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으로 가는 이유

일상

by 최명숙

머리가 욱신거린다. 두통이다. 감기 기운이 없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니며, 신경 쓸 일도 없는데, 웬 두통이란 말인가. 나는 어지간하면 약을 먹지 않는다. 참고 견디는 것보다 약을 먹는 게 낫다지만 안 먹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으며, 보름동안 견딘다. 그러면 슬그머니 낫는다. 그러니 이깟 두통 좀 있다고 약 먹을 내가 아니다.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미세먼지 때문일 수 있다. 일기를 검색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다. 초미세먼지는 더 심하다. 다시 미세먼지와 두통을 검색하니, 두통의 원인이 그 때문일 수 있단다. 내 생각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미세먼지 속에 들어있는 각종 화학 물질과 오염 물질이 원인이다. 돌이켜 보니, 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어김없이 두통이 있었다. 내 두통의 원인은 미세먼지다. 틀림없다.


공기청정기를 켜고 물을 넉넉히 마셨다. 커피도 연하게 내려서 창가로 들고 가 천천히 마셨다. 창밖은 뿌옇다 못해 누런 구름이 덮인 듯하다. 황사다. 봄만 되면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 때문에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것일까. 황사와 함께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까지. 이미 삼국시대 때도 있었다는 기록이 남은 황사. 그래, 황사는 그렇다 해도 미세먼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후손들에게 이대로 넘겨줘야 할까. 마음이 복잡하고 답답하다.


미세먼지가 아니라 혹시 탄수화물 때문인지 모르겠다. 밥상을 차린다. 충분히 먹는다. 그래도 두통은 여전하다. 곶감도 두 개 먹는다. 단 것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역시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진통제를 먹을까, 유혹이 강해진다. 약에 든 독성도 내 몸속으로 같이 들어오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 간이 애쓸 것을 생각하니, 유혹은 저만치 도망치고 만다. 이래도 저래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숲 속으로 가면 괜찮을까. 숲은 많은 것을 치유해주지 않던가.


밖으로 나왔다. 마스크를 쓰고. 이런 날은 집안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단다. 운동이나 산행도 썩 좋지 않고. 그래도 산바람을 쐬면 나을 듯했다. 기분 상 그렇다. 이론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걸었다. 거실 창을 통해 보이던 밖과 실제 밖은 달랐다. 바람은 훈훈했고, 황사는 약간 덜한 듯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알 수 없지만.


개울가 옆 나무의자에 할머니 한 분이 강아지를 안고 앉아 있다. 마스크를 내린 채. 강아지가 나를 쳐다본다. 할머니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강아지에게 웃어 보였다. 봄까치꽃이 피던 곳을 살펴보았다. 아직 꽃망울도 맺히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야 꽃이 필 것 같다. 아파트 옆으로 난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선 조붓한 길을 걸어 산 쪽으로 오른다. 내 뒤에 두 사람이 따라온다. 먼저 가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천천히 걸을 생각이었다.


언젠가부터 산에 오를 때 시간을 재거나 빨리 걷지 않는다. 운동 효과로 보면 빨리 걷는 게 낫겠지만 이제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한동안 목표를 정해놓고 시간을 재기까지 했다. 왜 그렇게 모든 것에 치열하고 결사적이었을까. 그러니 딸이 전투적으로 산행을 한다고 놀리지 않았던가. 지금은 아니다. 그것도 저것도 다해봐서 그럴까. 이제 내키는 대로 한다. 느릿느릿 걷고 싶으면 그렇게, 가끔 한 번씩 땀을 흠뻑 내고 싶으면 전투적으로. 다 내 마음대로다.


숲 속은 언제나처럼 고요하다. 그 고요함에 익숙해질 때쯤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박새들은 재재거리고, 동고비는 포르릉 날아 나뭇가지에 옮겨 앉는다. 까치는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오리나무에 앉아 있다.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다. 숲이 자기들 터전이라고 무언의 말을 하는 듯하다. 그래 인정해. 하지만 같이 누리자, 숲에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 나도 무언의 말을 건넨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약간 질퍽거렸다. 가랑잎 덮인 사이로 황토가 드러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고 싶다. 참았다.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과감하게 벗으리라. 누렇게 퇴색한 수풀은 그 안에 새싹을 품고 있을 것 같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나뭇가지에 붙은 싹눈이 지난번보다 약간 통통해진 듯하다. 생각일까. 진달래나무를 살펴보았다. 아직 꽃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양지바른 쪽에는 다를지도 모르는데.


오색딱따구리가 참나무를 쪼던 곳에 다다랐다. 없다. 어디로 갔을까. 벌레의 알을 다 잡아서 다른 나무로 옮겨 갔을까. 아, 삐비비쪼로로롱 청아한 소리, 종달새다. 맑고 경쾌한 하이소프라노. 종다리가 왔다. 봄이 왔다. 휘파람새소리도 듣기 좋지만 봄 산에서 듣는 종달새 소리는 마음까지 맑힐 정도로 듣기 좋다. 종달새 소리를 들으며 자박자박 걷는다. 기분 좋다. 종달새 소리는 간헐적으로 들린다.


숲의 정경과 새소리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 신갈나무 둥치에 등을 대고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맑지 않으나 내 마음은 맑았다. 알지 못하는 사이, 두통이 깨끗이 사라졌다. 산바람을 쐬고 산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사이에 없어진 것 같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바람은 더욱 따뜻했다. 복잡하고 답답했던 마음도 날아간 지 오래다. 몸도 마음도 숲이 맑혀준 듯하다. 두통이든, 기분이든, 산에 가면 치유된다. 산바람과 산새들, 나무와 들꽃 또 수풀들 덕분이다. 내가 산으로 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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