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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30. 2023

진정한 휴일 하루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기 


봄날 휴일 한낮,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에 쏟아진다. 빨간 꽃기린 꽃잎에, 녹보수 초록 잎사귀에, 아이비 앙증맞은 잎에. 햇살 받은 꽃잎과 잎새는 반짝거린다. 금전수 타원형 초록 잎새도 함께. 백도선은 희고 가느다란 가시털을 곧추 세우며 몸체를 불리고 있다. 나른하다. 노곤함 때문인지 고요함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윙하는 이명만 들릴 뿐이다.

 

이명은 어릴 적부터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줄 알았다. 나이를 먹어서야 이명이라는 걸 알았다. 고요한 밤에는 밤이 익어가는 소리인 줄 알았고, 혼자 있는 낮에는 태생적으로 내 몸에 장착된 소리인 줄 알았다. 이명은 그림자 같다.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으니까. 그림자가 불편하지 않은 것처럼 이명도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치료받을 생각이 없다. 이명 치료 광고가 많이 떠도 관심 없다. 뚜으으으으 쉬지 않고 들린다.   


파자마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1』이다. 시작부터 남다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읽어도 문장과 묘사가 지극히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섬세한 묘사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렇게 써야 한다. 독자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잡고 있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속엔 질투가 이글거린다. 잘 쓰는 작가에게 본능적으로 느끼는. 


질투심을 삭이려 유통기간 만료가 가까운 미니파이 봉지를 뜯는다. 예쁜 접시에 담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집어먹으며 책을 읽는다. 접시에 담아 먹는 일은 좀처럼 없던 일이다. 그것도 예쁜 접시에. 미니파이, 먹지 말아야 한다. 공복혈당이 말썽을 부린 지 꽤 되는데, 다디단 밀가루 종류를 피해야 하는 건 상식이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입에 넣는다. 오늘은 내키는 대로 해보리라. 


미니파이 먹고 러스크도 개봉할지 모른다. 모두 내가 산 적 없다. 강의 후 누가 슬쩍 가방에 넣어준 것. 내가 혈당 때문에 이런 것을 먹는 게 썩 좋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일부러 말하기 싫었다. 민망해할까 봐. 식빵을 잘게 잘라 튀긴 러스크는 중독성이 있어 한 번 입에 대면 자꾸 먹게 된다. 몸에 좋지 않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것도 먹으리라. 


전화 한 번 울리지 않는다. 톡도 아침에 세 개 오고 그만이다. 아이들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아들은 작업할 거고 딸은 아기들 챙기느라 바쁠 테니까.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책을 읽는다. 진도가 잘 나가는 책은 아니다. 묘사가 치밀하기 때문에 그것의 맛을 느끼기 위해선 몰입해야 한다. 아니면 주마간산 격이 되고 만다. 책을 정복할 수 있을까. 전략적으로 능동적 읽기를 해야 한다. 몰입한다.

 

두 챕터를 읽고 난 후 차를 준비한다. 보이차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겁이 난다. 그러면 하루가 피곤하다. 보이차, 중국 유학생이 석사학위를 받고 내게 선물한 차다. 논문 쓸 때 많이 도와준 보답으로. 우리 집으로 불러 하루 종일 지도해 주다시피 했으니까. 물론 내가 지도교수는 아니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들까 싶어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다.

 

보이차를 아홉 번 우려 마셔도 좋단다. 맷돌 모양의 발효된 차는 오래되었지만 맛은 괜찮다. 그 유학생은 지도받을 때 수없이 고개 숙여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으로 간 후 내게 사적으로 연락한 적 없다. 공적인 이메일 딱 한 번뿐. 괜찮다. 대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었으니까. 보이차를 마실 때마다 내가 그 학생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도 논문을 볼 때 내 생각할까. 안 해도 괜찮다. 거기까지 인연이니까. 보이차를 무시로 마시며 독서하다가 그만두었다. 뭔가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도 현재를 즐기는 것이리라. 입고 싶은 걸 입고, 먹고 싶은 걸 먹으며, 하고 싶은 행위를 하는 것. ‘신독’이 걸리긴 하지만 오늘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리라. 얼마 전부터 현재의 시간을 할애해 나를 위해 쓰기로 했으므로.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시간을 쓰는 행위다. 전에는 일 외에 시간을 쓰는 게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이제 아니다. 나를 위해 쓰는 모든 시간이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그만두고 서재로 와서 컴퓨터를 부팅한다. 글자 몇 자 타이핑했는데, 졸음이 온다. 그럼 자야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한 날이니까. 익숙하지 않아 꼭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걸 이겨야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인데 허비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쉬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재충전하는 시간이 아닌가. 소파에 누웠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잠이 쏟아진다.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 시간을 보니 45분 정도 잠을 잤다. 낮잠을 다 자다니. 내 인생 여정에서 이런 날이 있다는 게 놀랍다. 어떤 의사는 점심 식사 후 3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한다. 자고 나면 새롭게 시작하는 것과 같다면서. 그렇다면 나쁠 것도 없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허락되면 30분 정도 낮잠, 괜찮을 듯하다. 


다시 또 책을 펼친다. 나에게 ‘빨강’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일까. 오르한 파묵이 이 작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또 무엇일까. 튀르기예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다. 그곳의 문화도 잘 모르는데 은근히 매력 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빨강은 지키고 싶은 가치인가, 예술혼인가. 나는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한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는 이 시대에 진정 예술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반쯤 읽고 책을 덮는다. 이제 산책하고 싶어서다. 햇살 쏟아지는 뒷산 자드락길을 발밤발밤 걸으며 ‘빨강’의 의미를 생각해 보리라. 


휴일 하루,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래도 큰일 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하고 충만하며 뿌듯했다. 진정한 휴일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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