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아픈 손목이 말끔하게 낫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아픈 듯했다.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는 손목을 쓰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쓰니까 낫지 않는단다. 또 부목을 왜 하지 않느냐고 했다. 안 보고도 본 것처럼 말하니 할 말이 없다. 의사는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두 말도 못 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그동안 물리치료를 한 번밖에 받지 않았다. 솔직히 그게 무슨 치료가 되랴 싶었다. 치료 같지 않은 치료를 40분 동안 받는 게 지루했다. 전기와 적외선 치료가 도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번번이 시간이 안 된다며 거절했던 터였다. 의사도 아니면서 나는 그렇게 지레 생각했다. 의사는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듯했다. 가슴이 뜨끔했다. 되바라진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한편으론 민망하기도 했다.
물리치료를 하고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내밀었다. 약사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낫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약사는 빙긋 웃었다. 오래간다고 했다. 그 이유는 손이기 때문에 안 쓸 수 없기 때문이란다. 안 써야 낫는 게 정형외과 치료라며. 그럼 왜 약을 먹느냐고 했다. 낫는 동안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통증 완화를 위해서란다. 일리 있다. 안 써야 낫는다는 것이 맞다. 약을 지어가지고 나오며 다짐했다. 이 약이 마지막 약이 되도록 하겠다는.
그러려면 의사의 지시대로 해야 하리라. 첫째 부목을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웬만해서 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손에 부목을 대는 건 불편하다. 엄지와 검지만 내놓고, 팔부터 손목까지 부목에 의지해 감싸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더운 날씨에.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오른손이니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어쩌랴. 말을 듣지 않으면 더 길게 고통을 당해야 할 테니까. 그건 더 못할 일이다.
글쓰기가 늘지 않는 것도 이 경우와 유사하다. 가르치는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는다. 또 좋은 지침서의 도움을 받는다면 실제로 적용해야 한다. 본인의 생각대로만 쓰면 진전이 없다. 물론 꼭 같다고 보는 데에 무리가 있겠으나, 배운 대로 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만 고수하고 나간다면 발전하기 어렵다. 왜 의사가 있고 선생이 있으며 먼저 배운 사람들의 조언이 있단 말인가.
나는 무모했다. 원리를 잘 알지 못하면서 얄팍한 내 생각을 믿었다. 또 약을 먹으면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잘못된 것이었다. 병원 치료를 무시했고 의사의 조언에 따르지 않았다. 부목을 댄 기간은 한나절도 안 된다. 부목을 댄다고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손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끊임없이 썼다. 며칠 동안은 예전보다 덜 썼지만 조금 지나자 똑같이 사용했고, 밀린 일 때문에 더 손을 혹사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나을 턱이 있을까. 낫지 않는 걸 은근히 병원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글쓰기를 이 경우와 유사하게 보는 건 그래서다.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은 없다. 그 왕도를 아주 옛날 송나라 문장가 구양수의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그건 대부분 알다시피,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三多說, 그래 바로 그 삼다설이다. 그걸 그대로 이행하는 사람은 잘 쓰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 진전 없이 늘 같은 정도의 글을 쓸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다면 가르치는 자의 조언을 잘 듣고 그대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수십 년 간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안타까운 게 그것이다. 아무리 가르치고 조언해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자기 고집대로 쓴다. 현장에서는 듣는 것 같은데, 다음에 작품을 제출할 때 보면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자기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글이 늘지 않는다고 좌절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렇지 않은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내 방식을 고수하면서 낫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았던가.
집에 오자마자 부목을 손목에 댔다. 한나절 정도 하고 잘 모셔두었던 부목. 부목을 하니 오른손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불편하다. 하지만 머지않아 내 오른 손목의 시큰거림과 통증이 사라지고 낫겠거니 생각하며 견디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오래 고통을 당해야 한다니, 그렇게 할 수밖에.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약도 꼬박꼬박 먹으면서. 글쓰기도 그래야 하리라. 배우고 익힌 것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적용해야만 한다. 낫지 않는 손목을 보며 깨닫게 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