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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글쓰기, 그 매혹의 늪

나는 이렇게 쓴다

by 최명숙


개인의 삶과 사유가 문학작품으로 탄생될 수 있을까. 있다. 호모 나랜스 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본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사람의 삶과 사유를 표현한 이야기가 글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기록이고 역사이며 소중한 콘텐츠가 된다. 문학작품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이야기가 모두 문학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체험이 되어야 한다.


가치 있는 체험이란 유의미한 것을 말한다. 의미가 있는 체험이면 된다는 이야기다. 길에서 차에 치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보았다고 할 때, 보았다는 것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다. 그것을 보고 삶과 죽음, 동물 보호 등에 대한 이런저런 사유를 했다면 그것은 유의미한 사건이 될 수 있다. 결국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철학적 사고가 가미될 때 그것은 문학으로 탄생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개인의 경험이라도 가치 있는 체험으로 만들 수 있다면 모두.


신이나 영웅들의 특별한 이야기만이 문학의 재료가 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소하지만 의미 있고 소중하게 생각되는 개인의 경험이, 문학의 훌륭한 콘텐츠가 되는 시대이다. 그래서 사람의 삶과 그것에 대한 사유가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사유가 빠진 기록은 문학의 재료는 되지만 문학작품이 될 수 없다. 개인의 경험에 사유가 부가됨으로써 그것은 가치 있는 체험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것을 형상화해야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은 모두 특별하고 의미가 있다. 강가에 놓인 돌처럼 다양한 것이 사람의 삶이다. 또 누구의 삶이든 정도의 차이와 어려움이 있다. 그 여정이 힘들고 지난할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살아온 날들을 소재로 책 한 권 출간하는 게 꿈인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기의 삶이나 생각이 특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깃거리가 많아도 글로 엮어내지 못한다면, 아쉽게도 잊히고 만다. 소중한 삶의 궤적과 생각들은 사라져 버린다. 하루에도 몇 가지씩 떠오르는 글감을 흘려버리는 것이 되고 만다. 소중한 것을 경험했고 그것이 가치 있다 해도, 글로 쓰지 않는다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동굴 속에 그림을 그려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던가.


77세에 처음 글쓰기를 배운 작가가 있었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스스로 일컬을 정도로 온몸에 들러붙은 질병으로, 허리가 굽었고, 숨이 차 말도 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글쓰기를 시작했고, 90세에 소망하던 책 한 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91세에 눈을 감았다. 책이 나왔을 때, 흡족해하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제 본인의 삶을 잘 마무리했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다. 그 모습에서 개인의 삶이 문학으로 꽃 피는 것을 목도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다. 우리가 지금까지 숱하게 글을 읽어왔고 또 써왔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자신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쓰고 싶은 이야기,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도 망설이기만 할 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결국 문장으로 엮어내지 못해, 기억 속에, 가슴속에만 남겨두고 아쉬워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글쓰기는 작가나 글재주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 아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글쓰기는 ‘무엇(내용)’과 ‘어떻게(형식)’ 그리고 ‘왜(당위성)’의 문제이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표현할 것인지 생각하고 문장으로 만들면 되는 일이다.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봐온 정형화된 글, 다른 사람이 쓴 글처럼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나’의 방식대로 쓰면 되는데 말이다. 즉 본인의 삶과 사유를 바탕으로 쓴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것이 바로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 방식이다.


글쓰기를 차근차근 해나간다면 갈수록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글재주가 아니다. 변별된 자기만의 성실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만 있으면 된다. 일상 속에서 체험하고 생각했던 크고 작은 일들, 기억의 한편에 남아 가끔 그때를 소환하고 정서를 환기시키는 삶의 편린들, 무의식 속에 잠재돼 불쑥 튕겨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울림들. 그 모든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되어 한 편의 글로 탄생될 수 있다. 글감 찾기부터 적확한 단어의 선택과 문장 쓰기 및 단락 쓰기, 퇴고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성실하게 글쓰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21세기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의 하나가 글쓰기다. 타인과의 의사소통뿐 아니라, 내면의 또 다른 나와 소통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 또한 글쓰기다. 때로는 글쓰기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사유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사람, 호모 나랜스! 우리의 삶과 사유가 깃든 이야기가 문학으로 피어나는 글쓰기, 확실히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 매혹의 늪에 빠져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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