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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Apr 29. 2022

무해한 꼰대가 되는 방법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어야 한다면

올해 나이가 38살이 되었다. 이렇게 눈 한번 깜빡이면 40살이 될 나이가 된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저씨가 싫었다. 그들이 말 거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어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와 위치가 되었다는 것에 상당한 좌절감이 든다.

내 안에서 나는 변한 게 없는데. 내가 하는 말은 똑같은 문장도 젊었을 적에는 치기 어린 열변에서 이제는 답답한 꼴통 아저씨의 잔소리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조금은 슬퍼지는 요즘이다.

나는 요새 꼰대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김재동 마냥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말을 위로랍시고 내뱉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은 되도록 피하겠노라 마음먹었다. “세상이 다 잘못했고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존재야.” 이딴 말을 내뱉는 사람들보다 술 취해서 “너, 임마 그딴 식으로 살지마!! 세상이 만만한지 알아?”라고 일갈하는 꼰대가 사실은 백배는 나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내가 그런 사람까지는 되고 싶진 않고..

어차피 꼰대가 되어야 할 거라면 나만의 몇 가지 룰은 정해두기로 마음먹었다. 마흔 즈음이 되어서도 내가 뱉은 말에 이불 킥을 하는 잠자리를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1. 상대방에게 필요치 않거나 원치 않는 조언을 하지 않기.


자기가 조금 더 살았고 경험했다고 상대방이 원치도 않는데 굳이 입을 열어 사사건건 조언을 해대는 건 뱉는 쪽도 듣는 쪽도 서로가 시간 낭비이고 듣는 쪽에게는 기분 나쁘고 곤욕스러운 일이다. 설령 상대방이 딱히 원치 않더라도 그게 정말 그 사람이 알아야 하고 그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라면 내가 꼰대가 되어서라도 총대를 매야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2. 자신이 모르는 직업 분야와 삶의 방식에 대해 솔루션과 방법을 제시하지 않기.


이건 정말 최악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닫으려 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까지 조언하려고 드는 인간들을 나는 종종 보곤 한다. 이건 내가 굳이 왜 나쁜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최악이다.

내가 잘 아는 부분이고 상대방이 그것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자 할 때 혹은 상대방이 답을 몰라 헤매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만 조언해주면 된다. 그것도 그 상대방에게 애정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위해서 해주면 된다. 나 잘난 척하려고 해 주는 게 아니라.


3. 돈 자랑하지 않기.


나이 마흔 즈음에는 크게 문제가 없고 성실히 살아왔다면 돈이 수중에 어느 정도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랑할 일도 못 된다. 이십 대 후반까지는 엄청난 행운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돈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시절은 돈을 버는 방법과 일을 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자기 돈 나눠줄 것도 아닌데 돈 자랑하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다. 그러고는 “그런 마인드면 너 돈 못 벌어.”, “너 그런 식으로 살면 성공 못 해.”, “내가 너 나이 때 나는 악착같이 참고 버티면서 이 자리에 온 거야.”같은 말 따위를 해대며 젊은 사람들의 기를 죽이는 것은 정말이지 치사하고 추악한 것이다.

돈은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돈을 나눠줄 것 아니라면 아니면 정말 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면 그놈의 돈타령이나 할 바엔 입을 다무는 게 맞다.


4. “너가 힙합을 알아? 투팍과 비기는 들어 봤어?”라고 말하지 않기.


우리가 젊은 시절 좋아했던 마스터 피스들은 물론 훌륭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지만은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가볍고 덧없는 것들보다 훨씬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도 동감하지만은.. 굳이 젊은 애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들을 위한 문화가 아니고 우리 세대의 젊음을 위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 시대를 아우를 만큼 마스터 피스라면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젊은 애들이 먼저 챙겨 보고 듣더라.


5. 일을 시킬 때 돈 외에 다른 무언가로 동기 부여시키지 않기.


결국 일이라는 것은 돈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인간은 똑같다.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만원 한 장이라도 더 받으면 기분이 좋고, 자신이 하는 만큼 받으면 적어도 부당함은 못 느끼고, 자신이 하는 것에 100원이라도 더 적게 받으면 몹시나 화가 난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인 부분일 것이다.

그러니 일 시키고 돈을 적게 주는 것에 굳이 그럴싸한 이유를 붙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열정이라던지 의리라던지 배움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선 안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건 상대방이 굳이 금전적 보상을 원치 않고 다른 가치를 원한다고 스스로 하며 달려들 때뿐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드문 일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강요와 기대를 해서는   일이다.

물론 위에 말한 잣대는 너무 주관적인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오십만 원어치만큼의 일을 하고서는 자신이 이백만 원어치 일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평생을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목격했다. 우리 직군에선 업무 시간 및 가치의 잣대가 명확지 않기 때문에 더욱 자주 그런 상황을 마주하곤 한다. 그런 사람을 두고 일하게 되었을 때에는 굳이 그 사람을 고쳐 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나를 위해 고쳐질 마음이 없다. 서로 감정적 에너지 낭비하며 그 사람을 고쳐 쓰려 애쓰며 괴롭히느니 해고하거나 두 번 다시 일로 엮이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다.


6. 자신이 꿈이 실패되었다는 이유로 어린 친구들의 꿈을 하찮게 여기며 비아냥 거리지 않기.


내가 나의 꿈에 실패한 건 나의 무능과 게으름 때문이다. 그 외 특이사항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엄청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어떤 친구는 완벽하게 꿈을 쟁취하여 나와 같은 전철을 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괜히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의 감각을 따라가겠다며 발버둥 치는 것도 꽤나 추접스러운 일이고 그들의 고민과 심정을 나도 이전에 겪여 봤으니 이해한다며 맘에도 없는 비위를 맞춰주며 대화할 이유도 없다.

사실 나이를 먹고 삶은 조금은 안정되었을지 몰라도 젊은 시절 고민했던 것들 중에 많은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고 나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인생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적어도 저 6가지만 지키며 살아도 타인에게 조금은 무해한 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무해한 꼰대가 되려 애쓸 테니 나보다 더 나이 많은 꼰대도 나보다 나이가 적은 천둥벌거숭이들도 나에게 무해한 존재가 되어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바램인 것일까? 인간관계는 늘 어렵기만 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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