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습관과 무모함 사이

밥 먹듯 해야 할 것, 글쓰기

by 최명숙


아픈 건 아픈 거고 할 일은 해야 한다. 무모한 짓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바꾸기 힘들다. 오늘부터 일주일 간 부목을 대고 컴퓨터 작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게 맞을 것 같았다. 내 글을 읽는 작가의 권유였다. 설득력 있다. 어느 작가는 내 글을 읽지도 말자고 선동(?)했다. 라이킷을 누르지도 말고, 댓글도 달지 말자고. 심지어 관심을 끄자고. 모두 우정의 발로에서 나온 이야기고 선동이었다.


나는 안다. 내 손목이 낫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그래서 그런 말이나 선동에도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불편했다. 몸이 불편한 것보다 더 못 견딜 일은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난 후 두 시간이 지나도록 마사지하고, 텔레비전 보고, 바깥도 보고, 식사준비도 했다. 모두 부목을 대고 한 일이었다. 손이 근질거렸다. 무언지 숙제를 안 한 것 같은 찜찜한 마음이 일었다. 손목을 움직이지 말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막상 해보니 손목을 안 쓸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자라도 쓰거나 구상을 하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게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거나 바깥을 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맥칼 없는 짓이다. 두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컴퓨터를 열었다. 대신 아주 짧은 단상을 당분간 써야겠다. 습관의 힘이다. 변화하는 것도 좋지만 하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컴퓨터를 열고 어젯밤에 올린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나는 좀 무모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어제 낮에 온이들과 놀다 왔다. 한 달 만에 만난 온이는 소년이 되었고, 또온이는 말이 터져서 못하는 말이 없었다. 온이들이 방학이라 출근하는 딸이 육아를 부탁했다. 아들과 함께 갔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듯하여. 아들도 온이들이 보고 싶었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부목을 대고 갈 수 없어 풀었더니, 그것을 모르는 온이들은 내 팔에 매달렸다. 그뿐 아니다. 나는 쉴 새 없이 온이들을 잡고 안았다. 먹이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저녁에 집으로 올 때, 손목이 시큰대고 통증이 커졌다. 앉아 쉬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컴퓨터를 열고 몇 자 적었던 것이다. 그렇게 써서 게시한 후 곯아떨어졌다. 새벽에 깨보니 부목을 댄 채 잤지 뭔가. 손등과 손가락이 통통 부어 있었다. 다시 보름 전쯤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도 나을 것이다. 약 먹고 관리하는데 안 나을 리 없다. 잠에서 깬 후 두 시간이나 다른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 글쓰기가 습관이 된 걸까.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다. 예전엔 몇 년 간 원고청탁 들어온 것만 쓰고 안 쓴 적 있다. 안 쓸 때 불안했다. 산재한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 권의 책 출간이 계기가 되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쓰기도 습관이다. 습관의 힘은 강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좋은 습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좋지 않은 습관은 과감히 끊고. 그것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관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습관을 믿을 수 없다.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다.


내가 글쓰기나 걷기를 매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걷기를 이틀 정도만 하지 않다가 나가려면 귀찮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매일 3년 8개월째 걷고 있다. 비나 눈이 오면 우산을 들고나간다. 걷지 못한 날은 깊은 밤중이라도 나가서 하루 걸을 분량을 채운다. 누구는 중독이라고 하고, 누구는 고집이라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하려고 한 거니까 한다. 지금은 웬만큼 습관이 된 듯하다. 더워도 추워도 걷는 것이 두렵지 않으니까.


글쓰기는 좀 다른 면이 있긴 하다. 글은 사유한 것을 문장으로 조직화하는 과정이므로, 운동처럼 며칠 쉬었다고 해서 귀찮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 글 쓰는 행위가 재밌기도 하다. 걷기는 재미보다 건강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기 때문일까. 글쓰기처럼 재미있진 않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니 나름대로 맛을 느낀다. 공통점은 두 가지가 모두 내 마음의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주절거리며 한 편을 썼다. 이 글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 썼다는 것에 의미를 두련다. 마음이 편하다. 쓰지 않으려고 마음먹을 때와 달리. 마음먹는다고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할 일은 해야 한다.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한 것에 비중을 두고 산 나니까 어쩌랴. 앗! 손목이 시큰댄다. 무모하기도 한 나다. 인정, 또 인정한다.

keyword