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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내가 추구하는 작가의 시원

글쓰기 시작점을 찾아

by 최명숙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가끔 생각난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도. 얼굴은 알 수 없다. 못 보았으니까. 말을 붙였지만 대꾸조차 없던 사람. 잊고 말고 할 것 없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기 때문일까. 옷깃 아니라 더 깊이 알던 사람들도 기억조차 없는 경우가 숱한데, 그 사람은 확실히 특별하다.


오래전 일이다. 지방 소도시의 학교에 출강할 때였다. 오후부터 야간 강의까지 있었다. 야간 강의가 끝나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그때 오고 갈 때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오는 차는 자주 있는 편이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젊었고 의욕에 넘쳤으며 버스 안에서도 책을 읽을 정도로 학구적이기도 했다.


그날도 야간 강의까지 끝내고 시외버스를 탔다. 모르는 남자 옆에 같이 앉기 싫어 자리를 물색했다. 저녁시간이라 잠을 자는 사람들을 만나면 낭패기 때문이다. 잠에 곯아떨어져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전제가 비어 있거나 여자 승객 혼자 앉는 옆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날 버스 안에는 완전히 빈 의자가 없었다. 드문드문 옆자리가 빈 곳이 있었지만 모두 남자들이 차지한 자리였다. 거의 뒤쪽 엔진 때문에 불룩 솟아나 조금은 불편한 자리가 하나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쪽을 향해 갔다.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갈색 블라우스와 검은색바지 차림의 여자. 남자들 옆에 앉기 불편한 나는 여자 옆에 앉았다. 내가 앉아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 누가 타면 창가로 다가앉는 게 보통인데. 무릎에 검은색 보스턴백이 놓여 있었다. 차가 움직이면서 기사는 차 안 가운데 불만 남기고 모든 등을 껐다.


밤에 차를 타다 보면 흔한 일이었다. 내부가 환하면 운전할 때 눈이 불편하기 때문인 듯했다. 사실 난 그게 불만이었다. 차에 타면 책을 읽는 게 내 습관이었으니까. 흐릿한 불빛에서 더구나 흔들리는 차 안에서 독서는 힘들다. 포기. 차는 깜깜한 밤길을 달렸다. 모두 눈을 감고 있거나 졸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깊은 잠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눈을 감았다. 피곤이 몰려왔다.


옆에 앉은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다. 부스럭부스럭. 무릎에 놓인 보스턴백을 뒤졌다. 눈을 떴다.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냈다. 급기야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난감하다. 그때나 이때나 한 오지랖 하는 나로서 묵과하기 힘들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물었다. 여자는 대꾸가 없다. 그저 울기만 한다. 아무리 오지랖 넓은 나라 해도 더 물을 수 없다. 그건 무례한 짓이기 때문이다. 호의가 무례로 생각될 만큼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나로서도 못할 짓이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그때까지 여자는 계속 울었다. 직행버스지만 두 곳에서 쉬었다. 첫 번째 쉬는 곳에서 여자는 일어섰다.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수 있도록 비켜줬다. 그녀가 내렸다. 긴 머리를 여전히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뒷모습만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앉았던 창가로 가 앉았다. 온기만 약간 남았다.


버스는 또 달렸다. 그녀가 왜 그렇게 울었을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까. 연인과 이별했을까. 무슨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분명히 좋은 일은 아닐 터다. 버스에 함께 앉은 낯선 여자에게 그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다. 힘들 때 누구라도 관심을 보여주면, 그래서 그냥 털어놓기만 해도 힘이 된다는 걸, 난 알기 때문이다. 그녀도 그래주길, 그럼으로써 마음이라도 후련해지길 바랐던 거다. 그녀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누구보다 더 분개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녀의 그 모습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작가가 되어 생각한 것이 있다. 그건 대신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울고 싶은 사람을 대신해 울어주고, 화나는 사람을 대신해 화내주고, 아픈 사람을 대신해 아파주는, 그런 사람이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런 작가가 되리라. 아니, 적어도 들어주는 사람이라도 되리라. 그렇게 듣고 본 것을 글로 표현하며 대신해주고 싶었다. 수필은 자기 고백적인 글쓰기지만 소설은 인물과 서사를 창조하여 쓰는 허구이기 때문에, 더 가능한 장르이다. 그래서 나는 수필가보다 먼저 동화작가가 되고 소설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인물을 모델로 소설과 동화를 쓰고, 수필과 시를 쓰며, 대신 울어주고 싶었다. 대신 아파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시외버스에서 만난 그녀가 떠오르곤 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한 시간 가까이 울음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왜 그랬을까 상상하며 서사를 만들어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연인과 이별한 사람으로, 또는 부모님 중 누구의 상을 치른 사람으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꾸며냈다.


그래서 그녀가 잊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를 이제 알겠다. 내 문학의 진정한 시작은 그녀의 울음을 목격한 때부터였을까.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막연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또한 그즈음이었으니까. 작가는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여 자기 성찰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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