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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Mar 31. 2019

숨결이 바람 될 때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죽음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고,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문학을 사랑한, 사람과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의사였다.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수료 후에 교수의 길을 걷게 될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 이미 그의 몸을 장악한 암을 발견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투병생활을 하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병이 악화되어 끝내 숨결을 거두고 만다. 그의 꿈과 삶, 죽음을 받아들였던 시간이 담긴 책을 남기고.


많은 죽음과 대면해왔던 의사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역시나 그 자신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이었다. 암이 전이되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가 겪어야 했던 그리고 다짐했던 수행했던 일들은 눈시울을 붉게 하기에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11시간 동안의 세상과의 격리 속에서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이미 한 인간의 생은 마침표 찍혔지만, 책 안에서 그의 삶은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고, 죽음으로 향해가는 과정을 거치며 그가 깨달았던 성찰들을 보며 감명을 받기도 했다.


현실과 격리된 환경에서 한 인간의 존엄한 죽음을 읽는다는 것은 현재 나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변화하기에 충분한 동력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시한부다.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드러나지는 않아서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른다. 애석하게도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그 시점을 모르기에 마치 영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순간순간을 즐겁게도, 어리석게도 살아갈 수 있다.


그가 이미 암이 전이되어버린 자신의 내부 엑스레이를 보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유통기한이 가려진 삶에, 그 글자가 선명히 드러났을 때의 두려움.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기에 때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하고, 더없이 낙천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때론 죽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인간의 시작이 끝을 맞이하기까지 그 시간이 더없이 짧고 소중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삶을 너무 무겁게 살고 있었다.

무언가를 책임지고, 목표를 달성하고, 공생하되 나의 순간순간을 돌아보지 못했다.

이제는 나의 순간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 조금은 가볍지만 진중하게 살아가고 싶다.




문학과 언어를 사랑하고,

생명과 인간 앞에 겸손했던 그가

인생에 대해 남긴 글귀들이 특히나 마음에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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