믿는 아버지는 헛간 근처에 깊은 구멍을 파놓곤 그 안에 수많은 기름과 비상식량들을 숨겨놨다. 이 세상이 멸망한다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2000년이 되기 몇 달 전에는 지하창고를 비상식량으로 가득 채워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읽으면서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치명적인 부상들을 집에서 직접 치료한다는 내용들이 낯설고 무서웠다. 일반인에겐 다치면 가는 곳인 '병원'이라는 것이 저자의 아버지에게는 '정부의 음모'이고 그 확고한 믿음으로 인해 자녀들이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 소름 끼치듯 무서웠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함에도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작용하는 가를 실감했다. (그녀는 아프면 어머니가 만든 물약을 먹으며 고통을 참곤 했다. 나중에서야 진통제라는 것을 먹었다. 그녀는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 예방 접종을 맞아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사람 몸의 치유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점에 놀랐다;;

저자의 오빠 중 한 명인 리처드는 오일이 묻은 청바지를 입고 일하다가 불이 붙어 한쪽 다리에 엄청난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병원에 가지 않고, 약초로 만든 연고를 계속해서 바르고 집에서 요양하며 회복했다. 병원에서 피부 이식을 받는 것과는 피부의 상태가 다르겠지만 병원에 안 가고 사람이 회복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버지도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었는데, 최악의 화상이었지만 죽어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하여 집에서 치료했다. 집 안은 살이 탄 고약한 냄새로 가득찼고, 죽은 살들을 끊임없이 쓸어내고 계속해서 연고를 발랐다. 모두가 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회복됐고, 살아계신다.. 덕분에 연고의 효능과 이 기적이 알려져 어머니의 연고 사업이 엄청나게 번창한다. 



친오빠의 폭력

엄격한 종교적인 규율, 정부를 불신하기 때문에 학교와 병원을 보내지 않는 아버지,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어머니 등 그녀의 환경은 이미 벅찬 것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정작 오랜 시간 동안 그녀에게 큰 트라우마가 된 것은 친오빠의 폭력이었다.


숀 오빠는 평소엔 상냥하지만 무언가 맘에 들지 않으면 엄청나게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저자가 가벼운 말대꾸를 하거나 자신에게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을 때 폭력을 행사했다. 마구 때리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기 전까지 변기에 얼굴을 처박는 식이었다. 이런 폭력에도 저자는 자신이 약하지 않다고 속이기 위해, 평소 모습의 오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어난 폭력들을 부정했었다. 쇼핑몰 주차장에서 오빠가 그녀를 마구 때릴 때에도 마치 장난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웃기도 했다. 얼굴이 멍들어가면서 말이다.


추후에 대학을 가고 이 일에 대해 부모님께 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너무 멀어져 버린 저자를 믿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자녀였기에 부모의 입장에서도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겠지만 그들은 그저 쉬운 선택을 한다. 그들이 믿는 것을 함께 따르는 자녀인 숀을 선택한다. 


두 세계를 가르는 것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부모님과 사업을 함께 하는 자녀 넷, 그곳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는 그녀를 포함한 자녀 셋 그들은 이렇게 갈라졌다. 독립한 자녀들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다니고 '교육'을 받았다. 애석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하는 자녀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고, 벗어난 이들은 모두 학위가 있다. 


그러나 벗어난 자녀들도 부모님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는 괴리를 겪어야 했다. 과학자이고, 아이의 아버지가 된 타일러 오빠는 예방접종이 정부의 음모라고 생각해 아이의 접종을 거부했다. 이 이야기를 오빠의 아내에게 전해 들은 저자는 그때까지 자신이 예방접종을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만큼 기존 세계는 단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고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을 바로 '교육'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문장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아직 버즈필드의 산비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세기말을 믿으며 지하창고를 물자로 채워가고 있을 것이며 그녀를 타락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Educated 되었고 단단한 믿음에서 벗어나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삶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녀를 둘러싼 단단한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데미안>의 한 대목을 떠오르게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은 너무나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버드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을 때,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회유하기 위해 찾아왔다. 잘못을 뉘우치고(그녀가 폭력을 휘둘렀던 숀 오빠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몬교 성수 의식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No"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그녀는 기존 세계와 작별을 고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쓸 때에도 그녀는 부모님과 화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으로 인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세계 안에서 공존할 수 없다면 고통스러울지라도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녀는 교육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더이상 나약했던 그 소녀가 아니다.


교육의 재발견

현대사회에서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좋은 대학 또는 회사를 다니기 위한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교육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좁고 단단했던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나오는 과정을 통해 교육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것이 진정 교육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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