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후 내내 골몰했다. 이름 짓기에. 며칠 전에 친척 동생이 손녀가 태어났다며 작명을 부탁해 왔다. 전에도 한 번 이름을 지어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조카가 나에게 부탁하고 싶어 한단다. 흔쾌히 지어보겠다고 했다. 기특하지 않은가. 나를 믿고 지어 달라 하니. 본인이 짓고 싶을 텐데. 이름 짓기는 쉽지 않다. 글 짓는 것처럼 이름도 지으면 될까. 틀린 말은 아니나 둘 다 어려운 것이 공통점이다. 오전에 일을 마친 후, 오후 내내 책상 앞에 앉아 골몰했다.
소설 창작할 때 등장인물의 이름 짓기가 중요하다. 작가는 인물의 이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보통이다. 이름이 작품 속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격이 짐작되기도 한다. 물론 꼭 맞진 않지만. 나는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이름 지어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는데, 조심스럽다. 평생 불리게 될 테니, 듣기 좋고 부르기 좋으며 의미 또한 좋게 지어주고 싶다. 소설 속 등장인물 이름 짓기는 그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다.
사실 나는 작명법을 잘 알지 못한다.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해 본 적 없으니, 이 무슨 배짱인지. 며칠 동안 고심을 하면서도 모순되게 즐겁다. 소설 속 인물의 이름 짓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감과 조심스러움이 생기는데도. 내가 작명법을 몰라 못 짓는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부탁한다. 불가사의한 일 아닌가. 얼마간의 비용만 내면 작명소에서 얼마든지 지을 수 있을 텐데, 나에게 부탁하다니. 오죽하면 거금을 주고 작명하는 책을 샀을까.
이름 부탁을 받고 며칠 동안 생각했다. 산책하면서, 일을 하다 잠시 쉴 때, 끊임없이 생각했다. 유행하는 이름은 피하고 싶다. 의미는 괜찮으나 발음할 때 좋지 않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이름도 당연히 피하고. 국제화 시대이므로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도 발음하기 쉬우면 좋겠다. 두 자가 모두 화려하거나 지나치게 좋은 의미를 가진 것도 피한다. 한 자가 화려하면 한 자는 소박한 의미를 가진 자로 정한다. 또 뜻은 좋으나 피해야 하는 자도 있다. 그러다 보면 이름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거기다 음양오행을 아주 무시할 수 없다. 모를 때는 모르겠으나, 조금 아는 게 병이다.
내가 작명을 제대로 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의 방법이 있긴 하다. 먼저 하는 게 태어난 아기를 위한 기도다. 다음은 아기의 생년월일시 즉 사주를 바탕으로 음양오행을 따져 무엇이 부족한지 찾는다. 발음오행과 자원오행을 염두에 두고 이름을 고른 후, 여러 번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해 본다. 두세 개 이름을 지어 부탁한 사람에게 고르게 해 정해지면, 한자를 획수 맞춰 찾은 후 전체적으로 어울리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이름 풀이를 해서 파일로 보내주면 끝난다.
이름을 완벽하게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한다. 그래도 부탁하면 재량껏 최선을 다해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골몰한다. 정성을 다해 짓고 났을 때, 아기의 부모가 좋아하면 나도 기쁘다. 내가 지은 그 이름으로 평생 불리고 쓸 것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싶기도 하다. 이름 풀이 끝에 내 이름을 꼭 적어 준다. 아기가 커서 자기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름 짓기에 관심이 생긴 것은, 내 이름 때문이었다. 흔하디 흔해서 한 반에 한두 명은 꼭 있다시피 했다. 그게 싫었다. 세련되고 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다.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후에 쉽게 개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는, 이미 익숙해졌고 결혼도 한 후여서,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뜻이 좋았고, 아버지가 정성껏 지었다는 것도 알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이름에 대한 불만족을 내가 낳은 아이들의 이름을 지으며 해소했다. 시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것도 마다하고 내 마음에 맞는 이름으로 지었다.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시어른들께 송구한 마음이 든다. 정성을 다해 지어주신 이름을 싫다 했으니, 얼마나 불경하고 되바라진 며느리였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아들과 딸이 내가 지어준 이름에 만족해하는 것이다.
외손자들의 이름은 딸과 사위의 의견을 반영하여 내가 지었다. 먼저 사돈댁에 의뢰를 하라고 했는데, 내게 일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외손자여서 사돈댁의 의견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무래도 내 마음대로 하기 조심스러웠다. 내가 지은 이름을 사돈댁에서 흡족해하여 마음이 놓였다. 지인들이나 친척집 아기 이름 짓기보다 솔직히 더 신경이 쓰였다. 외가의 입장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세 개의 이름을 정했다. 조카에게 하나를 고르라고 한 다음, 한자를 정하고 이름 풀이 설명서를 쓰면 될 것 같다. 적어도 이삼일 골몰해야 대략이라도 이름이 지어지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경전을 배우면서 이름 짓기가 조금 쉽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다시 더 어려워졌다. 글쓰기도 조금 하다 보면 처음보다 쉬운 것 같은데, 갈수록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싶다.
아기가 평생 불리고 사용할 이름, 그 이름 짓기는 확실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기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공부해서 이름 지을 기회가 오면 잘 지어주고 싶다. 부르기 좋고 뜻도 좋으며 어울리는 이름을 찾는 것 또한 숨겨진 보석을 찾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다. 또 무엇이 되었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 싶다. 조심스럽긴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