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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Sep 02. 2020

집콕하며 콩나물 재배하기

슬기로운 집콕생활(소소함 주의)

이젠 정말 종일 집에 혼자 있다. 확진자가 급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가 되었고, 다시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평소에도 적지 않던 혼잣말은 스스로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취와 재택근무를 동시에 하는 직장인은 고독이 배가 되어 이 시기를 견뎌내야 한다. (이번에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정말 너무나 출근이 하고 싶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평소에 에너지가 넘쳤지만 요즘은 그저 하루하루를 생존하고 시간을 흘러버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성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집념과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혼자서 집에 종일 있으면서 재밌게 놀 수 있을까 방법들을 찾아 실행해보고 있다. 


극악했던 고독이 덕분에 조금은 풀린 것 같다.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심심함과 우울함에 젖어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쓰게 됐다. 글 길게 쓰지 말고 재밌고 가볍게 혼자 노는 방법에 대해 써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서론이 너무너무 길었다!


콩나물 재배하기

콩나물 재배가 잘 맞을 사람

2-3시간에 한 번씩 콩나물에 물을 줄 수 있다. 화장실 가는 길목에 두면 적절한 타이밍에 물을 줄 수 있다.

집에서 가끔은 요리를 하고, 그게 무엇이든 콩나물을 넣어 해먹을 수 있다.

성가신 것을 좋아한다.


콩나물 재배가 맞지 않을 사람

요리를 안 해 먹어서 키운 콩나물을 어찌할 수 없다. -> 이웃이나 친구에게 나눠주면 괜찮다.

2-3시간에 한번 물을 줄 수 없다. -> 자동으로 물주는 기능이 있는 상급 버전의 콩나물 재배기를 사용하면 괜찮다.

성가신 것을 싫어한다 -> 이건 설득할 수가 없다.


콩나물 재배 장점

무서울 정도로 빨리 자라므로 물을 줄 때마다 그 성장세를 보며 쉽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돌볼 대상이 생겨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혼자 계속 지내다 보면 스스로의 존재감이 무에 수렴하려고 하는데 돌볼 대상을 통해 그걸 막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콩나물 재배 단점

콩나물 머리 다듬는데 과거 회상에 빠질  수도 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콩나물 사 오면 머리 다듬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깨끗한 콩나물만 마트에서 파네..
콩나물 머리 벗길 때 콩머리도 꺾었다가 엄마한테 등짝 맞곤 했는데..'

사 먹는 것보다 내가 키운 게 덜 싱싱하다.

사 먹는 콩나물이 더 맛있다.


실전! 콩나물 재배하기


1. 준비물: 콩나물 재배기(6천 원), 콩나물 콩(시장에서 판매. 시가)

콩은 어두운 곳에서 쑥쑥 자라므로 저 채반에 콩을 올려놓고 뚜껑을 덮어 키우게 된다.

콩나물 콩은 시장이나 인터넷에서 살 수 있다. 


2. 콩 불리기(4시간~8시간)

미지근한 물에 콩을 4~8시간 불린다. 처음 시작할 때 한 번만 불려주면 된다.


3. 콩 올려두고 뚜껑 덮기(물 주기 반복)

채반을 들고 콩에 촉촉하게 물을 준다. 받침대에 고인 물을 털어내고 채반을 다시 올리곤 뚜껑을 덮는다.

이런 식으로 2-3시간에 한 번씩 계속 물을 주면 된다.


4. 지켜보며 뿌듯함 느끼기

아이들이 정말 쑥쑥 잘 자란다. 3-4일 후에 수확하면 됩니다.



5. 수확하기


콩나물 머리를 다듬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어릴 땐 콩나물 다듬는 게 싫었는데~ 이 고생을 자발적으로 하네~'

콩나물 잔뿌리는 생각보다 포악하게 생겼다. 다행히 먹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콩 중 나물로 태어나지 못하고 사라지는 친구들과 너무 작아서 다듬다가 포기하게 되는 친구들을 보면 가성비라는 게 있는 행위인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심심한 자취생에게 가심비는 만점~


6. 요리 해먹기


제육볶음이라던가 불고기 등 콩나물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요리만 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사 먹는 것보다 퍽퍽하고 덜 싱싱하게 느껴지는 건 무시하고 맛있게 먹는다.



콩나물 재배 꿀팁

노란콩보다 검은콩으로 키우는 게 더 잘 자란다는 경험담이 많다. 검은콩으로 키우면 콩나물이 자라서 검은 머리를 자연스럽게 떨쳐내므로 다듬으면 된다. 그러면 노오란 콩나물 머리가 살포시 드러난다.

콩나물이 수확시기보다 조금 더 자라면 잔뿌리가 생긴다. 3번 키워봤으나 잔뿌리 없이 수확해본 적이  없다 ㅠㅠ 그 잔뿌리가 좀 무섭게 생겨서 화들짝 놀랄 수도 있다. (위 사진 첨부)

콩나물 콩 구하기가 힘들다. 마트 3곳에서 콩나물 콩을 찾다가 이상한 시선을 받고 실패했다. 전통시장에서는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인터넷에서도 살 수 있다. 역시 인터넷은 쇼핑의 홍수~

재배기 받침에 물이 너무 고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이 고이면 잔뿌리가 자라고, 뿌리가 갈색으로 변색된다. 물이 지나치게 고여있으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잔뿌리는 먹어도 괜찮다. 네이버 검색에 따르면 콩나물 재배해서 자주 드시는 주부님들도 다들 잔뿌리를 먹는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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