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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Oct 18. 2020

자기 앞의 생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생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때로는 고통을 목구멍에 처넣기도 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음미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생은 스쳐 지나간다.



프랑스의 빈민가 아파트의 7층,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집에서 자란 모모는 생의 비밀을 빨리 깨닫는다. 당대에 핍박받는 계층인 남장여자, 은퇴한 창녀, 아프리카 이민자 등이 모여사는 아파트에서 로자 아주머니는 허가받지 않은 집에서 몰래 아이들을 키운다. 돈을 받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지만, 돈이 끊기거나 몇 달 밀리더라도 아이들을 버리지 않는다. 특별한 감수성을 지녔던 모모를 다른 아이들보다 유달리 사랑했기에 모모가 조금 더 곁에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이를 10살이라고 속이기도 한다. 모모가 10살이 되었을 때(실제로 14살일 때) 로자 아주머니의 생은 그녀를 떠날 준비를 했다. 


가장 박해받고 궁핍한 사람들이 살고 있던 곳이지만, 그들은 로자 아주머니를 찾아와 간호하고 그녀가 온전한 정신상태로 남아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 곁에는 항상 모모가 있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었다.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 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10살 모모에게 로자 아주머니는 유일한 사랑이었다. 모모에게 호의적이고, 로자 아주머니보다 아름다운 나딘 아주머니를 알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로자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늘 집으로 돌아갔다.


모모와 이웃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자 아주머니의 생은 끝났다. 그녀의 생이 떠나가고 나서도 모모는 그녀에게 향수를 뿌린다. 생전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죽음의 악취를 숨길 수 없었고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낸다. 모모는 나딘 아주머니에게 보내지게 된다.


그는 로자 아주머니와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모모가 사랑하던 이의 생은 끝났지만 모모의 생은 남아있다. 아직 모모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모는 분명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 될 것이다. 이미 로자 아주머니를 온전하게 사랑해본 적이 있으니까.

출처: 자기 앞의 생 - 문학동네

독서를 통해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거나 지식을 정리하는 일은 자주 해보았지만,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당혹스러웠다. 책을 덮고 먹먹한 감정의 덩어리가 느껴졌지만 그게 무엇인지 해부해볼 수가 없었다.

왜 먹먹했는지, 그 실체가 무엇인지 그 감정이 책의 어떤 부분으로부터 불러일으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곱씹어서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서로를 특별하게 여기지만 때론 못나게 사랑한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사랑이 현실적이기에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를 못나게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묻다가 두려워졌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야 깨달았다. 문학작품을 자주 읽어 감정에 섬세하고 더욱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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