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풀린 날

by 최명숙


그녀와 함께 그곳에 갔다. 친구, 간혹 모녀나 고부가 그곳에서 도란거리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가끔 보곤 했다. 내게 그런 일이 생기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처음에 그곳에 가자고 제의했을 때 거부했다. 몇 번 다녀왔다는 그녀는 한 번 가보면 중독될 정도로 좋다며 나를 꾀었다. 약간 호기심이 생겼다. 또 텔레비전에서 그 장면을 볼 때 은근히 그런 곳에 가보고도 싶었던 적이 있다. 용기를 내어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침침했다. 약간 거슬렸다.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이니 퇴폐업소는 아닐 텐데, 왜 그럴까 싶었다. 카운터에서 예약된 번호를 말하고 열쇠를 받았다. 직원이 주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옷을 사물함에 넣은 후, 지명한 방으로 갔다. 그녀는 익숙한 듯 성큼성큼 걸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어둑한 복도를 더듬거리며 걸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두 평 정도 되는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좀 어둡다. 매트가 두 개 깔려 있었다. 그녀는 내게 편히 누우라고 했다. 휴대폰을 진동이나 무음으로 해놓으란다.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기분이 묘했다. 그냥 안 하겠다고 할까, 썩 내키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자주 오느냐고 물었더니,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 온단다.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을 때 오면 몸도 풀리고 기분도 풀린다고 했다. 그녀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때 인기척이 났다.


안녕하세요? 약간 어설픈 발음이다. 어두침침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네, 안녕하세요? 그녀가 익숙하게 인사를 받고 건넸다. 이제부터 저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니 몸을 맡기고 편히 있으면 된단다. 그것으로 그녀와 대화는 끊어졌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둘이 누워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던데, 아니었다. 하긴 본래 그녀는 사적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했나 보다. 들어온 사람들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거무스름한 얼굴빛은 흐린 불빛 때문에 더 검게 보였다. 그렇다고 서양인은 아니었다. 그녀 앞에는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아가씨로 보이는 여성이, 내 앞에는 짧은 커트머리를 한 중년여성이 앉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약간 긴장했다. 옆을 슬쩍 보니 그녀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모녀 같았다.


중년여성이 어눌한 우리말로 엎드리라고 말했다. 수건을 이마에 받쳐주었다. 엎드린 자세여서 여성이 내게 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짐작만 할 뿐이다. 손으로 발부터 누르고 주물렀다. 거북했다. 싫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일어나 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예약하고 비용 들여 만든 기회인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한 일이다. 또 촌스럽지 않은가. 그냥 있으면서 누리면 될 일인데, 굳이 거부한다는 것은.


그 촌스러움 때문에 아직도 목욕탕에서 세신사에게 몸을 맡겨본 적이 없다. 한번 해보면 스트레스 풀리고 좋다던데, 나는 아직 그래본 적 없다. 멀쩡한 내 손 두고 남에게 맡길 게 뭐 있느냐고 하지만, 실은 민망하여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차려주는 밥상도 못 받아먹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남의 배려를 자연스럽게 받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촌스러운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다.


중년여성은 내 발을 지나 종아리를 주무르고 누르더니, 허리를 타고 앉아 등의 혈을 따라 누르는 것 같다. 이상하게 차츰 몸이 시원해졌다. 조금 전까지 들었던 거북한 느낌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잠이 올 것 같이 몸이 나른했다. 중년여성이 물었다. 역시 어눌한 어투로. 아프냐고. 아니라고 했다. 아프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통증은 아니다. 시원하다. 고맙다고 했더니, 중년여성도 고맙다고 한다.


중년여성이 가장 많이 시간을 투자한 곳은 내 어깨와 목 부분이었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뭉치고 좋지 않은 부분을. 으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파도 참았다. 내 입에서 가는 한숨이 나올 때마다 물었다. 아파요? 여전히 아니라고 했다. 중년여성은 가늘게 나오는 웃음을 흣 웃었다. 손이 매웠고 숙련되었다. 팔꿈치와 팔, 손, 무릎, 발, 온몸을 활용해 내 몸을 누르고 주무르는 것 같았다. 엎드려 있는 자세로 볼 수 없어 짐작만 할 뿐이다.


내게 반듯하게 누우라고 주문했다. 이제 내 몸을 자기 몸처럼 스트레칭시키기 시작했다. 우두둑 소리가 간헐적으로 났다. 그럴 때마다 중년여성은 또 흣 웃었다. 나도 웃었다. 온몸을 비틀고 누르며 잡아당기기도 했다. 눈에 덮어 놓았던 수건이 떨어져 옆자리에 누운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아가씨에게 몸을 내맡긴 채 유유히. 아가씨가 그녀에게 아프냐고 물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약하게 주무르거나, 그녀가 익숙해져서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쳐다보는 것을 알고 그녀가 물었다. 엄마, 어때, 좋지?라고. 나는 짧게 답했다. 응. 딸은 마사지 끝나고 뭐 먹고 싶으냐고 했다. 아무거나. 딸은 칫, 아무거나가 어딨어. 맛있는 거 먹자, 한다. 왜 꼭 반말인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생전 처음 전신 마사지를 받게 해 줬는데, 그깟 반말이야 넘어가야지 싶었다. 점심은 내가 살게. 너 먹고 싶은 것으로 생각해 둬. 딸은 알았다며, 말을 마쳤다.


마사지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듯했다. 앉으라고 하더니 발목부터 머리끝까지 다시 한번 슬쩍슬쩍 누르고 주물렀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난 후, 중년여성이 고맙습니다 하며 소지품을 챙겼다. 중년여성이 가지고 온 시계는 1시간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총 마사지 시간은 90분이었다. 딸이 아가씨와 중년여성에게 얼마인지 팁을 건넸다. 그녀들은 인사를 하고 나갔다. 모녀 같지? 저분들도. 딸은 아닐 거란다. 태국 사람들은 잘 짐작이 안 간다며.


우리는 마사지샵 옆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다. 장칼국수와 막국수와 만두까지 넉넉히 주문했다. 딸이 마사지 어땠느냐고 또 물었다. 좋았다고, 온몸이 다 풀어지는 것 같다고, 너에게 서운했던 것도 다 풀어졌다고 했다. 딸의 눈이 커졌다. 내게 서운한 거가 있으면 바로 말하지, 그게 뭐냐며 다그쳤다. 아, 없어. 이를 테면 그렇다는 거지, 없다고 해도 딸은 자꾸 캐물었다. 내가 거리 두기를 한 이유에 대해 할 수 없이 말했다. 톡이나 전화 잘하지 않고 받지 않는 것에 대해. 딸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깟 것 가지고 모녀 사이에 서운함을 갖느냐며. 할말이 없었다. 딸의 말이 맞기 때문에.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와 궁색한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사지로 몸이 풀어지고, 매콤하고 뜨끈한 장칼국수로 속이 풀어졌다. 그러니 자연히 마음도. 모녀가 같이 마사지받는 거 해 보고 싶었다는 말을 끝으로, 고마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막국수와 장칼국수, 만두까지 모두 맛있었다. 무엇보다 딸과 함께 한 오붓한 시간이 좋았다. 새롭게 경험한 마사지도 좋았지만. 아무튼 몸도 마음도 풀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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