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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그 아쉬움과 허영심 사이

나는 이렇게 쓴다

by 최명숙


작가 등용문 중에 가장 공신력 있는 게 신춘문예이다. 그건 틀림없다. 올해도 신춘문예에 투고한 작가지망생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전국의 신문사들마다 들어온 작품을 심사하고 알리느라 분주할 터이다. 신춘문예 당선 통보가 크리스마스 전후로 작가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한단다. 글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춘문예로 등단하기를 꿈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도 동화와 소설로 등단은 했지만 신춘문예 당선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했다. 한동안 신춘문예철만 되면 망설였다. 다시 내볼까, 그게 뭐가 중요해, 좋은 작품을 쓰면 되지, 아니야 아무래도 아쉬워 다시 내봐야지 등등 고민하면서. 물론 그렇게 아쉬워하는 이유는 있다. 소설부문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떨어졌으니까.


아주 안 되는 거라면 포기하겠는데, 그 최종심이 문제였다. 후배가 신문을 봤다며 전화를 했다. 신춘문예에 내셨냐고. 나는, 냈는데 떨어졌다고, 크리스마스 전후로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더라고 했다. 후배는 떨어져도 안타깝게 떨어졌다며 심사평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사평에 첫 번째로 내 작품에 대해 거론하고 있으니 2등을 한 모양이란다. 조금만 더 철저했으면 됐을 텐데 하며. 갑자기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논문 쓰는 기간의 그 지난함이 힘들었고, 지쳤으며, 나를 곧추 세우고 싶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냈다. 그게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거였다. 생활에 변화가 오면 힘든 것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변화를 위해 투고한 거지만 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어서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허점이 있었으리라. 될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 변화라는 것 때문에.


아무튼 나는 최종심에서 떨어졌다. 후배의 말을 빌리면 그것도 2등을 해서. 나중에 보니 나와 같은 신문사에 냈던 작가는 그 해에 3관왕을 한 작가였다. 깨끗이 인정했다. 그런 작가와 내가 겨루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이만하면 아주 못 쓴다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도 했다. 아무 죄도 없는 작가를 공연히 원망도 했다. 왜 세 군데나 투고해서 나 같이 아쉬운 사람을 두 명이나 양산해 내는가 하고.


신춘문예에 투고하기 전에 국내 굴지의 문학전문지에 투고를 했었다. 그때도 떨어졌다. 역시 최종심에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나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아쉽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제 더 다듬어서 신춘문예에 내면, 될 거라고. 나와 겨뤄 당선된 사람과 나를 함께 올리자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끼리 의견이 분분했단다.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서 신춘문예에 투고한 거였다.


논문은 진척이 안 되고, 집안에 우환이 있어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고, 새로운 변화가 절실했다. 그래서 약간 망설인 끝에 문학지에 투고했다. 거기서는 당선이 되었다. 그것도 물론 기뻤다. 하지만 신춘문예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다. 스승님들은 신춘문예만 고집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쓰면 되는 것이지, 어디로 등단했느냐가 중요한 건 절대 아니라고. 그래도 아쉬웠다. 그것도 문학하는 사람의 허영심이라면 허영심일지 모른다.


소설보다 먼저 등단한 동화 역시 신춘문예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동문학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어서 아쉬움이 없다. 그런데 소설은 20년이 다된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남아 있다. 전에는 문학지로 등단을 했어도 신춘문예에 다시 투고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이미 등단한 부문에는 신춘문예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등단 부문이 아닌 곳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게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신춘문예철만 되면 공고문을 보며 가슴을 쓸었다. 내가 왜 서둘렀던가, 등단이 뭐가 그리 급했던가 하고. 그러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위무했다. 그런 변화가 없었다면 당시의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없었을 거라고.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그렇다고 스승님들의 말씀처럼 좋은 작품을 발표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느라 못했다는 건 핑계다. 가정경제를 책임지느라 창작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도, 작가의 태도는 아니다.


얼마 전 한 작가의 말을 듣고 자극을 받았다. 여러 신문사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했다는데, 그 작품 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제야 문학공모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올해에는 다른 문학지로 등단했어도 신춘문예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같은 부문이어도 된다는 것이다. 진즉에 알았다면 도전했을지도 모르는데. 또 아쉬움이 일었다. 그래도 내년이 있으니까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 크리스마스 선물을 꼭 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나는 왜 이 허영심에서 놓여나지 못하나 싶다. 작가는 작품이 성적표이고, 작품으로 말하는 거다. 신춘문예로 등단해 놓고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문학전문지를 통해 등단했어도 좋은 작품을 꾸준히 써내는 훌륭한 작가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학벌주의가 잘못되었다고 외치면서 문학의 학벌주의를 왜 버리지 못하는가. 반성할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허영심이라 해도. 이 모순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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