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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pr 05. 2023

너, 연어냐? 회귀하게

어미 노릇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겠단다. 십 년 이상 나가서 혼자 살았는데.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러라고 했다. 집이니까.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불쑥. 이유를 묻지 않아 의아한 모양이다. 괜찮겠냐고 한다. 한 마디만 했다. “너, 연어냐? 회귀하게.” 아들이 전화기 너머에서 낄낄 웃었다.


이유를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수입은 한정되었는데 나가는 것은 많고, 작업만 하고 싶은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으리라. 당분간 일하지 않고 작업만 하겠다던 아들은 요즘 슬금슬금 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 이유도 묻지 않았다. 전시회를 앞두고 있어 쓸 데가 많아 그런 것이리라. 작업만 한다고 작품이 생각대로 쑥쑥 뽑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이유를 묻지 않자 아들은 너스레를 떨었다. 더 늙기 전에 엄마 슬하에서 있고 싶다고. 하지만 그 속내 모를 내가 아니다. 그림은 작업하는 데 재료값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왜 그쪽의 수많은 전공자들이 작가로만 남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안다. 지극히 자유로운 영혼인 아들이 집으로 들어올 생각까지 했다는 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 아는데 물을 이유가 없다. 어쨌든 모든 건 아들이 견뎌내야 할 과제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작품만 쓰고 싶지 않은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생계를 유지해야 하므로 글 쓰는 것은 뒤로 밀릴 수밖에. 그러다 보면 세월이 가고, 쓰지 못한 채 의욕만 남아 마음을 짓누른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이제 좀 써야겠다 싶으면 몸이 옛날 같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글이 써지지도 않는다. 이것을 잡으면 저쪽을 이룰 수 없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을 잃어야 하는 게 보통이다. 두 마리 토끼 잡기가 그래서 어려운 것이리라.


언제쯤 들어올 거냐고 물었다. 전시회 끝나고 오겠단다. 짐이 좀 되니까 그리 알란다. 딸도 새 집으로 들어가면서 쓸 만한 것들은 우리 집에 갖다 놓더니, 이제 아들까지. 꼭 필요한 것 외에 무어든 소유하는 게 부담되는 난데, 내 생각과 다르게 휘둘리게 생겼다. “웬만한 건 다 버리고 몸만 와.” 내 말에 아들은 알았다고 했지만 애써 산 것을 버릴 아들이 아니다. 어릴 적에 보던 동화책도 못 버리게 해서 책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마당인데.


아들에게 안방을 내줄 생각이다. 전에 아들이 쓰던 작은 방으로 책방을 옮기고.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방인 책방을 내가 써야겠다. 머리 아프다. 보통 일이 아니다. 집안 살림을 옮겨줄 수 있는지 이삿짐센터에 문의해야 한다. 책도 정리할 필요 있다. 그걸 안 아들이 자기가 보던 책들 동화책까지도 절대 버리면 안 된다고 한 것일 테지만. 거실을 책방으로 쓸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이래저래 요즘 생각이 많다.


안방을 내주는 이유가 있다. 확장을 해서 다른 방에는 발코니가 없고 안방에만 있다. 아들은 바깥 내다보기를 좋아한다. 발코니에서 뒷산 올라가는 산책로가 보이고 들꽃이 피고 지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풍경을 나도 좋아하지만 아들은 더 좋아한다. 또 발코니 화분에 심어놓은 화초들 보는 것도 즐길 테니까. 아들은 분명히 자주 창가에 붙어 서서 바깥 풍경 삼매경에 빠질 것 같다. 그걸 알면서 어미가 어찌 안방을 고수하랴. 더구나 안방에는 에어컨이 달려 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아들은 에어컨 없이 잠들긴 어려울 것이기에.


아들이 집으로 들어온다니까 어머니는 쌍수를 들어 좋아하신다. 고모도 비슷한 반응이다. 친구는 절대 받아들이지 말란다. 불편할 거라며. 딸은 당연한 듯 환영한다. 알고 보니 딸이 아들에게 제의한 것이었다. 나가 살아봐야 나가는 것만 많고 모으는 것은 없으니 차라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아무래도 가정을 꾸리고 살림하는 딸이니 이런저런 계산을 했으리라.  


십여 년도 훨씬 전에 아들이 독립한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혼자 살다 보면 불편해서 결혼을 금세 할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따로 살아봐야 부모 슬하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 다 맞지 않았다. 아들은 비혼주의자까지는 아닌데 결혼에 별 관심이 없다. 또 그동안 시대가 변화무쌍하게 변해 결혼을 당연시하는 문화도 아니다. 부모 슬하가 아닌 혼자 사는 자유로운 것에 맛도 들인 것 같다. 여행을 혼자 다니고 밥도 혼자 잘해 먹으며 산다. 잔소리 안 듣는 것이 더 좋은가보다. 그러니 둘 다 실패다.


아들이 딸의 제의에 따른 것이든 자발적이든 들어오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바라는 것은 집으로 들어와 가정의 귀중함을 알아 결혼했으면 좋겠다. 연어처럼 회귀했으니 이제 가정을 꾸렸으면. 그러면 난 이 모천을 아들에게 내주고 나가서 살 마음도 있는데. 그것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어미의 깊은 마음을 알아주고 행동으로 옮겼으면 좋겠다. 아, 너무 멀리 가는 것 같다. 이 비약이 나는 늘 문제다.


친구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닐 터다. 떨어져 살던 사람들이 다시 같이 살면 부딪치는 문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 편하자고, 내 품으로 들어오는 자식을 어찌 거부하랴 싶다. 내가 아무리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해도 어미니까. 제삼자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것이 맞는 말일 수 있고. 그래도 나는 그럴 수 없다. 아무리 개성이 존중되고 개인의 삶이 부모자식 간에도 중요하다 해도.


어쩌면 아들딸이 자랄 때 어미 노릇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상황이 그랬다. 나는 일하고 공부하는 어미였으니까. 아이들 소풍이나 운동회에도 참석한 적이 없다. 사진을 보면 나만 빠져 있다. 남편만 아이들과 찍혀 있다. 그때 못해준 것을 벌충하려는 마음이 아주 없지 않다. 따뜻하게 정성껏 밥상을 차린 적도 거의 없었으니까. 바빠서 대충 빨리 끼니를 준비하는 게 보통이었고.


아무튼 걱정 반 설렘 반이다. 그래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일단 대화가 잘되는 관계니까. 또 내가 예전만큼 바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인생의 다양한 면들을 보고 느껴 성숙한 부분이 서로에게 있으므로. 걱정은, 집에서 살다 보니 편하고 좋아 결혼을 아예 안 한다고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걱정이 현실화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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