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받았다. 그것도 세 사람에게서. 남성은 아니다. 내 강의를 듣는 작가지망생 여성들로부터다. 그러고 보니 밸런타인데이다. 젊어서도 못 받아본 초콜릿. 예전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지금은 그 의미는 희미해지고 초콜릿만 남은 것 같다. 동성이고 이성이고 상관없이 초콜릿을 주고받으니 말이다. 그게 모두 상술이라며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괜찮다고 본다.
초콜릿뿐인가. 나는 그에게 받은 선물이 없다. 아, 있긴 하다. 한 번 꽃을 받았고, 한 번 재킷을 받았고, 한 번 책을 받았다. 도합 세 번이다. 모두 결혼 초였다. 그 외에 어떤 것도 받은 적이 없다. 의외로 나는 이벤트를 좋아하는 인간이다. 특별한 날 뭔가 하는 게 좋다. 인생 별 것 있나. 보통 때는 치열하게 살다가 이름 있는 날 한 번씩 색다른 짓을 하는 것이 좋다.
하나밖에 없는 아내에게 그는 왜 선물을 하지 않았을까. 뭘 사준다고 하긴 했었다. 말로 떡을 하면 조선 사람이 다 먹고도 남는다고 했던가. 모두 말뿐이었다. 실제로 해준 것은 하나도 없다. 금붙이 팔아 전세금 보탤 때는 나중에 더 좋은 것으로 사준다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어렵게 학업을 이어 졸업할 때도 꽃 한 송이 사주지 않았고, 내 생일에 밥 한 번 사준 적 없다. 내게 좋은 일이 생겨도 그는 축하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초(自招)한 것 같다. 나 스스로 불러온 결과다. 처음 꽃을 사들고 왔을 때는, 막 분가해서 살림이 어려웠다. 이제 걷기 시작하는 아들과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딸이 있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잠도 못 자고 뒤척댈 적이 많았다. 그때, 그가 꽃을 사들고 왔으니 꽃이 눈에 보였겠는가. 내가 무척 잔소리를 한 것 같다. 현실성 없는 사람이라는 둥, 이런 사람을 믿고 어찌 살겠냐는 둥. 꽃을 들고 멀뚱멀뚱 서있던 그가 방 문 앞에 꽃을 놓았고, 내가 집어 들어 바닥에 던졌다.
잘못했다. 기왕 사 온 것 그럴 것까지 없었는데. 그때는 그런 저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들 분유 값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에 꽃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그의 눈이 커졌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내 잔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만했어야 했는데, 그가 말없이 휙 나가버렸고 깊은 밤에 들어왔다. 이해한다. 안다, 말이 이성과 달리 감정적으로 나왔다는 것도. 그 후로 그에게 꽃을 받은 적 없다. 심지어 내 졸업식에도 꽃을 사 오지 않았다.
재킷을 사가지고 온 것은 신혼 때였다. 그의 친구 중에 옷 가게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하나 들고 온 모양이었다. 옷은 디자인과 색깔이 취향과 체형에 맞아야 하지 않는가. 전혀 아니었다. 붉으래한 색깔에 체크무늬, 거기다 벨트로 고정해야 하는 실용적이지 않은 재킷이었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그 옷을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기쁜 마음으로 열어보고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실망은 분노로 발전했다. 아, 나는 그때부터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던가. 당장 바꿔오라고 했다.
그는 그 옷을 들고나갔다. 입어보기라도 했다면 생각과 달리 어울릴 수 있었을지 모르고, 맞지 않으면 그때 바꿔달라고 해도 좋았을 텐데, 왜 화부터 냈는지 모르겠다. 아마 기대했다가 실망이 커서 그랬을 것 같다. 그 후 다시 옷을 들고 오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반품했을 것이다. 내게 같이 나가서 고르자고 해도 됐을 텐데. 우리는 모든 게 어설펐다. 나이 또한 어려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미숙했다.
책은 선물 받았다고 할 수 없다. 그때도 신혼 때였는데 읍에 나갔다가 서점에 들렀다. 우리는 시부모님과 살고 있었고, 나는 용돈을 갖고 있지 않을 때였다. 서점에서 사고 싶은 책을 만났다. 상하권으로 된 가곡이 적힌 음악책인데, 내가 배우고 싶은 노래가 거의 실려 있었다. 사고 싶었다. 할 수 없이 그에게 사자고 했다. 그는 스윽 보더니 이런 책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고 가격이 제법 나갔는데 그는 더 말하지 않고 값을 지불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선물이 아니었다. 합작이랄 수 있을까.
그 책을 한동안 애용했다. 하모니카로 음을 잡아가며 거기 있는 노래를 거의 배웠다. 시부모님이 계시는 안방에 들릴까 봐 목소리를 죽여 부르며 익혔다. 집을 떠나 시댁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절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안방까지 들렸던 모양이다. 한 번은 아버님께서 하모니카를 불 줄 아냐고 하셨고, 아버님과 나는 마루에 앉아 같이 하모니카를 불기도 했다. 그 음악책은 지금도 내 피아노 위에 얹혀 있다. 마음 내키면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사람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자초하는 거란다. 자초(自招), 스스로 부른다는 것이다. 맞는 것 같다. 그는 그 후로 어떤 선물도 내게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생일날도. 잊어버려서 그런가 싶어 내 생일이 닿기 전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아도 소용없다. 내 이름을 써놓아도 그는 무심한 듯 그냥 넘겼다. 학위를 받았을 때, 온 천지에서 꽃다발과 선물을 보내도, 정작 그는 말로도 행동으로도 아무런 표현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자초했다는 것을.
모든 것을 내가 부른 일이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바라지 않고, 내가 나에게 선물하기로. 무엇이든.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나에게 예쁜 꽃을 사주고, 선물도 하며, 맛있는 음식도 사준다. 챙겨주지 않는다고 가족들에게도 섭섭해하지 않는다. 그게 습관 된 지 오래다. 그래도 가끔씩 서운할 때 있다. 인간이니까. 그럴 때 떠올린다. 모두 자초한 일이라는 걸. 그러면 서운한 마음이 사라진다.
수강생들이 준 초콜릿은 내가 자초한 것은 아닐 터다. 그들의 고운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그래서 더욱 고맙다. 글 쓰면서 당 떨어지면 하나씩 먹으란다. 초콜릿도 좋겠지만 그 고운 마음들을 생각하면 금세 충전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