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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Jun 30. 2019

여행의 이유를 입 밖으로 소리 내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김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고 되짚어 보다

지난 주말 동안 교토로 여행을 떠났다. 여정을 마치곤 호스텔 침대에 누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다 잠들었다. 다음 날 다시 여정을 떠났고, 보다 여행을 음미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여행의 잔향을 깊게 들이마실 수 있었다.


나는 왜 그토록 여행을 떠나는가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달력의 빨간 글자를 발견하거나 시간이 나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여행이다. 그럼에도 그저 여행을 좋아한다 정도로만 생각했고, 왜 내가 그렇게 여행을 가는지에 대해 구체화하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사랑에 빠진 계기들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것처럼.


<여행의 이유>를 읽고, 나의 이유에 대해 정리해볼 수 있었다. 교토에서 사원의 정원을 산책하며, 다른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며, 귀국행 비행기에서 나의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보았다.


여행은 나의 오감을 위한 충실한 하루를 살아내도록 한다

여행을 가면, 우리는 단순한 생활 자체에 집중한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것과 새로운 것들을 보러 가고 새로운 감정과 감동을 느낀다. 아기자기한 상점에 들어가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어떤 것을 괜히 사보기도 하고, 해 질 녘에는 노을을 보러 간다. 저녁을 먹곤 차가워진 밤공기를 느끼며 야경을 보러 가 "와-"하는 감탄으로 여정을 마친다.

여행지에서 우리가 하는 것들은 단순하다.

여행지에서 우리가 하는 것들은 단순하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는 이 단순함을 실천하지 못한다. 일출은커녕 사람들이 가득 찬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출근한다. 종일 일하다가 잠시 점심시간에만 햇살을 쐬곤 저녁이 되어도 퇴근하지 못할 때가 있다. 도시의 불빛 속 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간다.

여행은 이런 일상 속 패턴을 따르지 않고,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보는 것에 집중한다. 현실에서 벗어나 나의 오감을 위한 충실한 하루를 살아낸다. 어떤 것으로부터의 속박이나 걱정을 내려놓고, 희생 없이 나를 위한 온전한 하루를 살아간다.


다양한 상황 속 나의 반응을 배운다

낯선 곳에 나를 두고 내렸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배운다. 3년 전 일주일간 홀로 미얀마를 여행했을 때이다. 쉐다곤 파고다라는 사원에서 사람들이 불경을 외는 소리를 넋 놓고 듣다가 애당초 계획보다 늦게 자리를 뜨게 되었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챙기고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야 했고,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넉넉하게는 아니어도 빠듯하게는 가능한 시간이 남았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지나치게 길을 헤맸고, 나는 미얀마어를, 그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골목골목을 헤매다가 밤이 되었다. 다행히 숙소에는 도착했으나 다음 여행지로 가는 버스를 놓쳤다.

많은 여행을 했으나 일정이 틀어진 적이 처음이었기에 나는 내가 되게 속상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당황스럽긴 했지만 생각보다 덤덤해서 놀랐다.

내가 너무 빠듯하게 떠났지.
다음부터는 시간을 넉넉하게 확보해야겠어.
특히,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 아니면


오히려 숙소 주인아저씨가 길길이 날뛰시고 화를 내주시고, 다음 날 탈 수 있는 버스를 알아봐 주셔서 나는 꽤 괜찮았다. 에어컨이 나오는 야간 우등버스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다음 날 현지인들이 타는 좁고 의자가 굽혀지지 않는 버스를 한 나절 타고 이동해야 했고, 일정과 몇 가지 비용을 손해 봤지만 나름 괜찮았다.

미얀마 양곤의 버스 터미널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예상과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 모습이 좋던 나쁘던 마치 우주의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것처럼 기쁘다.


여행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나를 느낄 수 있다.

미얀마를 여행할 때, 바가지를 정말 많이 당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올 때 알고 보니 원래 치를 값의 3배를 냈었고, 어딜 가도 기본적으로 2배씩은 낸 것 같았다. 혼자 온 여행자가 퍽 만만해 보였나 보다. 특히, 늦은 저녁 시간에 택시를 탈 때는 그저 안전에 대한 추가금이려니 하고 이악물며 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것을 몇 번 당하니까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를 타자니 언어가 전혀 안 통해서 내리는 시점을 잘 모르겠고, 시내에서는 탈만했으나 숙소까진 갈 수가 없었다.

밤에 3배에 가까운 택시비를 치르고 돌아온 날, 분해서 숙소 주인아저씨께 분노를 토해냈다. 이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두둑하게 받은 택시비를 챙기며 기분이 좋아서 저한테 미얀마 그림도 줬다고.

그러자 아저씨는 미얀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는 택시업을 해도 차를 빌리는 값, 기름값을 치르면 벌 수 있는 돈이 얼마 안 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공장에 가서 일하고 그렇게 벌어도 그때 내가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적은 돈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아마 나에게 그림을 주고 간 택시 기사는 오랜만에 집에 갈 때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이라도 하나 사갔을 거라고 했다. 바가지요금을 치르는 것은 당연히 화가 나지만, 그저 이것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그때까지 또 그 이후로도 나에게 진심이 아닌 잇속으로 다가왔던 이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날 밤 택시 기사에게 받았던 그림은 집 현관에 걸려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인 카페 사장님도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할 때 팁을 두둑이 준다고 했다.

당신 나라를 여행하는데, 형편이 조금 나은 내가
왜 조그마한 자비도 베풀지 못하겠느냐고.
미얀마

그 이후로 국가가 가난해 국민도 가난한 나라에 가면 가격을 높게 불러도 언짢지 않다. 그들이 친절을 보이면 넉넉하게 팁을 준다. 세상을 포용하기에 작았던 내 마음이, 여러 일들을 겪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뜻깊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내 시야를 넓힌다

여행을 가면 언제나 다른 곳에서 온 여행자들을 만난다. 지난 주말 동안 다녀온 교토에서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캔을 만났고, 그의 교토 단골 카페를 추천받았다. 2년 전 캄보디아 씨엠립에 갔을 때는 자전거 가게에서 만난 여행자와 다음 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일출을 보러 갔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여행에 대해 나누었다. 로컬 투어에 참여했다가 이탈리아 북쪽 도시가 고향인 이와 음식을 나눠먹기도 했다. 워킹홀리데이 중이며, 젊은 시기에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그때마다 일자리를 구하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어차피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하면 된다고 말했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삶의 스토리와 방법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

한국 속에서는 마치 최단거리로 목적지에 가는 법만 알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알다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그것은 그저 하나의 경로일 뿐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인생은 똑같은 목적지에 최단 경로로 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목적지가 다르고, 그곳에 최단 경로로 찾아갈 필요 없다. 인생은 여정 그 자체이니까,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언제든지 스탑 오버해도 된다. 그 경로 자체가 나의 스토리이니까.

빅아일랜드 마우나케아 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이번 여행은 참 재미있었다.

교토에 갔지만 교토에서 미얀마로, 캄보디아로 유럽으로 생각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이유> 속 마음 깊이 공감되었던 문장들을 올려두었다.

음미하면 할수록 당장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진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여행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미 여행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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