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Nov 04. 2023

또 하나의 일


지금 이 시대, 21세기는 일이 하나여서 안 된다. 여럿이면 여럿일수록 좋다. 내 지론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수없이 말했다. 나도 그러려고 노력했고. 어디서든 강의 요청이 오면 웬만해서 거절하지 않았다. 강사료가 많고 적음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을 하나하나 늘렸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나와도 내가 할 일이 많았다. 그렇다, 이만하면. 


주위사람들이 허전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내가 여기저기 일이 많은 걸 모르고. 그럴 때 나는 우스갯소릴 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고.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게 일한다는 걸 모르고 있다. 상관없다. 알든 모르든. 각자 인생이고, 남의 일 관심은 사흘 가지 못하는 법이니까. 아직 건강은 별 문제없으니 이 정도로 한동안 갈 것 같다. 


학생들에겐 그렇게 강조했으면서 정작 아들딸에겐 말하지 못한 것 같다. 직업을 여러 개 가지라는 말을. 물론 중심이 되는 일 하나는 있어야 하고, 곁가지로 이것저것 힘닿는 대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을. 대장간에 칼이 없고, 자기 자식 자기가 못 가르친다는 말이 있잖은가. 내가 꼭 그렇다. 애들에게 가끔 미안해지는 게 그런 부분이다. 남의 애들 가르치느라 정작 내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것 말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엊그제 딸이 말했다. 부업을 하나 하겠다고. 깜짝 놀랐다. 지금도 직장에 육아에, 살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이 아닌가. 손목에는 언제나 파스를 붙이고 사는. 그런데 무슨 부업을 한다는 것인지. 연유를 물었다. 집 근처에 키즈카페가 하나 매물로 나온 게 있는데 해보겠단다. 36개월 미만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 위험하지 않고 문제의 소지도 없는데,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겸업이 가능한지 물으니 가능하다고 했다며.


벌써 알아볼 것은 다 알아본 듯했다. 수입, 근무 시간, 영업 방법 등. 직접 답사를 하고 요모조모 살펴보았는데, 할 만하다는 결론이었다. 키즈카페에 자주 다니는지라 그쪽으론 자기도 일가견이 있다고 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행정실 특성상 매일 근무하지 않는지라 하루만 사위가 도와주고 하루는 평일에 휴무를 잡아 놓으면 된다고 했다. 사위도 평일에 하루 시간 빼는 게 가능하단다. 대신 휴일에 근무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빠듯하게 시간을 쓰면서 어떻게 육아와 살림을 병행할 수 있을는지. 


그 나이 때 내 삶이 겹쳐진다. 일분일초가 자유롭지 못했던 날. 어린이집 운영과 살림 그리고 학업에 강의까지. 그때 다행히 아이들은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딸은 이제 겨우 세 살과 여섯 살인 아기들을 데리고 어찌하겠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잘 생각해 봤느냐는 말만 되뇌었다. 딸은 이미 각오한 듯했다. 단호했다. 하겠다는 의지가. 운영해 보다가 시간이 도저히 안 되면 아르바이트생을 쓰거나 무인으로 전환하겠단다. 


온이들이나 잘 키워! 이 말에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했다. 못했다. 지금까지 제자들에겐 직업을 여러 개 가지라고 입이 닳도록 해놓고, 그렇게 하겠다는 딸에게 하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그건 표리부동한 처사니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아니던가. 내가 해온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딸이 힘들까 봐 쌍수 들어 환영하는 것까지 못하겠다. 어정쩡한 내 태도에 딸은 의아해하는 듯했다. 


딸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내 삶의 여정을 따라 밟는가. 내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딸은 썩 그렇지도 않은데. 그저 직장에 잘 다니고 애들이나 잘 키우면 될 일인데. 알게 모르게 나를 보고 배운 걸까. 겨우, 학교 일과 병행할 수 있겠느냐고, 자신 있느냐고, 물으며 확인하는 게 다였다. 딸은 물론이란다. 오래전에 이미 창업 카페에 가입해 놓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는데 마침 나왔으니 꼭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학교는 메인으로 꼭 잡고 있으면서 다른 일도 할 생각이었다면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시부모님께 말씀드렸느냐고. 아니란다. 결심은 섰지만 자금 동원과 부수적인 것을 더 자세히 알아보고 말씀드린다며. 무슨 말을 더하랴. 이제 순전히 딸애 본인의 몫이다. 해내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지금으로 봐선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밀고 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응원하는 일일 거다. 가끔 조력하는 것도. 


이제 나는 더 바빠질 것 같다. 딸이 키즈카페를 인수하면 지금보다 더 자주 부를 거다. 온이들 봐 달라, 카페 봐 달라, 불 보듯 뻔하다. 나 역시 전보다 더 바빠진 것을 딸이 아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지 말란 말을 할 수 없다. 제자들에게 직업을 여러 개 가지라고 늘 외쳐온 나인데, 그걸 수용하지 못한다면 안 될 일이다.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 간극을 견디고 극복하는 것 또한 그렇게 살려는 자의 몫이다. 아니, 현대인의. 


어쨌든 딸아이 삶의 방식을 응원한다. 나를 안 닮은 듯 하면서 닮은. 나는 최선을 다해 조력하리라. 그게 내가 할 또 하나의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