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팔순이 다 되어가는 지인이 뜬금없이 말했다. 패물 가진 것 며느리 주지 말고 딸에게 주라고. 크게 웃었다. 왜 웃느냐고 한다. 웃기지 않느냐고, 며느리가 없지만 패물도 없는데, 누굴 주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녀는 아무튼 패물을 며느리에게 주면 안 된단다. 딸에게는 주어도. 이유를 물었더니, 며느리는 절대 시어머니 패물을 소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금세 다 팔고 만다며. 이왕 준 거면 팔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집안형편이 괜찮았던 그녀는 특별한 날이면 남편으로부터 패물을 선물 받았단다. 그러다 보니 제법 되었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본인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하나씩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팔찌, 목걸이, 반지, 귀걸이 등 세트로 된 것과 다이아몬드까지 꽤 되더란다. 이제 착용할 일도 없는지라 결혼반지 하나만 남기고 세 며느리에게 다 나눠주기로 했는데, 모두 살만해서 그랬는지 며느리들이 탐탁잖아했단다. 그녀 생각에는 보석이니까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 후 한 번도 착용하는 것을 못 본지라 왜 안 하고 다니느냐고 물으니, 며느리가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세팅하라 해도 시원하게 답하지 않았고. 세 며느리가 다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모두 바로 팔아버렸더란다. 그녀는 충격받을 정도로 마음이 상했지만 준 것이니 더 이상 말도 못 하고, 속상하다며 내게 하소연했다.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에게는 겨우 반지 하나 줬다며.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단다. 딸에게 다 줄 걸.
솔직히 난 패물이 없다. 40년 전 분가할 때 금붙이 다 팔았고, 아이들 돌 백일에 받은 것도 금 모으기 할 때 내놔서 없다. 거기다 교회에서 반주자로 오래 봉사했다고 선물 받은 금반지도 이사 다니는 바람에 없어지고 말았다. 결혼반지라고 남은 게 도금된 백금에 조그만 사파이어 박힌 것 하나뿐이다. 내가 패물을 좋아했으면 몇 개 장만했을지 모르는데, 솔직히 갖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남편이 사준다고 했던 반지나 목걸이를 실제로 샀다면 아마 엄청났을 거다. 말만 하고 해준 게 하나도 없다. 하여간에 허풍만 세다. 허풍선이 남작처럼. 그래도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불만도 없었고. 패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다니지 않을 텐데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또 남편이 사주든 안 사주든 내가 마음만 있다면 샀을 테지만 난 도통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욕심 없는 사람은 아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고민 후 결정이 되면, 가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산다. 패물이나 옷, 구두, 살림도구 등을 사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지 않을 뿐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아무리 유행이 바뀌고 더 편리한 물품이 나와도 관심두지 않는다. 한 예로, 이번에 바꾼 휴대전화도 7년 정도 쓰고 바꾸었다. 구식이다, 비효율적이다, 별소리를 다해도 나는 못 쓰게 될 때까지 줄기차게 쓴다. 그러니 필요치 않은 패물을 장만했을 리 만무하다.
며칠 전 딸과 특별한 데이트를 하고 점심 먹으며 말을 꺼냈다. 전신마사지 경험도 시켜주었으니 뭐라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게 도금된 백금 사파이어 반지가 있지 않은가. 그걸 염두에 두고 말했다. “너한테 내 패물 다 물려줄게.” 딸은 막국수만 호로록호로록 먹으며 들은 척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좀 더 돋우었다. “내가 너한테 패물 다 준다니까.” 딸은 국물을 마시며 역시 묵묵부답이다. 국수대접을 내려놓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싫어, 안 가져!”
이유를 물었다. “패물도 없으면서 뭘 가지래? 뻔하지, 장난감 반지 하나 어디서 주웠겠지. 그거 준다고 지금 장난치는 거잖아!” 딸은 장난으로 여겼다. 아니라고, 사파이어 반지 하나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딸은 피식 웃으면서 거절한다. 나중에 며느리나 주란다. 없는 며느리,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며느리에게 왜 주느냐고, 사랑하는 딸에게 주고 싶다고 말해도 손바닥을 내밀며 “반사!” 한다. 줘도 내게 도로 주겠다는 표시다.
앞으로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거부가 될지 어찌 아냐고, 또 새로 쓰는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데 무시하느냐고, 실수하는 거라고, 정말 안 받을 거냐고, 내가 그야말로 입에 거품을 물고 역설해도 들은 척도 않는다. 그러다 후회하는 일 있을 거라며 못을 박자, 딸은 제발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며 막국수 국물을 다 마셨다. 나도 장칼국수 매콤한 국물을 마셨다. 저 딸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어야 한다. 욕심일지 앙심일지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가능하지도 않을 것인데.
차 안에서 딸이 운전하며 말했다. 음식점에서 모습과 달리 진중한 표정이었다. “엄마, 난 엄마가 즐겁게 글을 쓰면 된다고 생각해. 또 좋은 작품 쓰는 작가가 되는 게 더 좋아. 베스트셀러작가보다. 패물 없어도 돼. 하고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딸도 나처럼 패물 착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니, 그건 나를 닮았다. 그래도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 “너 후회 안 하지?” 딸은 앞을 똑바로 보며 운전만 한다. 침묵. “응, 안 해. 우리에게 뭘 주려고 하지 마. 이제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 그만큼 했으면 됐어. 품위에 맞게 옷도 사 입고 패물도 사서 해.” 나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딸이 눈치채지 못하게 눈을 비비는 척하며, 꾹꾹 눌러 닦았다.
지인이 내게 간곡히 했던 말의 의미를 알겠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삶을 다 공유하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딸은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부분 다 안다. 그런 시간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며느리는 그대로 인정하고, 딸은 또 그대로 인정하면 될 일이다. 사람의 관계에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시간들이 각각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삶이 조금 더 유연하지 않을까. 그날 이후, 나는 딸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