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니
사돈의 팔촌쯤 되는 아주 먼 집안 오빠가 장가를 갔다. 내가 중학교 때였다. 윗동네에 살았는데, 어머니 심부름을 가면 새색시인 새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키가 크고 몸집도 컸는데, 얼굴에 주근깨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행동이 느렸다. 펌을 한 머리는 라면처럼 보글보글했다.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새언니는 녹의홍상을 입고 있었다. 행주치마를 하고. 전형적인 새색시 모습이었다.
새언니는 단발머리 중학생인 나에게 깍듯이 애기씨라 부르며 존대했다. 마을사람이나 집안사람들은 그녀를 무뚝뚝하다고 했는데, 내가 볼 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게 환하게 웃어주었고, 가면 입맛 다실만 한 것들을 꼭 내놓았다. 곶감, 찐 고구마, 인절미, 하다못해 누룽지라도. 주전부리 거리를 들고 새언니 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키가 커서 나는 허리에 닿는 것만 같았다.
신혼 방은 안채 끝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새와 꽃무늬가 아로새겨진 오동나무 장롱, 차단스 그릇장과 화장대, 수놓아 만든 횃댓보가 있었다. 유리문이 달린 차단스에는 예쁜 커피 잔을 비롯한 혼수 접시들이 얌전하게 얹혔고, 화장대 위에는 하얀 구정 뜨개실로 짠 소품, 그 위에 몇 가지 화장품과 나무로 깎은 고니 한 쌍이 올려 있었다. 배가 불룩 나온 것처럼 보이는 횃댓보 안에는 두 부부의 옷이 걸려 있었다.
새언니 목소리는 약간 걸걸했는데, 내게 그렇게 다정할 수 없었다. 그 집에 시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과 약간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때나 이때나 나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새언니에게 학교 이야기며 친구들 이야기를 조잘조잘 지껄였다. 그러면 환히 웃으며 또 얘기해보라고 부추겼다. 장단을 맞춰주니까 그랬을까. 해가 저무는 것도 잊은 채 이야기 장단에 빠진 적도 있었다.
깜짝 놀라 저녁밥을 짓은 새언니 옆에서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상 차리는 것을 돕기도 했다. 내가 집에 가려고 하면 못 가게 붙잡고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함께 있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낯선 시댁에서 모두 다 어렵기만 한데, 나는 좀 편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두고 온 친정의 막냇동생 같아서였을까. 그때는 친정나들이를 지금처럼 마음껏 할 수 없을 때였으므로.
추석 때 우리 집 송편을 다 만들고 나면, 내가 가서 꼭 도와주었다. 어려도 나는 송편을 빨리 잘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동네에서 불려 다닐 정도로. 옆집에서 나를 부르러 올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제일 먼저 그 오빠네 집으로 갔다. 그 집은 대식구여서 음식을 많이 했다. 아주머니가 도와주셔도 새언니 혼자 그 많은 음식을 하다시피 했다. 내가 가면 아주머니와 새언니가 얼마나 반겼는지 모른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지만 중학교 졸업 후 객지로 떠도느라 새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수십 년 세월은 화살처럼 흘렀다. 반세기가 지난 후, 아주머니 백수연에서 만났다.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팔순이 다된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다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내게로 다가와 애기씨 아니냐고, 하는데, 새언니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누군지 몰라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가 웃으며 언니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변했는지.
새언니는 옛날처럼 내 손을 끌고 한쪽으로 갔다. 신혼 방으로 이끌던 그때처럼. 보고 싶었다고, 이제 자주 보자고, 소식 다 알고 있었다고, 그럴 줄 알았고 대견하다고, 내 손을 잡은 채 반가워했다. 너무도 다른 모습에 목소리까지 달라져 생경했지만 금세 지난이야기를 하며 스스럼없어졌다. 세월을 도둑맞은 것 같다는 말이 비로소 피부에 와닿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작아진 키, 유난히 쪼글쪼글한 얼굴, 굽은 등과 허리, 그 옛날의 새언니와 무척 달랐다.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며 살았다고 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단다. 그러는 동안 내가 살아온 삶도 만만치는 않았다. 이야기를 다하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대략 짐작할 것 같아, 두고두고 하자며 잔치를 즐겼다. 음식을 먹으며 어울렸고 노래를 하기도 했다. 새언니는 시댁 식구들을 챙기느라 굽은 허리를 해가지고도 이 사람 저 사람 옆으로 옮겨 앉았다. 내 눈길은 계속 새언니의 그 모습을 따라갔다. 살만한 집이어서 먹고사는 것은 걱정 없었지만, 병치레에 이렇게 늙었다며 쓸쓸하게 웃던 모습이 강하게 남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새언니는 한 달 후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병 때문이었다. 애기씨, 하며 반갑게 잡던 따뜻한 손길의 느낌이 여전한데, 다시 보자던 약속은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뭉뚱그려 말하기는 어딘지 석연치 않다. 왜 그런 거냐고 누군가에게 물으며 푸념하고만 싶다. 그만큼 속절없이 흐른 세월이 야속하고, 해후가 한 번에 그치고 만 것도 야속하다. 기다려주지 않는 모든 것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