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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Feb 19. 2023

그 운전자, 여전히 얄밉다

예고 없이 

    

예고 없이, 옆 차선의 차가 내 차 앞으로 훅 들어왔다. 깜빡이를 넣지 않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늘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돌면서. 나를 놀라게 한 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휭 달아나버렸다. 제한속도 50km 도로에서. 나는 속도를 지켜 주행하고 있었다. 끼어든 차는 중형 벤츠. 추돌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내가 앞차와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속도를 지켜 주행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옆 차선의 차들에 신경 쓰며 운행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건 내 운전 습관이다. 아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일종의 방어 운전이다. 예민한 촉이 움직였다. 추월선에 있는 벤츠가 내 차선으로 들어올 것 같은 느낌. 신호는 없었지만 속도를 조금 더 줄였다. 내가 앞 차와 일정거리를 유지했다지만 내 앞으로 들어올 정도는 아니었는데, 예감이 맞았다. 벤츠가, 훅 들어왔다. 예상을 어느 정도 했다지만 설마 그러랴 싶었다. 그건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나와 벤츠는 비록 옆 차선이라 해도 근접에 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해서 경적을 울리지 않은데, 빵빵 두 번 울렸다. 반사적이었다. 그만큼 놀랐다. 벤츠가 미안하다는 표시라도 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듯, 속도를 더 높이더니, 다시 추월선으로 옮겨 쏜살 같이 달아나 버렸다. 추월선으로 가던 차가 경적을 울렸다. 신경질적으로. 뿌아아아앙. 그 차도 나처럼 놀랐으리라. 순식간에 두 사람을 놀라게 하고 역시 미안하다는 표시 없이 휘익 더 가속하며 달아났다.


눈앞에서 벤츠가 사라졌다. 그래도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던, 커피 마신 날 밤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결은 약간 달랐지만 거의 비슷한 벌렁거림이다. 서로 부딪치지 않았으니까 됐어. 심장아, 진정해! 운전 중이잖아. 최면을 걸었다. 그래도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머리에서 마찰음이 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급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억지로 벤츠 입장을 이해하려 했다. 왜 너그러운 척 하는 걸까. 나를 위해서다. 벌렁대는 가슴을 가라앉히는 수단으로. 


벤츠 운전자의 처신은 황당했다. 물론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속도를 냈다면 추돌했을 수 있다. 못 봤든지 아니면 판단을 잘못했든지 간에, 미안하다는 표시 정도 하는 게 운전자의 예의 아닌가. 비상등을 켜서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은 아닐 터다. 생각으로는 뒤쫓아 달려가 잡고, 항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정도로 깜짝 놀랐고, 가슴이 서늘했다. 


주행차선으로 가다가 앞의 차와 거리 확보가 어려울 때, 또는 앞의 차가 천천히 주행할 때, 차선을 추월선으로 바꿀 수 있다. 벤츠는 추월선에 있다가 왜 주행선으로 바꾸어 내 앞으로 갑자기 들어왔는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랬다가 다시 또 얼마 가지 않아 추월선으로 들어간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러다 무심코 가속하는 운전자가 있다면 분명히 사고로 이어질 것 같아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벤츠 운전자는 이리저리 차선을 넘나들며 운전하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일까. 스릴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위험천만한 짓 아닌가. 추돌이 없었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뒤차 운전자 가슴은 서늘할 거다. 그건 분명히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짓이다. 추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한동안 벌렁대는 가슴과 서늘한 느낌을 무슨 방법으로 보상한단 말인가. 적어도 운전자의 소양과 태도는 그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두근대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슬그머니 화가 났다. 비상등을 켜서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면, 놀랐더라도 화가 나지 않았을 거다. 급한 일이 있었나 보다, 이해했을 거다. 화를 내봤자 나만 손해지 싶어 억지로 가라앉혔다. 왜, 당한 사람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방법이 없다. 참을 수밖에. 부조리한 일이다. 조리에 맞지 않은 게 어디 그뿐인가. 세상 일이 대부분 그런 것을. 공연히 자조해 본다. 


나도 그 벤츠 같을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주위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쳤을지, 누군가의 앞을 훅 치고 들어가 놀람을 주었을지, 화를 돋우었을지, 오로지 내 앞만 생각하고 옆이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지도, 다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의도적으로 누구에게 그런 적은 없다. 기필코.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먼저 본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석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곡해가 생길 수도 있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를 자각했거나 지적받았을 때, 잘못한 것은 분명히 시인하며 송구함을 표했고, 아닐 경우 이유를 들어 설명했으며, 곡해일 때는 풀면서 살려고 노력해 왔다. 당연히 완벽하진 않다.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면 나는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벤츠의 행위를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해, 광장으로 들고 나와 신랄하게 성토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아, 그래도 그 운전자, 여전히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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