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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Mar 24. 2019

인간에게, 나에게 다가서는 열두 발자국

인간이라는 숲으로 난 열두 발자국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

저자가 밝힌 책 제목의 본래 의미이다. <열두 발자국>은 '뇌'라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인간을 다루고 있지만, 이러한 보편적인 이야기는 사실 우리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우주만큼이나 심해만큼이나 미지의 영역인 '인간'.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 12가지가 소개된다.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연구의 내용보다, 연구의 내용에 빗대어 정재승 교수가 해주는 조언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중 인상 깊은 내용들을 추려보았다.



나만의 지도를 그려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려면 세상에 대한 지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 내가 그린 그 지도 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젊은이들에게 지도 기호와 지도 읽는 법을 가르쳐주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착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려고 길 찾기를 열심히 훈련시켜 세상에 내보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세상에 대한 여러분만의 지도를 그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시절에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지 못하면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남의 지도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남의 지도를 뜯어내 대충 맞춘 '누더기 지도'를 들고 그걸 자기 지도라고 믿게 됩니다.
지도를 그리는 빠른 방법이란 없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간만이 온전한 지도를 만들어줍니다. 유치원생의 마음으로 미친 듯이 세상을 탐구하세요. 그 지도가 아무리 엉성하더라도 자신만의 지도를 갖게 되면 그다음 계획을 짜고 어디서 머물지를 계획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인생 동안 그 지도를 끊임없이 조금씩 업데이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 나서, 잠시 책을 덮고 나만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나는 어떠한 선택들을 하며 살아왔고,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일까. 추후 이 부분은 따로 글로 남겨보고 싶다.



결핍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여러분에게 결핍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이 결핍되었습니까? 그 결핍이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내 삶에서 결핍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세요. '나는 어린 시절 무엇이 부족했나. 진짜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보세요. 여러분에게는 인생의 결핍과 대면할 용기가 있습니까? 그것이 열등감이나 정신적 병균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당당하게 대면할 용기를 가지세요. 결핍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나의 유년기는 '결핍'이라는 단어와 퍽 잘 어울리기에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가끔은 나의 결핍이 지나친 구김살을 만들기도 하고, 밑도 끝도 없는 질투로 가득차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핍으로 인해 나름의 성장을 해올 수 있었다.

다만, 결핍을 올바르게 대면하되 그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소모시키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놀이는 창조적인 행위이며,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이다.

놀이는 인간의 내재적 본능이며 심지어 뇌의 여러 영역을 발달시켜주는 창조적인 행위인데, 왜 우리 사회는 놀고 있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걸까요? 어른들이 제대로 놀 수 있도록 놀이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른들의 놀이가 터부시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혼자 노는 사람인가, 아니면 같이 노는 사람인가?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교수가 놀이를 창조적인 행위로 인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아성찰의 기회로 본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나는 어떻게 노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즐거운 사색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생산할 때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것이 글이든, 뜨개질 인형이든, 그림이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일종의 강박일 수 있지만, 시간이 주어졌을 때 영화보다 책을 읽는 것에 죄책감을 덜 느낀다. 그리고 그저 보고, 읽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걸 기록하거나 적어도 메모라도 남겼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 생산을 통한 뿌듯함이 내게는 즐거움이다.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여행을 가서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생산하지 않아도 즐겁다. 어쩌면 온전히 쉴 수 있는 방법은 평소와 다른 경험이 가득한 하루를 보낼 때인 것 같다.



삶의 진폭을 넓히기 위한 방법

배스킨라빈스의 30가지 정도의 아이스크림 중에서 여덟 종류의 아이스크림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퍼센트가 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라 먹지 않고 늘 먹던 걸 먹습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뇌를 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골라 먹는 재미란 없다'는 게 제 연구결과입니다.

우리가 뇌의 에너지를 기꺼이 사용하면서 즐기는 일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일상은 습관으로 가득 차 있게 되었습니다. 으레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하는 삶. 그렇게 판에 박힌 듯이 돌아갑니다. 그게 바로 우리 '삶의 진폭'입니다.

자기 삶의 진폭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세요. 이건 행동반경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명단을 한번 작성해보세요. 일상에서 내가 노력해서 만나는 사람의 수를 세어보세요. 옷장을 열어보세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삶의 진폭이 줄어들거나 고정됩니다. 새로고침이 더 어려워진다는 거죠.

습관이라는 안락함 속에서는 평화롭게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요. 반면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버겁습니다. 때문에 인생의 리셋도 어렵습니다. 새로고침을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해보면 나쁜 습관, 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나와 다른 분야에 있는,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집니다. 불편함을 견디면서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살지 않으면, 내 삶에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새로고침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나쁜 습관,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새롭게 뒤바꿀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있는 곳으로 먼저 여러분이 움직여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계속 연락하고 지낸, 나와 관심사가 유사한 친구들과만 만나게 되고, 직장 동료들은 당연히 나와 비슷한 일을 사람들로 한정 지어졌다. 이러한 환경 속에 나 자신을 계속 방치해둔다는 것은 삶의 파동을 일정한 진폭으로 진행하게 내버려 두는 일이다.

작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독서 모임에 갔었을 때, 다양한 일을 하는 다채로운 고민을 지닌 개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덕분에 나의 파동도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조금은 다르게 진행돼온 것 같다.

이러한 자극을 더욱 자주 줘야겠다. 일정한 파동은 안락함을 주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파동들 간의 간섭은 시너지를 발생시키기도 하니까 말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진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뭘 한다고 대단히 큰 이득을 보는 것도 없고, 반대로 뭘 안 한다고 해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부담이 적어져서 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돼요. 망설이는 데 힘과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지요. '메멘토 모리'는 의사결정의 무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놓이게 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전략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를 옮긴다거나 유학을 간다거나 하는 거죠. 삶의 환경이 바뀌면 저절로 새로고침이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집을 구하고 차를 구하고 가구를 놓고. 하나하나 삶을 완전히 리셋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그것이 굉장한 스트레스겠지요.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상태로부터 벗어난 삶이니까요. 결국은 그 삶도 언젠가는 일상이 될 테니, 한동안만 그 혼란스러움을 즐기면 됩니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진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메멘토 모리를 기억한다면, 하고 싶지만 망설였던 일들 또는 할까, 말까 고민하던 일들에 추진력을 달아줄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하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죽음이 존재하기에 가능하고, 그렇기에 우리는 너무 버겁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20퍼센트쯤 열어두는 삶

여러분은 과거의 경험과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때그때 삶을 꾸려나가야겠지만, 그중 10~20퍼센트 정도는 새로운 탐색을 하는 삶을 살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만 예전에는 못했던 일을 시도해볼 수 있고, 새로운 삶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면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과는 얻겠지만, 새로운 시도가 주는 큰 즐거움과 뜻밖의 수확은 얻을 수 없습니다. 삶에서 80~90퍼센트 정도는 기존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10~20퍼센트 정도는 방법 탐색의 전략으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점심시간에 자주 가는 식당에서 평소에 안 먹던 메뉴를 먹어보곤 실패의 경험도 해보고 의외로 맛있다는 뜻밖의 수확을 얻을 가능성도 20퍼센트쯤은 열어두는 삶이 새로고침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죠.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학창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다음 단계로 실패 없이 나아가야 했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에도 꼼꼼하게 리뷰를 읽어보고, 식당도 최소한 검색 결과가 존재하는 곳으로 간다.

꼼꼼한 것은 좋으나 모든 것에 세세한 것은 편안해야 할 때에 느슨하지 못하게 한다. 때로는 긴장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아야 한다. 이 또한 삶에 활력을 주고, 삶의 진폭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하고, 견딜만하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반면 불행은 미리 안다면 그 크기가 엄청날 겁니다. 우리가 불행이 닥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에는 결국 견디고 감내하지만, 예고된 불행은 그 순간 더 큰 불행의 시작이 됩니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그리고 견딜 만한 탐험인 것입니다.

이 대목을 읽고 두근거렸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예상치 못한 기쁜 행복과 감당할만한 불행을 가져다줄 것이다. 매일 출근하고 비슷한 5일을 살아내면서 마치 삶이 이대로 지속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삶에 다채로운 자극을 가져다준다면 삶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것이고, 그렇다면 예기치 못하기에 더욱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다.



과학적 사고에 기반해 판단하기

과학적인 사고란 내가 경험한 것, 내 옆 사람이 경험한 것과 같은 일화와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실제로 일어나는 통계를 구별하는 능력에서 출발합니다. 개별적으로는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지만 개인은 그것을 냉정하게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실제로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그 일이 발생할 만한 개연성을 이해하게 됐을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 태도, 내가 우연히 나 혼자만 아주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쉽게 믿지 않는 태도, 이것이 과학적인 태도의 출발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화를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내 친구 아버지가 어제 돼지꿈을 꿨는데, 로또를 샀더니 2층에 당첨됐대" 같은 사건에 휘둘리지 않는 걸 말합니다. 돼지꿈을 꾸고 로또에 당첨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그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돼지꿈을 꾸었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수많은 날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의 사건, 경험, 일화를 곧바로 증거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연의 일치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명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자주 떠올리게 될만한 실용적인 조언이다.

우연한 행운을 법칙으로 만들면 안 된다. 하나의 사건과 경험을 어떤 법칙의 근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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