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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Dec 22. 2019

<에이트>
인간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2030년에 다가올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라

이지성 작가의 신간 <에이트>를 읽었다. 처음으로 이지성 작가의 책을 접해봤다. 교육과 인문학에 많은 관심과 리서치, 사색을 많이 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와 <생각하는 인문학>도 읽어보고 싶어 졌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에 대해 대체되고 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지금 우리가 맞이한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주 먼 이야기 같지만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를 대체하고 있고, 세계를 주도하는 인재들이 가득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인공지능 의사인 왓슨은 인간 의사들보다 오진율이 현저히 낮고, 놀랍게도 우리나라 가천의대에서는 왓슨을 이미 치료에 도입했다. 미국의 5대 병원에서는 인공지능 약사를 사용하고 있고, 실수로 잘못 제조할 확률이 0%다. 월 스트리트와 법조계에서도 인공지능이 쓰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자신들이 인공지능 회사라고 말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형 로펌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인간 변호사들이 하는 일을 대체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도 개인 회생과 파산에 대해서 2020년까지 인공지능을 접목한 재판 시스템을 접목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문유석 판사의 <판사 유감>에서 판사들이 법정에서 하는 판결 대신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 개인회생 판결에 대해 접했어서 그런지 재판 시스템이 충분히 필요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우리가 현재 익히 '사'자로 알고 있는 직업들이 모두 대체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 중 주목할 점은 대체되는 이러한 일들은 사실 인간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을 때 의사가 혹시 실수를 할까 봐 은연중 두려움을 갖는다. 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옹호하기 때문에 특히 지인이 수술을 받을 때, "의사가 전날 과음을 했으면 어떡하지. 개인적인 스트레스가 있어서 수술이 잘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을 가진 적이 있다.

변호사나 판사를 고용할 때 사람들은 혹시라도 다른 외적인 요소에 의해 그들의 판결이 바뀔까 봐 두려움을 가진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시스템은 인간적인 불완전함을 지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인공지능에 대한 현실감을 확 느낀 적이 있다. 회사에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 분들과 점심을 먹다가 그들이 인공지능 면접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 이후에 면대면 면접도 있었지만 그전에 인공지능 면접도 치렀다고 말이다. 집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서 약간 어색했지만 면접을 봤고, 면대면 면접처럼 떨렸다고 고백했다. 인공지능이 정말 가까이 와있구나.


동양은, 특히 우리나라는 항상 늦는다

저자는 현재 인공지능으로 많은 직업들이 빠르게 대체되어가는 현실 속 우리나라의 대응이 너무나 태평하다고 걱정한다. 고위층 사람들은 콘퍼런스나 정보를 통해 이러한 흐름에 대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먼 이야기일 뿐이라며 경각심을 느낄 겨를이 없이 살아간다.


서양에서 일본으로 흑선(증기선)을 보냈을 때야 비로소 일본은 외부 세계에 대해 눈을 떴다. 늦게나마 서양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몇 발자국 늦었다.

인류사의 어느 순간부터 동양은 서양에 뒤쳐졌다. 그때 세계의 패권을 쥐었던 서양은 아직도 세계를 이끌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문화나 디자인 씽킹 같은 그들의 우수한 방식은 이미 그곳에 정착되고 나서야 외부로 알려진다. 그러면 우리나라와 동양은 뒤늦게라도 그것을 습득하기 위해 그들의 부를 쌓아주게 된다. 컴퓨터를 만들어낸 것도, 컴퓨터 언어를 만들어 낸 것도 그들이며 우리는 이를 활용할 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오픈소스들도 모두 그들이 만든 것을 우리는 그저 사용할 뿐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 방식

실리콘밸리와 하버드에서는 이미 교육 혁명이 진행되었다. 뒤늦게나마 일본에서도 교육혁명이 진행되었고 이것은 모두 '창의성'을 길러주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IT 혁명을 일으킨 실리콘 밸리의 리더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IT 기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제약한다. 그들의 자녀는 학교에서 상상하는 법, 토론하고 사색하는 방법을 배운다. 산수를 하고 외국어를 익히고 지식을 암기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반면, 아직 우리나라는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훌륭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책상에 오래 앉아서 암기하는 방법을 익힌다. 나도 이러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많은 잠재력이 희생되었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저자는 <칼 비테 교육법>에 대해서 극찬하며 칭찬한다. 창의성을 길러주는 방식으로 서양을 비롯한 일본, 중국에는 널리 알려진 교육 철학이라고 한다. 추후에 읽어봐야겠다.


철학하는 사회

저자는 철학과 사색에 대해서 강조한다. 인간에게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철학이다. 실리콘 밸리의 CEO들은 IT 기술자이자 경영자이자 철학자이다. 나도 올해 많은 창업 책들과 철학 몇 가지를 접하면서 철학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한다. 그냥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는 나만의 철학이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 자동차가 주행 중 갑자기 뛰어들어온 보행자를 발견했을 때 그대로 직진할 것인가, 운전자를 헤치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가.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윌 스미스가 교통사고로 물에 빠졌을 때, 인공지능은 생존율이 높은 윌 스미스를 구하고 생존율이 낮은 어린이를 구하지 않았다. 그 일로 윌 스미스는 로봇에 대한 혐오감을 지니게 된다.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떤 것이 인간다운 선택인지에 대해 인공지능이 접목되기 전에 충분한 사유와 논의가 필요하다.




2030년이면 아니 2025년부터 우리나라의 많은 직업들이 대체되어갈 것이라고 한다.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시대에 나는 인공지능에 대해 대체되지 않는 어떤 능력을 지녀야 하는가. 

창의성과 인간성을 연마하고 그것을 업에서 발휘해야 한다.


개성을 지닌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도 인공지능에 대해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명이 아닌 것의 콘텐츠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작가도 단순한 텍스트를 조합하는 것이 아닌 고유한 상상력으로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지 못한다. 개발자도 CEO도 인간이 가진 문제를 찾아내 정의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낸다면 인공지능에 대해 대체될 수 없다. 


흐름은 인간이 만들어낸다. 다만 인공지능은 그걸 더 잘 처리할 뿐이다.

흐름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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