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면과 마주하고, 온전히 자립한다는 것
처음엔 이 책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일부 표현에서 느껴지는 지나친 자기애, 미국인이라는 자부심, 젠더의식이 걱정스러운 표현들, 번역이 이상한 것인지 허술한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여서, 많은 여성들이 이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지나친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끝까지 읽고 보니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고, 왜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명상 여행을 떠났는 지도 알 것 같았다.
작가는 이혼소송과 그즈음의 뜨거운 연애를 통해 몸과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다. 그러다 특집 기사 취재를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를 가는데, 주술사에게 손금을 보다가 "당신은 1년 뒤에 이곳으로 돌아와 자신과 함께 지낼 거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 그렇게 하고야 마는 사람이었고, 이혼 소송을 끝내자 1년 간 이탈리아로 인도로, 인도네시아로 떠나게 된다.
첫 번째 장소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두 번째 장소인 인도에서는 외딴 마을의 아쉬람(신전)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하고 경전을 읽고, 가사노동을 하며 내면세계를 들여다본다. 세 번째 장소인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된 주술사의 집을 다시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발리식 명상을 배우기도 하며, 그곳의 한 여의사와 가족을 돕고, 다시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치 한 편의 소설 같은 에세이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탈리어를 배우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모습에서는 큰 감명을 받진 못했다. 작가는 이혼으로 인한 죄책감과 흉터처럼 남아 괴롭히는 옛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때까진 도대체 왜 이 책이 유명한 것인가. 당시 여성들이 솔직하지 못했던 "나는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아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결혼 생활이 불행하니까 이혼하고 싶어요."를 당당하게 외치고 1년 간의 독특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 에세이의 진면목은 '기도하라'에 있었다. 매일 아쉬람에서 명상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난 기억들과 싸우고, 진정한 평화에 닿기 위한 노력들과 그 체험들을 읽으면 절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도입부에서 일상을 묘사하는 엉성한 표현보다 명상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기도 편에서 작가의 경험은 주관적이다. 일부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난감한 내용을 포함한다. 책에 대한 감상은 독자가 그간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읽을 당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매우 결정적으로 영향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 좋게도 명상을 해보았고, 몇 달간 온 주말을 바쳐 수련을 해본 적도 있다. 타인의, 특히나 심도 있게 수련을 해본 이의 경험을 접하고 그것에 공감할 수 있어서 기뻤다.
덕분에 내가 작년 이후로 내면을 들여다보길 멈추었다는 것에 대해 멈추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몇 달간 주말마다 요가원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수련한 적이 있었고, 몇 달간 새벽 6시에 일어나 요가원에 가서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하기도 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느낌을 나누고, 내면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낯설기도 했지만 경이로웠다. 사실 그 당시에는 심적으로 불안하고 불만족이던 상태였기 때문에 더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엔 감정을 크게 어지럽히는 일도 없고, 그저 평온하게 지내고 있기에 이 모든 것을 덮어두고만 지냈다.
하지만, 인도에서 평화를 찾고 인도네시아에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저자는 명상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행복은 개인이 노력한 결과다. 행복을 얻기 위해 싸우고 노력하고 주장하고 때로는 행복을 찾아 세상을 떠돌기도 해야 한다. 행복이 발현되는 과정에 무지막지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행복한 상태에 도달했으면, 그것을 유지하는 걸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행복을 향해 영원히 헤엄치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내면의 만족감은 쉽게 빠져나갈 것이다. 고통에 처했을 때 기도하는 건 쉽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기도하는 건 봉인 작업과 같다. 우리의 영혼이 그 훌륭한 성취를 꼭 붙들고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명상을 하다가 이런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잠들기 전 죽음 이후 어떻게 될까라는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음 날 새벽 수련을 하고 명상을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분하게 눈을 감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음이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그러자 주마등이 스친다는 말을 실감하듯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나뭇잎 사이에 반짝이는 햇살, 바람이 부는 시원한 언덕,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이상하게 나의 죽음 직전을 간접 체험했지만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지난 삶에 대한 집착도 더 못 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다. 그저 ‘잘 살았다. 그리고 참 아름다웠다’라고 안도했다. 그 후론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때때로 잠들기 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떠올라도, 그때 명상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지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이전에 느꼈던 이런 소중한 경험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
한 편, 이 에세이가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이 쓰일 당시에는 카메라가 보편적이지 않았나 싶다가도, 2006년에 발행됐고 그 이전이라면 애매한 시기이긴 하다. 글로써 모든 묘사를 이해하는 것, 팩트이지만 머릿속으로 온전히 그려가며 읽어야 하는 것. 덕분에 에세이를 읽으며 마치 소설에서만 사용하는 두뇌 영역을 사용할 수 있었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