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사유, 차량의 불빛을 보며

일상

by 최명숙


도심으로 들어오는 차량의 불빛이 휘황하다. 언제나처럼. 저들이 저리도 이른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의 꿈을 위해, 원하든 원치 않든, 어쩌면 그저 관성처럼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의지와 꿈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저 행렬에 합류하는 것일까. 무슨 이유이든 나는 저 차량들의 불빛이 희망으로 보인다. 이른 아침마다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거실 큰 유리창 앞에 선다. 영락없이 긴 차량 불빛과 마주한다. 밖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먼 데 산이 가만가만 눈을 뜨고, 아파트 정원수도 기지개를 켠다. 아주 조금 열어놓은 이중창 중 바깥 창을 통해 들리는 차량의 가느다란 소리. 스이이이. 끝없이 이어지는 소리는 살아있는 것들의 호흡처럼 길다. 바깥 창을 닫는다. 모든 게 차단되고 차량과 불빛만 보인다. 다시 연다. 스이이이, 저 소리. 내 숨소리처럼 자연스럽다.


불빛을 보며 창 앞에 서 있노라면 ‘불멍’한 듯 머릿속이 비워진다. 저들이 이른 아침에 도심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일 거다. 그들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혹 자신의 꿈을 위해 나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가슴이 서늘해지며 무언지 모를 울렁임이 밀려든다.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 그것은 가족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사회 질서가 이만큼 유지되는 것도.


저들이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려면 얼마나 일찍 일어나 준비했을까. 간밤의 충분하지 못한 수면으로 인한 피곤함을 견디며, 채 풀리지 않은 몸을 다시 웅크리고 운전대를 잡지 않았을까. 차 안에서 하품을 할지도 몰라.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 먹을지도 몰라. 졸음을 쫓느라 민트사탕을 입안에 넣었을지도, 시끄러운 음악을 울릴지도.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삶의 질서를 따라 힘들어도 움직이는 숭고한 사람들, 나의 이웃들이여. 가슴이 불빛처럼 일렁인다.


차량의 불빛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먼 데 산이 확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원수들도. 아침이 밝아온다. 한동안 창 앞에 서 있었나 보다. 이제 나도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하루의 일정을 떠올린다. 어제까지 내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던 일들이 불빛이 흐릿해지듯 흐릿해진다. 기분 상했던 것, 사소한 걱정거리, 가슴 아픈 일들, 그리운 사람들까지. 저 차량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삶의 활력과 울렁임 덕분이다.


오래전, 방학을 이용해 어떤 프로젝트에 동참했을 때였다. 사무실이 상암동에 있었고,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아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별이 떠 있는 새벽에 집에서 나섰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갈 때 찬바람 때문에 살이 에이듯 추웠고, 허기처럼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도 나가야 했다. 생계도 그렇지만 그 일 자체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 양재에서 광역버스를 기다릴 때도 여전히 밖은 어둑했다. 겨울의 아침은 일찍 깨어나지 않았다. 정류장에서 오들오들 떨며 버스를 기다리다, 주차요금이 비싸든지 말든지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다음 날을 꼭 차를 가지고 오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그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새벽에 집을 나섰던 것은 여행 말고는 없었으니까.


다음 날은 차를 가지고 나가리라 결심을 굳힐 즈음 광역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랐을 때, 나는 차를 잘못 탄 줄 알았다. 버스 안에 승객들이 가득 차 있었다.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가득 들어찬 버스. 알지 못하는 어느 세계로 공간 이동한 것만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생경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좌석에 앉은 어떤 이는 졸았고, 어떤 이는 아예 잠에 곯아떨어졌으며, 어떤 이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면 의자에 깊숙이 앉아 책을 읽을 참이었는데. 앉기커녕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런 일을 이틀 겪은 후, 다음날은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걸리는 시간은 같았고, 어두운 새벽 길바닥에서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게 참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차를 가지고 간다는 건 또 다른 모험이었고. 두 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한다는 것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또 차가 막힐 수 있는 출근길이 부담되기도 했다. 방학을 이용해 하는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 것을 의미 있게 여겼고, 성과를 내리라 기대가 컸는데, 그 초심을 잃고 후회만 밀려왔다.


새벽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만 발이 멈춰졌다. 그 많은 사람들, 바삐 움직이는 그들이 모두 일터로 나간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내게는 기이한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환승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피곤함에 절어 있는 모습, 생기를 찾을 수 없이 창백한 얼굴들. 놀라웠다. 모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또 꿈을 위해 저리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가슴이 아릿한 가운데 피어오르는 울렁임. 그 새벽 지하철역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른 아침 우리 집 거실 창을 향해 보이는 불빛, 그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지 않는 것은, 십여 년 전 그날들의 풍경 때문일까. 고단하고 졸린 눈을 어쩌지 못하면서도 출근길에 오른 우리의 이웃들, 이 시대의 얼굴들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 때문일까. 내 삶도 만만치 않았지만 출근길만큼은 그렇게 고단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린다. 민망해진다. 내 가족들 역시 그랬을 텐데, 내가 겪지 않아 몰랐던 것도.


이제 차량이 드문드문 지난다. 불빛도 꺼졌다. 아침이 밝았다. 그들은 이미 일터의 정해진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리라. 나도 할 일을 해야겠다. 아니 아침식사부터 해결해야겠다. 모두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이른 아침 출근 차량의 불빛을 보며 생각이 깊어진 날이다. 내게도 희망의 불빛이 일렁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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