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아시죠? ‘호캉스’라고. 해보셨나요?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줄인 신조어라는데, 겨울에 하는 것도 호캉스 맞나요? 이 단어. 바캉스의 뜻이 ‘피서나 휴양을 위한 휴가’라고 본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저는 바캉스라 하면 여름휴가 즉 피서가 먼저 떠올라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아무튼 죄다 호캉스, 호캉스 하니까 그냥 쓰도록 하죠. 언어는 언중이 사용하기에 따라 어원이나 뜻 그리고 발음이 달라져도, 그대로 쓰는 경우 있거든요.
실은 제가 1박 2일로 그 호캉스를 다녀왔어요. 이러한 문화 즐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처음이었어요. 생각보다 집순이. 한강이 아래로 펼쳐진 전망 좋은 곳이었어요. 스위트룸이라서 거실과 침실이 따로 있고 작은 주방과 부대시설이 잘 갖춰진 곳. 이렇게 럭셔리(?)한 호텔에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럭셔리라는 용어를 쓰는 게 바람직하지 않으나, 의미가 적확할 것 같아 그대로 쓸게요. 우리말과 글을 잘 보존하고 써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지만, 이 글에는 외래어 내지 외국어를 자주 쓰게 되네요. 그 점이 거슬리는데 뉘앙스가 달라 할 수 없이 씁니다. 아하, 또. 아무튼 그만큼 모든 시설이 특별했어요. 상상이 되시죠?
왼쪽 건너편으로 남산타워가 보이고 오른쪽 아래로 한강이 보였어요. 오가는 전철과 고속철도, 높이 솟은 빌딩.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지요. 하지만 저는 이런 풍광보다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자연을 더 좋아하죠. 제가 비용을 부담한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딸이 직장에서 동계 가족 휴양지 신청을 했는데 당첨되어 보내준 거예요. 슬쩍 딸 자랑. 남산과 한강을 조망할 수 있어, 자연 속이라 생각하기로 했지요.
남들이 호캉스 다녀왔다고, 또는 갈 거라고, 아니면 가자고 할 때, 저는 생각이 없었어요. 여행 가서 호텔에 묵는 건 괜찮지만, 집 두고 나가서 매칼없이 ‘바깥 잠’ 자는 건 내키지 않았거든요. 매칼없다는 단어, 예전엔 많이 썼는데, 요즘에 쓰면 웃더라고요. ‘공연히’의 방언이에요. 저, 친절한 작가죠? 아무튼 애나 어른이나 호캉스를 즐기는 게 요즘 새로운 문화가 되었어요. 코로나로 여행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더 활성화 된 듯 싶어요. 어쨌든 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호캉스를 가게 되었어요. 근처 사는 선배언니와 함께.
호캉스, 그 내밀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듣고 싶지 않다고요? 왜 이러십니까. 인간은 본래 엿보고 엿듣는 것 좋아하는 속성이 있는데요. 그건 본능이에요. 아, 본능까지는 아니네요. 글을 쓰다 보면 이렇게 과장이 된다니까요. 운문은 콩알만 한 것 가지고 황소만 하게 그리기도 하지만, 산문은 논리성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 속성을 제가 잘 아는데. 자고로 많은 사건들이 엿보고 엿듣는 것으로 진행되잖아요. 드라마 보면. 인정하죠? 들을 테니 어서 말해보라고요? 거 봐요, 궁금하잖아요. 우길 걸 우겨야죠. 그럼 일단 중요한 사건 몇 개만 들려드릴게요.
우선 선배와 저는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쉰 다음, 도시 산책에 나섰어요. 아니, 거리를 배회했어요. 젊은 시절로 돌아가 땅거미가 지는 낯선 거리를. 그러고 싶었어요. 그러다 음식점에 들어가 식사를 할 생각이었죠. 천천히, 어느 것에도 쫓기지 않고. 여행의 참맛은 낯선 거리에서 느끼는 ‘이방인 의식’ 아닌가요? 저는 여행하게 되면 꼭 그곳 거리와 골목 산책하기를 좋아해요. 아침이든 저녁이든. 낯선 곳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두려움, 상반된 그 감정, 그것이 은근히 매혹적이거든요. 그게 어쩌면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찬바람 부는 낯선 거리를 배회하다 골목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선배언니는 큰길에 있는 음식점에 가자고 했지만 저는 골목의 소박한 식당이 좋았어요. 명태찌개가 주된 메뉴였지요. 손님이 없어 스산한 가운데 반겨주는 주인의 미소가 따뜻했어요. 찌개가 끓고, 언니가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어요. 마침 시간이 맞아 합류한 남자선배도 있었어요. 오해 마세요, 식사만 같이한 거예요. 두 선배들은 동기였어요. 언니와 누나이기만 했던 제가 갑자기 막내가 되었어요. 두 선배들은 저에게 명태 토막을 떠주고, 알을 건져주고, 두부를 올려주고, 자꾸 많이 먹으라 했어요. 소식(小食) 중이라는데 들은 척도 않고.
두 선배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다는 둥, 아, 제발 이 노래 가사 중 오류인 ‘바램’을 온 국민이 수정해 불렀으면 해요. 바램은 형용사 ‘바래다’에 -ㅁ을 붙여 만든 명사이므로 사진이 바래다, 색이 바래다로 쓸 수 있지만 이 노래에서는 ‘바라다’의 의미이므로 ‘바람’이 맞거든요. 또, 직업병. 아마 전생에 남매였을 거라는 둥, 바쁜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만난다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둥, 이유들을 모두 끌어다 붙여 우리의 만남을 의미화하더라고요. 정에 허기진 현대인들이라서 그럴까요? 충만한 무엇이 밀려들며, 눈물이 날 듯 기분이 묘했어요. 막걸리 한 잔 때문은 아니겠지요. 막걸리는 달고 시원했어요. 마시자마자, 막혔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결국 '각1병'을 하게 되었죠. 각1병, 참으로 오랜만에 써보는 어휘네요.
뭐, 솔직히, 그것 말고 호캉스 별 것 없었어요. 럭셔리한 호텔에서 하룻밤 잔 것뿐이죠. 실은 잠도 못 잤어요. 선배언니와 밤새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죠. 이야기하다 조금 자고, 깨서 또 이야기하고, 저는 응 응 네 네 그러고. 선배는 이 얘기 저 얘기, 누에고치에서 실 뽑듯 술술술 이야기를 계속 뽑아냈지요. 언니가 소설 쓰세요, 했더니,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게 글 쓰는 거고, 이해 못 할 인간이 작가래요. 돈도 안 되는 글 나부랭이를 왜 쓰냐며. 참나, 작가를 앞에 놓고. 어쨌든 키득거리다, 눈물 찔끔거리다, 속 시원하게 웃기도 했어요.
우리는 다음날 오전까지 수다를 떠느라, 호텔 이용자는 무료인 수영장을 이용 못했어요. 수영복과 수영 모자까지 준비해가지고 왔는데 말이에요. 저는 수영복이 없어 선배가 두 벌 가져왔거든요. 아직도 저는 수영 배울 필요성 못 느껴요. 어렸을 적부터 개울이나 둠벙에서 수영 많이 했거든요. 누구에게 배운 적 없어요. 저절로. 개구리헤엄 또는 개헤엄. 그 실력으로 작은 저수지도 수영해서 건너갔다 온 걸 보면, 수영 천재일지 몰라요. 그렇다면 동네 친구들 모두 천재. 아, 이 대책 없는 상상.
또 역시 무료인 피트니스 센터도 이용 못했어요. 수다 때문이에요. 그 호텔 피트니스 센터가 하도 유명해 근처 주민들이 비싼 요금을 내고 이용한다는 곳이래요. 선배는 거기도 꼭 이용하자고 했거든요. 운동화까지 싸들고 왔더라고요. 그녀는 평생 운동으로 몸 관리하는지라 무척 관심을 보였죠. 그 호텔 명성을 안다며. 아무튼 우리는 수다삼매경에 빠져 부대시설 하나도 이용 못한 채,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 나왔어요. 선배는 샤워도 한 번 못했어요. 선배 말에 의하면 고양이 세수만 했대요.
조식 먹었냐고요? 당근, 못 먹었죠.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다 지났거든요. 뒤늦게 시간을 본 선배는 발을 동동 굴렀어요. 어쩐다냐, 호텔 조식을 꼭 먹어야 하는데, 하면서요. 저는 소식 중이라 하나도 아쉽지 않았어요. 우리는 선배가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간식이 많이 남아서 그것으로 요기를 했어요. 간단히 사용할 주방도 있는 스위트룸이어서 전자레인지까지 있었거든요. 다음에 조식을 꼭 먹자며 이번에는 제가 선배를 달랬어요. 호캉스는 뭐니 뭐니 해도 조식이 아니라, 수다죠. 그만큼 수다 떨었으면 아쉬울 것 하나도 없어요.
여기까지, 처음 가본 호캉스, 그 내밀한 시간에 대한 보고였어요. 뭐 별 것 없죠? 제목에 낚였다고요?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제목으로 하다보니. 두 여자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니까 엄밀히 말하면 낚인 건 아니죠. 그런 호캉스라면 안 가겠다고요? 그런데 이상하긴 해요. 29층에서 내려다보이던 풍광이 지금도 어른거려요. 럭셔리한 시설들도. 무엇보다 골목 식당에서 먹은 명태찌개와 막걸리도. 부조화 속의 조화로움처럼, 다양한 것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게 인생일까요? 별 것 없는 중에 별스런 호캉스, 그 내밀한 시간이었어요. 에고, 다 읊어대자니 숨차네요. 누가 원한 것도 아니고 대가도 없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저도 한 수다 하죠? 히힛, 쿡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