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성적표는 작품이다. 작품이 많아야 부자다. 결국 꾸준히 써야 한다는 것이다. 구상만 한다고 글이 저절로 써지는 것 아니다. 무슨 글감으로든 일단 쓰고, 시간을 두며 매만지고 매만져 퇴고해야 한다. 이 또한 나의 지론이다. 원칙이라는 것, 글쓰기에도 일정 부분 적용할 수 있지만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
오이 가지 먹는 방법도 집집마다 다 다르고, 제사 지내는 방법도 집집마다 다 다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뜻이리라. 글쓰기 또한 그렇다. 물론 글쓰기에 대한 좋은 지침서가 있다.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고 참고를 하되, 그대로 하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오랜 기간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또 하면서 내가 깨달은 바다. 그래서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첫째,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욕심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절제해야 한다. 욕심이 생길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쓸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 작품에서는 이것만 이야기하자,라고. 이것저것 쓰고 싶은 것들을 한 작품에 담으려고 하면 글이 산만해진다. 쓰고 싶은 게 많아도 하나의 글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좋다. 그래야 글이 일관성 있게 된다.
다음으로는 일단 가장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것부터 쓴다. 그것은 ‘나’와 관계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경험한 것,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그것이 타인과 변별되는 개성적인 글쓰기이며 성실한 글쓰기다. 특히 수필은 자기 이야기를 주로 쓴다. 물론 소재를 차츰 확대하게 되지만 시작은 ‘나’로부터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자신 있는, 내가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쓴다. 어렵고 모르는 것을 어떻게 쓸 수 있으랴. 논문 외에는 남의 것을 참고하지 않는다. 그저 소박하게라도 내 것을 쓴다.
혹시 ‘나’를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울 경우도 있다. 그러면 드러내지 않는다.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수필일 경우 그러면 감동이 없을 수 있다. 수필을 한마디로 하면 ‘심경의 나상’ 아닌가. 마음의 경치를 발가벗겨 보여주는 글쓰기, 그것이 수필이다. 그것이 저어된다면, 일단 단상이라도 써보는 게 좋다. 또 좋은 수필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신 있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는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한다.
비슷비슷한 소재로만 쓰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샘에 물이 고여 있다면 그걸 다 퍼내야 새물이 나오듯, 글도 다 퍼낼 때까지 써야 한다고 본다. 그 후에 새로운 소재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 기간이 길어지면 문우나 지도하는 선생님이 살짝 이끌어주면 도움이 된다. 새로운 소재를 제시한다든지, 그러한 작품을 읽게 한다든지, 그 사람에게 맞는 방법을 모색해서. 그러므로 나는 쓰고 싶은 소재가 연달아 있으면, 다 퍼낼 때까지 쓴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글감이 떠오른다.
글감 또는 소재라는 것이, 관점을 달리 하면 얼마든지 보인다. 피상적으로 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사물이나 사건 문제 등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면 얼마든지 글감을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에만 생각이 머문다면 글감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개씩이나 글 쓸 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다.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며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래도 소재를 발견하기 어렵다면 좋은 작품을 읽는다. 송나라 때의 문장가 구양수도 말하지 않던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사실 글쓰기의 왕도를 구한다면 이것이다. 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여기서 많이 생각하라는 문구에 집중해본다면, 많이 생각해서 쓰라는 의미도 있지만 고치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또 많이 생각해서 글감을 찾으라는 의미도 있다고 본다.
여전히 글감을 찾지 못하면, 눈에 보이는 물품 가운데 하나를 잡고 쓴다. 그 물품을 한참 본다. 그게 손에 들어오게 된 연유를 생각한다. 용도를 떠올린다. 그 물품에 얽힌 에피소드가 혹시 있나 생각한다. 어떤 일에 사용했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등. 물품 하나를 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떠올려본다. 그러면 쓸거리가 생긴다. 그래도 없다면, 외양 묘사로부터 시작해서 그 물품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나열해본다. 마지막으로 ‘나’가 왜 이 글을 썼는지 생각해 의미화한다.
내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하나의 글감을 가지고 끝까지 가려는 노력이다. 글이 잘 풀리지 않아도 시작한 글은 마무리할 때까지 잡고 있다. 당장 끝이 안 나도 좋다. 미완성 파일을 하나 만들어 거기에 넣어놓고 수시로 꺼내보며, 한 줄 한 단락이라도 보완해 종국에는 마무리한다. 그때의 쾌감은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푼 것 이상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한다. 그런 훈련만 된다면 어떤 종류의 글도 자신감이 붙는다. 그래서 이 부분에 나는 더욱 마음을 기울인다. 일단 한 줄이라도 시작한 글을 도중에 폐기하지 않는다. 나와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몇 날 며칠이 걸리더라도 고민해서 마무리한다.
놀랐다. 어제로 이곳 브런치에 올린 글이 꼭 100편이다. 지난 9월부터 3개월 좀 넘었다. 하루에 거의 1편씩 쓴 셈이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썼다. 완성도 높은 글은 아닐 수 있지만 매일 떠오른 글감 중에 하나를 선정해서 쓴 글이다. 퇴임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글이 모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성적 아닌가. 양으로만 본다면 A+다. 질은 퇴고 과정에서 보완하면 된다. 작가의 성적표는 작품이다. 이것도 자뻑인가. 웃음 터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