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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27. 2022

부모 자식 간에도 알바비는 챙겨야

정이 더 깊어지기 위해

     

단골로 다니는 가게에서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이 물건을 포장하거나 담아주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가게 주인과 똑같이 생겼다. 아들 같았다. 토요일이니 아버지를 도와주러 왔나 보다 했다. 생글생글 웃으며 손님 대하는 태도가 제법이었다. 기특했다.


“아버지 일 도우러 나왔어요? 착하기도 해라.”

내 말에도 빙긋 웃기만 했다. 그때 가게 주인이 나섰다.

“착하긴요. 알바 비 줘야 됩니다. 허허. 요즘 애들 공짜 없어요.”

“에이, 그래도 착하죠. 누가 노는 날 일하겠어요. 당연히 주셔야죠.”

나도 그만 눙치고 말았다. 학생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손님이 오면 얼른 응대하고, 물건을 봉지에 담아 내민다. 그 모습이 그냥 좋아 보였다. 알바 비를 주더라도 아버지의 가게 일을 도우며 그 애로를 알고 삶을 이해하지 않을까.


“그래, 알바 비 얼마나 받아요?”

학생에게 물었다.

“시급 11,000원이에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아주 괜찮은 알바 자리네요. 자주 도와요?”

“네. 토요일에는 거의 제가 붙박이로 해요.”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니만 오래 해온 터였던 것이다.


“부모님이 키워주시고 가르쳐주시는데 꼭 알바 비를 받아야 해요?”

장난 삼아 물었다.

“아, 그거야 당연한 거죠. 하지만 제가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하면 알바 비 받잖아요. 그러니 공짜는 안 되죠. 히히.”

학생은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 가게 주인도 빙긋 웃었다. 부자의 웃는 모습이 어쩌면 저리도 닮았을까. 보기 좋았다.


물건을 사들고 천변 산책로를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여러 길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천변길이다. 무성했던 갈대는 이미 거무튀튀하게 변해가고, 구절초와 쑥부쟁이 꽃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물오리만 물속에 발을 담그고 유유히 떠 있다. 송사리 떼의 몸체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 간혹 낙엽 몇 잎이 떠서 함께 흘러간다.


30년 전쯤 우리 집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었다. 아들과 딸이다. 어느 날 보니 거실에 ‘가사 아르바이트’라고 쓰인 쪽지가 붙어 있었다. 밥 짓기 50원, 설거지 50원, 청소 100원, 신발정리 50원, 화초 물 주기 50원, 빨래 돌리기 50원, 빨래 개기 100원, 보리차 끓이기 50원 등 세세하게 적힌 쪽지였다. 액수까지 기억하는 것은 청소와 빨래 개기만 100원이고 모두 50원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게 제일 힘들다는 거였다. 납득이 갔다.


두 아이들은 자기가 한 일을 체크하고 액수까지 적어서 일주일마다 알바 비를 챙겼다. 남편과 나는 두말하지 않고 주었다. 안 해도 줘야 하는데 집안일을 돕고 달라는 것이니 흔쾌히. 그때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였고, 그 전에는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한 적이 없었다. 두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여 그런 방법을 모색했다는 게 재밌고 기특하기도 했다. 한동안 그렇게 하다 흐지부지 돼버렸고 매달 일정액의 용돈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딸이 대학생 때였다. 딸은 아들보다 경제관념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내가 맡은 교회 예배 반주를 부득이 못하게 될 경우, 딸에게 부탁하면 꼭 손을 내밀었다. 알바 비 명목으로. 내가 축가 연습을 하느라 반주를 부탁해도 수고비를 요구하곤 했다. 자기 전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절대 무료로 반주나 편곡을 해주지 않던 딸이다. 지금 내가 아기를 봐주러 가면 늘 뭔가 준비했다가 챙겨준다. 처음에는 그만두라고 거절했는데, 이제는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고 편히 한다.


아들은 딸과 좀 다르다. 내가 책을 낼 때마다 표지와 삽화를 그려주었는데, 한 번도 수고비를 요구한 적이 없다. 준다고 해도 아니라고 거절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만으로 평생 감사하며 살 거란다. 예전에도 필요한 그림을 그려달라면 항상 그냥 해주었다. 그 아들이 내년에 전시회를 준비하며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얼마 전, 후원해주겠다며 물감 값으로 쓰라고 얼마간을 송금해줬다. 아들은 무척 고마워했다. 아무리 아들이지만 예술가에 대한 예의를 차린 것 같아 나도 기뻤다.


생각해보면, 부모 자식 간에도 주고받는 게 있으면 정이 더 새로워지는 것 같긴 하다. 주기만 하는 게 부모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아이들이 자꾸 내게 주려고 한다. 이제 받게 되면 받고, 주게 되면 주면서 사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는 사이에 정이 더 깊어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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