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호, 내 기억의 아랫목

호야, 호야

by 최명숙


호의 아들을 보았다. 처음이다. 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했다. 호의 아들을 보았을 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었다. 누가 호의 아들이냐고. 곱상한 청년이 자기라고 어떻게 아버지를 아느냐며 다가왔다. 그제야 호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 기억의 가장 아랫목에 호가 있었다. 네 살인지 다섯 살 즈음인지 모르겠다. 상희네 앞마당 건조실 앞에 놓인 달구지. 나무로 만든 그 달구지 위에서 남자아이와 놀고 있는 장면. 그 아이의 노르스름한 머리카락. 햇살에 투명하게 드러나던 맑은 얼굴에 난 가느다란 솜털. 우리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호라는 이름이 생각났지만 그가 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 기억이 열두 살 즈음에 처음 떠올랐다. 우리 마을에 호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자, 그가 호라고 했다. 내 기억 속의 이름과 같았다. 둘이 동갑이었는데 싸우지 않고 잘 놀았단다. 아버지들끼리 둘도 없는 친구였고, 그즈음 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며 우리 아버지는 병환 중에 있어, 어머니들이 잘 보살피지도 못했다고 했다. 호와 나는 눈만 뜨면 소꿉놀이를 했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았단다. 얼마 후 호의 어머니는 호와 그의 형을 데리고 우리 마을을 떠났다.


내가 호를 다시 만난 것은 중학교 입학하던 해 설날 때였다. 옆집이 호의 당숙네였다. 그 집에 왔다가 우리 집에 들렀다. 호의 어머니와 함께. 사춘기가 막 시작된 우리는 서먹했지만 얼마 안 가 바로 스스럼없어졌다. 진학할 학교 이야기를 했고, 우리 집에서 밥을 먹었으며, 저녁에는 몇몇 친구들과 윷놀이를 했다. 호는 예쁘장한 얼굴에 약간 수줍음을 타는 아이였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호에게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산골 마을이라는 게 그랬다. 눈만 뜨면 만나는 동네 사람들은 입었던 옷도, 표정도, 업고 있는 아기도, 늘 똑같았다. 외지에서 방문자가 오면, 새로운 느낌이 들어 처음엔 쭈뼛대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느 집에 누가 왔다고 하면 금방 하나둘 동네 아이들이 몰려오곤 했으니까. 호가 우리 집에 왔을 때도 그랬던 모양이다. 저녁밥을 먹고 호의 어머니는 당숙네로 돌아갔지만 호는 남아 우리와 윷놀이를 했으니까.


수원에 산다고 했다. 산골에서 볼 때 수원은 대도시였다. 서울깍쟁이보다 한 술 더 뜨는 게 수원 깍쟁이라는 얘기가 생각나 호를 살피기도 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랬는지, 우습다. 탐색하느라 그랬을까. 분명한 기억은 내가 이것저것 물었다는 것이다. 호는 여자애처럼 나긋나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 옆에서 윷놀이할 때 물어보고 싶었다. 달구지에서 소꿉놀이하던 것, 기억하느냐고. 다른 애들이 있어서 차마 묻지 못했다. 입술만 달싹이다 그만두었다.


그 후 호를 본 적이 없다. 명절이면 가끔 호의 어머니가 우리 집에 들렀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부 잘한다지? 우리 호도 잘해. 그뿐이었다. 상고에 진학했다는 것도, 대학에 갔다는 것도, 호의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도 못한 형편이었다. 호에게 열등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소꿉놀이하던 그 호는 나와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호는 내 친구도 안 될 것처럼 까마득하게 멀리 생각되었다. 순진하기만 한 스무 살의 나였다.


내가 쉰 살 중반쯤 되었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호가 당숙네 왔다가 우리 집에 들렀는데, 내 전화번호를 물어 가르쳐 주었단다. 괜찮으냐며 호의 근황을 전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군대 갔으며, 수원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한다고. 며칠 내로 전화가 갈 테니 그런 줄 알라고. 윷을 던지던 희고 가느다란 호의 손가락과 햇살에 환히 보이던 얼굴의 솜털이 떠올랐다.


호의 전화는 쉽게 오지 않았다. 내심 기다리는 내 마음을 떠올리곤 빙긋 웃었다. 물어보리라. 소달구지에서 소꿉놀이하던 것 기억하느냐고.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일 년이 다 되었을 무렵, 어머니로부터 호의 부음을 들었다. 심한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군대 있는 아들, 어머니도 잃고 아버지도 잃은 그 아들을 어쩌라고.


소꿉친구 나의 연락처를 들고 왜 망설였을까. 그만큼 세상 살기가 힘들었을까.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우면서 가슴이 아팠다. 용기가 없었을까. 아들을 천지에 홀로 남겨놓고 그런 선택을 할 정도로 우울증이 깊었던 걸까. 가엾은 마음에 가슴이 싸해졌다. 호는 어쩔 수 없지만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쓸데없는 오지랖이지만 마음은 그랬다. 전화번호를 알고도 연락하지 않은 호의 마음을 알 듯 말 듯했다.


몇 년 전 고향마을에서 같이 자란 사람들끼리 조촐한 모임을 만들었다. 호의 형도 동참했다. 호의 아들 소식을 물었다. 군 전역 후 자기가 데리고 살았는데, 취직해 나갔단다. 호에 대해 궁금한 것을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이미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동생 이야기를 호의 형이 어떻게 할 수 있으랴 싶어서다. 내가 궁금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의 상처를 다시 들추게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당연히. 다 묻어두었다. 호가 나와 소꿉놀이하던 장면을 기억하든 못하든. 이미 확인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으니까.


호의 아들을 만난 것은, 호의 형 장례식장에서였다. 상주 자리에 서 있는 청년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문상을 마치고 물었다. 누가 호의 아들이냐고. 내 앞으로 다가온 호의 아들 손을 잡고 한참 있었다. 아들의 얼굴에서 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네 아버지의 소꿉친구라고, 당숙네 옆집에 살았다고 했더니, 호의 아들이 기억난단다. 어릴 적에 우리 집 화단에 핀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들였던 적이 있단다.


호에게 봉숭아물들인 것을 말했을 것만 같다. 그래서 호가 나를 기억해 내고 내 전화번호를 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호도 우리가 소꿉놀이하던 그 장면이 기억의 가장 아랫목에 있었던 것일지도. 아니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설날에 윷놀이하던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호의 당숙네로 가서 내가 적극적으로 호의 연락처를 물었다면 어땠을까. 호의 그 선택을 막을 수 있었을까. 적어도 우리 서로 포슬포슬한 삶의 현장에서 목을 축일 수 있는 한 모금 물 같은 친구는 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호의 아들 손을 한참 동안 잡고 있었다. 그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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