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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pr 01. 2023

열다섯 살 만우절

산문시


영수는 칠판지우개에 분필가루를 잔뜩 묻히고 또 묻히고 분필가루 범벅된 칠판지우개를 앞 출입문틈에 끼우고 다시 잘 끼우고 선생님 정수리에 정확하게 떨어지게 경식이 코치받아가며 조심스레 끼우고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또 죽이다 예서제서 낄낄 웃고 또 쿡쿡 웃고 다시 숨을 죽이고 또 죽이다 공부하는 척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하다 또 숙이고 영수가 선생님 오시나 뒷문 열고 보다 화들짝 놀라 얼른 뒷문을 잠그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공부하는 척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고 유리창너머 복도로 선생님 발자국소리 저벅저벅 들리고 드디어 모습이 보이고 우리는 더 아무 일 없는 척 공부하는 척하고 앞 출입문에 관심도 안 주고 눈길도 안 주고 선생님이 출입문을 여는 순간 감색 양복엔 하얀 분필가루로 칠갑을 하고 우리들의 와르르 터지는 박태기 꽃 같은 웃음으로 칠갑을 하고 박태기 빨간 웃음에 봄 햇살이 반짝이던 열다섯 살 만우절     


반세기 넘어 그 이름도 의미도 낡은 잡지 표지처럼 낡고 선생님은 세상에 안 계시고 우리들은 늙어가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언제나 열다섯 살짜리로 교실에 앉아 숨죽이게 하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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