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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Nov 15. 2023

확정되지 않은 마음은

일상 08

요새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유난히들 찾아 헤매는 것 같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몇 달간 질리도록 잔인했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그 말을 내 입으로 남에게 하는 습관이 들었어. 불운의 반댓말은 행운이 아냐, 행복이지. 늘 말을 맞대는 친구들이 최근 간혹 의아한 숨을 뱉는다. 죽을때가 됐나, 그렇게 행복하라 일러줘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영원히 염세적인 삶을 영위할거라더니 웬 행복하라는 말을 하냐고.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했다. 웃지는 못했고, 그냥 씁쓸한 숨만 흘렀다. 그게 전부였다. 


불행과 불운을 유난히 오래 곱씹게 되는 때가 있다. 매번 봄과 여름을 지나오는 절기의 틈이 그렇다. 햇볕을 과하게 받아 생각에 자아가 붙는 것까진 좋은데, 그 위로 더 이상한 껍질이 덧씌워지는 모양이다. 매번 그랬다. 봄과 여름은 내게 행복한 계절인 적이 없었다. 기억이 그려지는 최대한 어린 나이부터. 


그런 의미로 가을이 되면 종종 마음이 살아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을.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볕, 무너져도 모를 높은 창공 아래의 푹신한 세제의 향기 같은 것들이 생겨나는 계절. 혼자 살았다면 좀 더 좋았겠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아직 무척 이른 이야기라서 새삼스레 좋은 날씨와 간신히 버텨 넘기는 시간들만 즐긴다. 계획한 것들이 아직 산더미 같은데 내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이유는 뭘까. 덕분에 내가 너무 미워진다. 


밉다. 이상하다. 이 단어를 입에 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거야 어느 순간이든 불편하고 마뜩찮은 일이지만 유난히 그 밉다는 표현이 입에 들러붙지를 않는다. 내게 미움 받기 싫어 나를 떠나보내겠다는 말을 했던 그 사람을 떠올리다보면, 나는 또 스스로에게 구구절절 내게 미움이라는 단어가 멀찍이 떨어져야만 하는 설명문을 만든다. 그래서 불편한 모양이다. 미워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거든. 그게 그 사람이 최대한 생각해서 떠올린 나를 떠날 적절한 이유였어서. 종종 일을 하다 창밖을 내다보는 일이 있으면 생각한다. 나는 적절하게 가지고 놀아졌는지, 아니면 그냥 제대로 사랑을 할 줄 알았는데 무언가 어긋났던 것인지.  


확정되지 않은 마음들은 너무 위험하다. 잘못 휘두르면 날붙이보다 더 날카롭지. 그 날 선 마음에 베인 가슴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새로 만나는 인연들도 내게는 어정쩡한 붙임이다. 내게 내 눈은 생각이 너무 많아보인다던 말을 넌지시 건넸던 사람이 있다. 당분간 만나보기로 했는데, 별로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치일피일 미루고 있기만 하는 중이다. 눈 앞에는 해바라기 사진을 얹어놓고, 책상 가장자리에 웃는 그 사람과 통기타를 퉁기는 어린 그 사람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두고, 다 마른 스토크를 치우지도 못하고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까. 


일찍 자야하는데 새벽을 새서 글렀다. 정신 좀 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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