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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Nov 29. 2023

원래 기회는 타이밍이지

일상 15



지원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부에서 결정해 두었던 사람과 처우 협의가 들어가 내게 줄 수 있는 기회가 아쉽게도 없단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서 제법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가도, 어쨌든 그 회사에 내 이력서 하나 눈도장 찍게 뒀으니 잘 됐다 싶었어. 다시 이력서를 넣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했거든. 좋은 자리를 얻게 된 그 분께는 축하의 안부를 마음속으로 살짝 드리고 나는 다시 내 포트폴리오를 만지기로 했다. 내 포트폴리오인 만큼 많은 애정을 넣어서 2달 안에는 취업을 좀 하고 싶어. 슬슬 일을 못 해 안달난 손이 손등부터 조금씩 간지럽기 시작했거든. 서류도 못 들어갔다는 말에 친한 언니 말, 넌 서류만 뚫으면 면접은 평정하니까 걱정말고 그냥 미친듯이 넣기만 해. 그 말에 잔뜩 웃으며 외려 맘이 포근해졌다. 아직 계단을 한 칸밖에 밟지 않았으니 그들 눈에 내가 차지 않는 건 당연하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비우자.


스물 아홉은 참 파란만장하다. 어쩌다보니 만 스물아홉, 원래는 서른인 나이에 알쏭달쏭하니 내가 몇살인지도 모른 채 사는 올해의 후반기. 지난번 일했던 회사의 동기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퇴사했다는 말을 듣고 한숨이 절로 흘렀다. 이렇게 취직하기 힘든 날들, 다들 으쌰으쌰 좋은 곳에 다시 갔으면 하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12월이 지나기 전에 다들 모여 뜨끈한 국물에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하고서 마무리 지었는데, 시린 겨울이라 다들 마음 불편히 있을 것이 뻔해서 조금 걱정이었다. 그들보다 더 이른 시기에 퇴사한 나는 더운 여름부터 겪어본 시련이었어서. 얼마나 알 수 없는 시기인가.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은 조금 시대가 지난 것 같다.


눈이 온다고 했었는데 관악산에는 내리지 않았다. 원래 눈이 온다 하면 여기부터 펑펑 내렸는데 이상하기도 하지. 싸늘했던 공기도 오늘은 환기를 시킬 수 있을 만큼 맑고 부드러워서 내 작은 고양이 공주님 두 마리도 조금 바람을 쐬었다. 이 녀석들 밥값 하나 하려면 내가 조금 더 움직여야 할텐데. 아빠에게 수고스러움을 얹어주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것만큼은 맘 한 켠이 불편하다. 아빠 딸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대단했다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칭찬하던 엊그제의 일들이 실크바람 처럼 그냥 귀를 스치는거야. 아빠, 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너는 이미 내게 그런 사람이라고 대답해 줄 수 있는 내 유일한 아군. 요새 감기몸살로 끙끙 앓는 게 조금 안쓰럽다. 내일도 열이 있는 것 같으면 술 좀 그만 마시고 들어오라 하고 죽을 한 번 끓여줘야겠어.


고개를 들면 매년 생일마다 아빠가 적어준 편지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최근 받은 편지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고, 편지를 끌어안고 한참 숨 죽여 운 밤이 있지. 


부트캠프 수료 축하한다. 문외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 과감히 도전하고 노력해 온 모습이 대견하고, 좋은 결실이 있으면 더 고맙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아.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과정이니까. 시도한 것으로, 그 과정을 무사히 끝마친 것으로 큰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항상 겸손하고 내려놓는 자세로 스스로를 잘 다스려보며 생각한 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길 바라. 사랑한다.


흔히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아빠가 저런 말을 하니 괜히 마음 한 켠이 울렸어. 내 선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작은 실수나 작은 착오가 있을 수 있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 조금은 어긋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한참 리트를 준비했을 때 읽은 지문이 생각나. 세상은 무한의 가능세계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 그러니 나도 나의 무한세계에 코인을 하나 던져볼까해. 잊지 않고 열심히 살다보면 그 코인은 구르고 구르다, 바람에 치이고 파도에 흐르다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곳에 정박할거야. 힘내자. 날 잘 다듬는 게 가장 중요해. 소원아, 네 무한한 가능성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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