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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y 02. 2023

워킹맘과 육아전쟁

힘들어도 좋다


요즘 하루돌이로 딸에게 불려 간다. 아기들이 아프기 때문이다. 예년 기온보다 높거나 낮은 날이 반복되다 보니 아기들이 감기에 걸렸고, 그 아기들을 돌보며 직장에 다니는 딸은 몸살이 날 수밖에. 사위 역시 잠을 제대로 못 자 병이 날 지경이라니 하루돌이든 뭐든 시간 되는 대로 가서 도와줘야 한다. 아기들이 아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못 가는 날이면, 딸과 사위가 번갈아 연차를 내서 돌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나를 부른다.


‘딸에게 불려 간다’고 표현한 게 거슬린다.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한 것인데. 아무튼 새벽이고 아침이고 부르기만 하면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딸네 집에 간다. 피곤에 절어 허둥대는 딸은 내가 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출근 준비를 서둔다. 입맛도 못 다시고 집에서 나간다. 화장기 없는 얼굴, 잠을 못 잔 창백한 그 얼굴로. 화장은 아마도 차에서 하리라. “이거라도 마셔.” 겨우 주스 하나 챙겨 건네준다. 딸의 쓰린 속만큼 내 마음이 쓰리다. 


딸은 출근하면서도 사무실에서도 전화로 이것저것 챙긴다. 엄마, 애기들 괜찮아? 엄마, 힘드시지? 뭐 좀 드셨어? 냉장고에 다 준비해 두었는데. 아, 워킹맘 우리 딸은 힘들다. 애들 걱정에 어미 눈치까지 보느라 안절부절못한다. “다 괜찮아, 걱정 마. 운전도 천천히 안전하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다. 안쓰럽다. 그래도 어쩌랴. 지금 딸에게 당면한 삶이니. 


퇴근이 생각보다 늦어지면 내게 미안해서 또 전화를 한다. 나는 “다 괜찮다고! 왜 이리 걱정이 많아. 나 오늘 일정 없다고! 아주 한가하다고!” 일부러 소리친다. 딸이 전화기 저편에서 웃는다. 저는 웃지만 나는 눈물이 난다. 어미 눈치까지 보다니. 내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늘 바쁘게 사는 어미인 줄 아니까 그런 걸까. 내가 편히 기댈 수 있게 곁을 내주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나는 또 비약한다. 그랬다면 하루돌이로 부르진 않았을 거라며 스스로 위무하면서. 


온이는 기침을 하다 토하고 또온이는 열이 펄펄 난다. 치우고, 해열제 먹이고, 집안 환기하고, 죽 먹이고, 우는 또온이 달래고, 온이와 놀아주고, 널브러진 장난감 치우고, 죽 먹은 설거지 하고, 간식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기저귀 갈고, 음악 틀어주고, 아고! 정신이 없다. 내 몸에서도 열이 확확 난다. 그래도 12년 동안 유아교육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던 내가 아닌가. 역전의 용사였던 내가 아닌가 말이다. 이쯤이야 조족지혈, 그래 새 발의 피다, 껌이다, 식은 죽 먹기다. 그래도 힘든 건 맞다. 


또온이 업어 재우고 나니, 온이도 졸린 듯해 자라고 했다. 이게 웬일인가. 온이는 스스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이제 다 컸지 뭔가. 작년만 해도 재우는 게 힘들었는데. 온이들이 잔다. 딸에게 문자를 보낸다. 또온이 열 내리고 온이도 기침 덜 해. 지금 둘 다 낮잠 중. 한참 후 딸의 문자가 온다. 엄마도 좀 쉬셔. 뭘 좀 드시든지. 휴, 힘들지?라고. 아무 걱정 말라는 문자를 보내는데 나도 슬슬 잠이 온다. 소파에 누웠다. 잠시 눈을 붙였을까 싶었는데 또온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온이도 일어났다. 육아전쟁 후반전이 시작된다. 


그래도 전반전보다 낫다. 열이 내린 또온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지켜보는 나를 가끔 돌아보며 방긋 웃는다. 온이가 놀이터로 나가자고 조르는 것을 달랜다. 둘 다 감기인데 바깥바람 쐬면 안 된다고. 온이는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고 우긴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퍼즐 맞추기를 같이 한다. 그러다 블록놀이도 한다. 후반전은 그런대로 평화로운 가운데 진행된다. 온이들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금씩 자라는 모습도 함함하다. 나무들이 자라듯 아기들은 자란다. 


딸이 먹을 걸 양쪽 손에 들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온이들은 달려간다. 지금까지 봐준 날 아랑곳하지 않고. 딸이 웃는다. 아침보다 나아진 온이들을 보고 함박웃음을 웃는다. 엄마 힘들었지? 소고기 구워드릴게, 조금만 기다리셔, 하면서. 딸이 웃으니 나도 웃는다. “아니, 난 갈 거야. 너희들끼리 구워 먹어.” 내 말에 딸은 시무룩해진다. 솔직히 나는 소고기보다 그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소고기 먹으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리니까. 마침 사위도 집에 거의 왔단다. 그럼 됐다.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이다.


동부간선도로는 꽉 막혀 있다. 그래도 전쟁터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안도한다. 나는 이기적인 어미다. 육아전쟁 열 시간 넘겨 버티느라 나도 병이 날 지경이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아프지 않아야 또 불려 갈 수 있을 테니까. 새벽 5시에 출발해 저녁 7시 돼야 집에 들어갈 것 같다. 아, 길다. 길고 긴 하루다. 그래도 온이들이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고 매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벌써 또 보고 싶다. 소고기 때문이 아니라, 편히 저녁 준비해서 먹을 때까지 기다려줄 걸 잘못했다고 후회한다. 


워킹맘 우리 딸이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우리 딸만 그러랴. 모든 워킹맘들이 그러리라. 그런 중에 아기들을 키워내는 모습이 장하다. 워킹맘들이 가끔 소리를 질러도 이해해야 한다. 신경질을 부려도, 머리가 부스스해도, 옷차림이 후줄근해도, 초롱초롱한 눈이 아니어도, 얼굴에 화장기가 없어도, 말투가 다정하지 않아도, 여리여리하던 팔뚝이 굵어져도, 허리가 굵어져도 다, 다, 이해해야 한다. 워킹맘뿐이 아니다. 아기를 키우고 있는 모든 엄마들을 다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부르면 가서 조력해야 한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본다. 두 말할 것 없이 힘들었다. 속담에도 밭 맬래 애 볼래 물어보면 밭 맨다는 말이 있잖은가. 하지만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온이들이 보고 싶다. 힘들어도 좋다. 앞으로도 딸이 부른다면 나는 흔쾌히 불려 가리라. 아니 달려가리라. 치열한 육아전쟁이 시작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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